중학교에 입학하는 남학생의 교복 하의가 치마라고 하면 놀란 얼굴로 이렇게 묻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여학생의 교복이 치마라는 데는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양성 평등을 위한 법이 제정되고 차별이라 인정되면 고치려고 애도 쓰는데 여학생의 교복이 치마인 것에는 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지, 어째서 여학생들은 수십 년 전과 똑같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치마 교복을 입고 있는지 볼 때마다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교복이 치마라서 불편한 점이 뭐냐고? 불편한 점이 정말 많다.
우선 겨울에 춥다. 오래 전 치마 아래 타이즈를 두 개씩 신어도 겨울마다 발에 동상이 걸렸던 걸 기억한다. 그 때보다 교실의 난방은 잘 되어있다 해도 맨다리로 종종걸음 치는 여학생들을 보면 무척 안쓰럽다. 새 다리도 아닌데 우리 아이들의 다리를 왜 옷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한단 말인가. 바지 교복이라면 안에 내복도 입을 수 있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건강할 여학생들이 왜 한겨울에 짧은 치마를 입고 떨어야 하는가.
바지보다 입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바지는 슥, 입으면 된다. 치마는 아니다. 속옷도 잘 갖춰 입어야 하고 긴 타이즈나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목 짧은 양말 두 짝을 신는 데는 2초밖에 안 걸리지만 타이즈를 잘 신는 데는 최소 20초는 걸린다. 양말보다 잘 떨어져서 돈도 많이 든다.
오래 전에 큰언니는 고3인 내가 머리 땋는 걸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그 시간이면 영어 단어를 몇 개나 외우고 수학 문제도 하나 풀겠다며 단발머리가 아닌 교칙을 못마땅해했다. 이제 두발 자유화로 머리는 땋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아침 시간이 여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시계는 아침에 더 빨리 가서 등교하는 학생들은 분초를 다툰다. 거기에 성한 타이즈까지 골라 꼼꼼히 신어야 하는 여학생에게는 1초도 아쉽다. 20초는 백 미터도 달릴 수 있는 긴 시간이라 지각하지 않으려면 그냥 뛰어나갈 수밖에 없다. 새도 아닌 그들이 맨다리로 다니는 이유다. 맨 살에 닿는 아침 공기가 얼마나 차가울까.
치마 교복의 가장 불편하고 나쁜 점은 활동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여자 아이들은 유치원 때나 엄마가 입혀주는 공주풍 원피스를 입지 초등학생만 돼도 치마를 잘 입지 않는다. 자전거나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구름 사다리와 정글짐을 오르내리고 철봉에 매달리거나 넘는 데 불편해서다. 이렇게 활발하게 놀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철봉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남학생의 경우 하굣길의 축구 한 판은 자연스런 수순이나 여학생은 생각도 않는다.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팔다리를 움직이며 뛰놀던 여학생들을 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폭도 좁고 짧은 치마를 입게 하는가. 너는 여자니라, 이제 들뛰지 말고 조신하게 앉아 공부만 하거라, 하는 차별의 시작은 아닐까.
요즘 여자 애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치마 입고 기마 타기도 하고 펄쩍펄쩍 잘만 뛰더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애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서 민망한 사태도 일어난다. 앞이 뚫린 책상 앞에 앉은 여학생들이 짧은 치마 밑의 다리를 너무 편하게 두어 남자 교사들이 교단에서 눈 둘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단다. 왜 여학생의 교복을 짧은 치마로 하여 학생과 교사에게 그런 불편함과 괴로움을 안기는가.
전장에서 치마 입는 사람이 있는가? 여군도, 종군 간호사도 바지를 입는다. 치마를 입고서는 무기를 사용하고, 참호를 들락거리고 신속하게 차를 타고 내리고, 들과 산을 거침없이 뛰어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터도 치열한 전장이라 바지를 입고 일하는 여성이 많다. 간호사 제복도 바지로 많이 바뀌었다. 학교도 작은 전장이다. 직장 여성이 치마 입고 일하는 불편함보다 여학생이 치마 교복 입고 생활하는 불편함이 더 클 지도 모른다. 여성이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된 건 선물같은 일인데 어째서 어린 여학생들은 도로 치마를 입고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가. 요즘은 회사에서도 일하기 편한 복장을 허용하여 양복을 입지 않는 직원도 많은데 왕성하게 활동할 때인 우리 남녀 학생들은 왜 하루 종일 신축성 없는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입고 있어야 할까?
TV 프로그램인 <골든 벨>에서 가장 보기 싫은 장면은 담요를 두르고 앉아있는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조차 엉거주춤 담요를 싸들고 올라가는 모습은 전혀 명예롭게 보이지 않았다. 여학생도 바지 교복을 입었다면 제작진이 담요를 준비할 필요도 없고 남학생처럼 편히 앉아 문제 풀기에만 전념할 수 있을 텐데 여학생은 앉음새까지 신경 써야 하니 얼마나 불공평한가.
교복 하의를 바지나 치마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는데 본인이 치마를 택한 거라고 말하지 말라. 바지를 선택하는 사람이 전교에 한두 명밖에 안 될 정도로 그들이 치마를 더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스타가 꿈인 애가 아니고서야 남의 눈에 잘 띄는 게 신경 쓰이지 않을 애가 어디 있겠는가. 때로는 묻혀 있고 싶은데 선생님이나 다른 애들한테 ‘바지 입고 다니는 애’ 로 통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하여 대부분의 아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치마를 택한다. 치마가 더 예쁘기는 하다는 걸 장점으로 여기며.
어릴 때부터 치마 입기를 싫어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딸애도 입학을 앞두고 교복이 치마인 게 싫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그래서 바지로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튀고 싶지 않고 바지보다 예쁘기는 해서 결국 치마를 선택했다.
여학생의 교복이 치마라서 좋은 점이 있다면 딱 하나, 보기에 예쁘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저토록 많은 불편함과 불공평함과 민망함을 감수하고 지켜낼 만한 가치인가. 누구를 위해서? 우리 어른들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교복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에 아이들에게 교복을, 여학생에게 치마를 입게 하는 것은 아닌지. 원기 왕성하고 생기발랄한, 한창 자라나는 여학생들의 팔다리를 우리가 꽁꽁 묶어 버린 것은 아닌지.
곧 3월이 온다. 새 학기를 맞는 교정에 교복의 물결이 활기차게 넘실대리라.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하여 중고등학교의 교복을 유지하기로 했다면 신축성 있는 소재로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한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게 낮춰야 하지만 무엇보다 여학생도 남학생처럼 바지 교복을 입게 해야 한다. 여학생의 교복을 치마에서 바지로 바꾸는 일은 남녀 차별 없는 출석 번호 매기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여학생들이 겨울에 덜 춥고 바쁜 아침 시간도 절약하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교복으로 바지를 선물하자. 여학생도 교복을 입은 채 뛰고 달리고 철봉을 넘고 신명나게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며 드넓은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오르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