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브런치북) 외 나의 일상]
어제는 우울함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누워있다가, 휴대폰 만지작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어 오늘 아침이 되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두려웠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제는 생각하는 것조차 두렵다. 생각하는 기능이 그대로 얼어버린 것만 같다.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게 두려웠지만, 두려움이고 나발이고 일단 알바를 가야 하기 때문에 꾸역꾸역 눈을 뜬다. 그래도 내가 책임감이 있는 인간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예전에는 화창한 날씨를 좋아했지만 백수 생활을 한 이후로는 어두운 날씨가 좋아졌다. 뭔가 날씨라도 탓하며 합법적으로(?) 실컷 우울해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세상이 밝은데 나만 우울하면 유독 더 어두워 보이니까. 어두운 세상 속에 어두운 내가 있으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덜 어두워 보이니까. 날씨가 좋으면 세상 행복하고 밝았던 내가 백수 생활을 통해 어두운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원래 감정이 참 잘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래도 직장생활 10년쯤 했다고 사회생활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아주 조금은 터득한 것 같다.
시커먼 내 마음과 달리 카페 오픈 준비를 마치고, 세상 친절하고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를 외친다. 같이 일하는 알바생 친구는 본인이 본 사람 중 내가 가장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훗, 나 이미지메이킹 좀 잘했구만.
오늘은 카페에 손님이 꽤나 많았다. 거의 기계처럼 샷을 미친 듯이 내렸다. 잠시 틈이 생겨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입금 알림이 떠있었다. 보낸 사람명은 "아빠 선물".
사실 어젯밤 잠들기 전 종일 꾹꾹 참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 나름의 SOS였다. 너무 울 것 같아서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 결국에는 숨이 차도록 꺽꺽 우는 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겨우겨우 안녕히 주무세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신경이 쓰이셨는지 오늘 용돈을 보내신 것이다.
아,,,,,,, 불효핑!!!!!!! 부모님 용돈을 드려도 모자란 나이에 용돈이나 받고 있다니. 양가감정이 들었다. 나도 궁한지라 용돈 자체는 행복했지만, 감사하고 또 너무 죄송했다.
퇴근하고 씻고 저녁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후만 해도 흐리지만 따뜻했던 날씨였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미친 듯이 불면서 추워졌다. 친한 동생의 청첩장을 받는 날이다. T+부산 상여자인 그녀는 내 이름 옆에 무려 직접 하트를 그린 청첩장을 내밀었다. F는 또 이런 거에 잔뜩 감동받는다.
입에 넣는 순간 눈이 커지도록 맛있는 피자와 뇨끼를 먹었다. 피자는 내 최애 음식이다. 누군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마르게리따 피자요"라고 답할 정도로. 내가 생각하는 맛있는 피자의 기준 중 하나는 도우까지 완벽하게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피자는 말할 것도 없었고, 뇨끼도 겉바 속쫄깃 그리고 소스까지 완벽..
백수 주제에 주변사람들 잘 둔 덕에 종종 위장 호강하고 다닌다. 분위기도 너무 좋았던 이곳은 나중에 꼭 재방문하고 싶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배가 불렀지만 고민할 것 없이 커피와 함께 딸기케이크를 시켰다. 딸기철이 지나가기 전에 딸키케이크는 땡기지 않아도 필수로 주문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딸기케이크는 실패할 수가 없는 메뉴라고 생각한다.
본투비 F인 나는 T들을 무서워하지만 (표현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T들과 잘 지낸다), 내가 아는 T 중 가장 따뜻한 그녀와 따뜻한 대화를 나눈다.
또 이렇게 하루를 살아낸다.
미래가 막막하고 두렵지만, '오늘'이라는 선물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며 버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