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3단 폭포를 보았다. 여름 방학에 중1, 초5인 아이들을 데리고 교사인 언니 부부와 함께 미국을 여행할 때다. 높이가 7백 미터도 넘어 미국에서 가장 낙차가 큰 폭포라고 한다. 바닥의 크고 작은 바윗돌을 조심해서 디디고 다니며 여러 방향으로 시원한 물줄기가 낙하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이들과 셋이 사진을 찍고 싶은데 언니 부부가 좀 떨어져 있었다. 가까이 있는 관광객 중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있나 둘러보다가 인상 좋은 중년의 미국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사실 국적이 미국인지는 모른다. 서양 사람이 나를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구별 못 하듯 나도 그가 미국 사람인지 영국 사람인지 캐나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치자 온화하게 미소짓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을 뿐. 다가가서 ‘익스큐즈 미~’ 하고 말을 건네고 카메라를 내밀며 말했다.
‘이것 좀...’
그러자 그 남자는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You wanna photo?”
‘예에.’
사진기를 받아드는 남자에게 눌러야 할 곳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여기...’
남자가 말했다.
“Press here?”
‘예에.’
“O.K.”
‘얘들아 이리 와’
아이들과 자세를 잡고 남자가 든 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했다.
“one, two, three!”
남자가 사진을 찍고 사진기를 돌려주자 나는 ‘땡큐’라고 했다.
남자가 등을 돌리며 멀어져 가자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 왜 우리말로 말해?”
‘엉? 내가 우리말로 했어?’
몰랐다. 익스큐즈 미, 와 땡큐, 빼고는 다 우리말로 한 줄. 아이들은 다른 데서도 내가 외국인에게 우리말로 잘 말한다고 했다. 그것도 몰랐다. 우리 식구 여럿이 함께 있어 우리나라인 줄 착각했나? 아무튼 ‘situation English’도 아닌 우리말을 했는데 외국인이 알아듣고 도와주니 기분 좋았다.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을 보면 우리는 신기해 하고 고맙게 여긴다. 유명한 사람이 강연하러 와서 시작 전에 ‘안녕하세요’ 하거나 끝날 때 ‘캄사합니다’라고 한마디만 해도 오~, 하며 감동한다.
미국인도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고마워할까? 감동할까?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친절을 계속 베풀면 권리인 줄 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에게 영어로 말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 앞에만 서면 영어로 말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미국 사람을 만났을 때 왜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을까? 왜 그들의 질문에 영어로 대답하려고 진땀을 흘리고 잘 안 되면 창피하게 여길까?
미국인, 그들은 왜 저희 땅에서 저희 말 하듯 남의 나라에서 제 나라말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을까? 우리가 미국 갈 때 ‘survival English’ 정도는 익히고 가듯 그들도 ‘survival Korean’을 배워 와야 할 것 아닌가? 우리는 미국에 가면 그 나라 사람에게 되든 안 되든 영어로 길을 묻고 그들의 영어 대답을 이해하려고 애쓰는데 그들은 왜 한국에 와서 한국어로 묻지 않는가?
한국 사람들은 코쟁이만 보면 영어 한마디 붙이지 못해 안달하고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하면 무조건 우대받는다는 말을 들어서가 아닐까? 영어 사용자로서의 우월감을 한껏 높여 주는 곳인데 뭐하러 힘들여 한국어를 공부하고 오겠는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정상 회담하러 미국에 간다면 뛰어난 통역사가 함께 가도 일상적인 대화에 쓸 기본적인 영어 문장에 대해 조금은 생각하고 준비를 할 것이다. 가서는 굿 모닝, 이나 땡큐, 를 수도 없이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는 어떨까? 미국 대통령이 방한 전에 한국어 기본 회화책을 챙긴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오면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십니까, 도 안 할뿐더러 진수성찬을 차려줘도 고맙습니다, 나 잘 먹겠습니다, 라 하지 않는다. 우리 대통령은 가서 땡큐, 하는데 그는 와서 왜 감사합니다, 라 하지 않느냐고.
대한민국도 이제 위상이 높아졌다. 6.25 전쟁 뒤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 ‘김 미 껌’ 하며 미 군용차에 매달리던 때의 나라가 아니다. 세계 경제 대국 15위 이내에 드는 우리나라는 당당한 독립 국가이며 고유한 언어도 있다. 우리 힘으로 밥 먹고 사는 우리가 공연히 저자세를 취하고 껌을 구걸하는 아이처럼 영어 쓰는 사람에게 굽신댈 이유가 없다.
프랑스인처럼 우리도 저들이 ‘Where to City hall?’ 하면 못 알아들은 체해야 한다. 어눌한 발음으로 ‘시청, 어디로 감미까?’ 하면 그제야 우리말로 ‘똑바로 가서 저기 광고판 있는 건물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라고 대답해야 한다. 미국에서 우리가 영어로 물어볼 때 그들이 그러듯이 우리말을 잘 못 알아들어도 손짓, 몸짓, 고갯짓을 보태 몇 번이고 우리말로 설명해 주는 게 맞다. 우리 땅 아닌가. 미국 여행 때 내 질문에 한국어로 대답해준 사람은 한국인 말고는 없었다.
그들은 영어로 묻고 우리는 속으로 ‘씨디 홀? 시청... 똑바로는 스트레이트? 서베이 뭐라고? 아, 지하철역 찾나?’ 하고 애써 추리할 필요가 없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친절한 것과 주객이 전도된 건 다르다. 우리 땅에서는 우리 말을 쓰는 게 자연스럽고 그게 예의다. 영어 실력을 뽐내려는 게 아니라면 우리 땅에서는 우리 말로 안내하자. 그럼 그들도 정신 차리고 우리 말을 배울 것이다. 나는 천문학적인 돈을 앗아가는 수많은 영어 학원이 한국어 학원으로 싹 다 바뀔 날을 꿈꾼다. 우리 가수의 노래로 온 세계가 들썩이고, 해마다 재미있는 연속극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작년에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우리나라. 그 중심에 한국어가 있다. 우리 말과 글, 외국인도 기꺼이 배울 만한 언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