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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합니다.

브랜드 헤리티지와 나

by 조형일 Mar 03. 2025

  장인어른의 오랜 단골식당 명동 미성옥,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찾았다던 소공동의 체스터필드 양복점, 아버지와 어머니의 약혼식이 있었다던 세종호텔과 같이 이야기가 새겨진 공간을 좋아합니다. 세대를 넘어 같은 브랜드를 공유하는 것을 낭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유독 이어가기 보다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회적 풍토에 대한 작은 반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카이브에 이끌려 첫 직장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2011년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한 권의 아카이브 책자 『캠브리지 삼십오 년의 발자취』-남성복 회사 캠브리지의 35주년 사사(社史)-   속엔 품위 있게 말하고 문화적으로 균형 잡힌 이상적인 신사가 있었습니다. 이듬해 저는 그 신사를 찾기 위해 남성복 브랜드 캠브리지에 입사하게 됩니다. 코오롱이라는 대기업에 브랜드가 인수된 후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아쉽게도 그 곳에 복식 문화를 이야기하는 신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80년대 캠브리지를 경외하며 그리워합니다. 헤리티지를 알면 브랜드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이 때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1987년 9월 12일 동아일보 11면 남자패션 캠브리지의 광고 (NAVER 뉴스 라이브러리)


 저는 스토리로 일해온 사람입니다. 라코스테 브랜드에서 영업관리 업무를 하던 때였습니다. 보통의 세일즈맨이 수치로 이야기한다면 제게는 한가지 언어가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브랜드 유산과 관련된 스토리였습니다.  바이어들은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매장에 왜 테니스 라켓이 있는지?”  “다른 브랜드와는 달리 로우게이지 스웨터에도 로고를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비즈니스 미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절로 신이납니다. 바이어들도 색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재미로 읽고 머리에 새겨둔 본사의 헤리티지 레터가 비즈니스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카이브가 작동하는 조직을 겪었습니다. 세계적인 럭셔리 그룹 리치몬트에 입사하여 신입직원교육을 받던 중 바쉐론 콘스탄틴의 아카이브를 활용한 브랜드 소개 영상을 보게 됩니다.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스토리텔링이 되는가?”  이 세계적인 럭셔리 그룹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기준은 명확합니다. 따라서 아카이브에서 추출된 헤리티지는 이 회사 전 브랜드의 상품, PR,  매장에 녹아듭니다. 이를 인상적으로 여기던 중 각 브랜드마다 갖춰진 아카이브 조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간 국내 회사에서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카이브를 갖지 못한 건 오래된 브랜드가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브랜드를 만들 수 없는 반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카이브를 공부했습니다. 사회의 질적 성숙과 함께 언젠가 우리에게 반드시 도래할 브랜드 아카이브의 시대를 준비하기로 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해외의 브랜드 아키비스트들이 대부분 역사학 또는 기록학에 기반하고 있음에 착안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기록관리 교육원 Institute of  Archives and Records Management 과정에 등록하여 일과 학업을 병행하였습니다.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위해 공공기록물 관리를 위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자격도 얻었습니다. 졸업 논문이 브랜드 아카이브에 관한 연구였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저 조형일(曺亨一)은 브랜드 아카이브 구축을 제 사명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언젠가부터 오래된 브랜드를 보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기록의 활용을 상상해봅니다.  때로는 브랜드에 제안서를 보내기도 하는데 LS 네트웍스 프로스펙스로부터는 먼저 아카이브 구축 사업의 제안을 받아 헤리티지 기초조사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도 틈틈이 브랜드 역사의 증거가 될만한 것들을 수집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합니다. 그 동안 이 땅의 브랜드에게 시간이 약점이 되어왔다면, 앞으로는 전통이 곧 가치가 되는 브랜드 비즈니스 풍토가 아카이브와 함께 자리잡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필자의 연구조사를 기초로 만들어진 프로스펙스의 책『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는 브랜드 헤리티지에 대한 저의 서툴지만 뜨거운 열정을 내보이려 합니다. 동행해주시는 분들의 격려와 질책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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