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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끝, 누군가의 시작

같은 공간, 다른 상황

by Kidcook

어제부터 새로운 곳에 첫 출근을 했다. 이전에 계시던 선생님이 건강이 안 좋으셔서 그만두시는 바람에 지난주 면접을 보고 급작스럽게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제는 첫 출근이라 긴장해서 정신없이 출근하기 바빴는데 오늘은 하루 지나서 그런지 출근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하늘아래지만 다른 동네라서 그런지 사람도 건물도 낯설고 분위기도 낯설다. 심지어 공기도 낯선 느낌이 든다. 새로운 직장이 있는 곳은 사무실, 병원, 큰 건물이 많이 밀집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침 출근길에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길을 건너기 위해 보도블록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다들 바삐 자기 일터로 찾아가는 모습이 왜 이리 낯설기만 한지 모르겠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인데 낯선 모습에 잠시 멈춰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 나도 지난주까지는 집에만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길을 걸어가고 있고, 일터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 잘 실감이 나질 않는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순간 너무 많이 쉬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3월부터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며 잘해보자는 다짐을 했는데 이놈의 소심한 성격 탓에 어떻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지, 잘할 수 있을는지, 예전의 실수나 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나를 더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선생님, 선생님이 반년 정도 쉬다가 일을 다시 하셔서 그래요. 저두 예전에 일 년 정도 쉰 적 있는데 그때 저도 다시 일을 시작하니까 막막하고 자신 없고 그렇더라고요. 아마 선생님도 그때의 저 같은 기분이실 것 같아요."


" 그런데, 금방 익숙해지고 적응되더라고요. 비슷한 계열에서 오랫동안 일 하셨는데 환경이나 사람들이 낯설어서 그렇지 한 달만 지나면 내가 언제 그랬나 싶게 적응하실 걸요?"


"그럴까요? 저 어제는 정신없이 인수인계받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 게 새벽에 자다가 깨서 새벽을 꼴딱 새고 왔어요. 머리가 어질어질하네요."


이렇게 말하고선 결국 탈이 났다. 잠도 못 자고, 낯선 곳에 가서 그런지 춥기도 하고, 속도 안 좋더니 결국 체했었나 보다. 급기야 참을 수 없게 속이 안 좋으면서 가슴이 답답했는데 작은 선생님이 갖고 계신 상비약 소화제를 하나 받아서 먹었다. 정말 곧 쓰러질 것 같았는데 겨우 숨이 쉬어졌다.


어제와 오늘 이틀 인수인계하면서 10년 가깝게 오픈해서 쓸고 닦고, 손때 묻은 곳과 함께 울고 웃고 한 동료들과 이별하게 되니 앞에 계시던 선생님도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건강 잘 회복해서 다시 만나자, 잘 지내라, 또 보자 등의 인사말을 건네시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눈물바람을 하시는 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마음도 이해가 되었고, 공감이 되었다.


누구나 끝과 시작은 아쉬움과 떨림이 있으리라.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인데 끝은 언제나 아쉽고 미련이 남으며 시작은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하는 게 아닐는지.

이제는 그런 일에 무뎌질 법도 한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무뎌질 수 없는 것일까.

친정엄마 말씀처럼, "이제는 좀 내려놓고,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라. 아등바등하고 애써봤자 네가 바꿀 수 없는 거면 그냥 순리대로 사는 거다."

머리로는 되는데 마음으로난 잘 안된다. 사람 성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닌데, 사람 쉽게 바뀌진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의 단련이 조금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짐은 다 싸서 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쓸쓸함과 아쉬움이. 다음 주부터 다시 출근할 난 다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두려움이.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는 법이리라. 만감이 교차하는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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