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브레송의 몽상
몽상가의 나흘 밤
몽상하기에 나흘 밤은 충분한 시간인가.
몽상이란 것은 무엇인가.
몽상이란 상상하는 바에 있어 바라는 바가 너무 크거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이상을 뜻한다.
이상을 꿈꾸는 것은 몽상에 불과한가.
우리의 로베르 브레송, 그리고 작 중 자크는 몽상가인가.
자크는 몽상가인 로베르 브레송의 페르소나이자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는 현실을 살아가되, 철저히 내면 속에서만 반응한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상실과 고독은 예술의 추상과 닮아있다.
예술이란 추상에는 상실과 고독이 담긴다.
로베르 브레송의 ‘몽상가의 나흘 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중편소설 ‘백야’를 바탕으로 당시의 현대적 감수성과 브레송만의 미니멀리즘을 통해 재창조된 작품이다.
이야기는 센강을 따라 걷던 자크가 우연히 삶의 끝자락에 선 여인 마르트와 만나며 전개된다. 그리고 그들은 나흘 밤을 함께한다.
내면의 세계에 갇힌 몽상가와 사랑에 지친 여인은 고전적인 서사이다. 그러나 브레송의 시선으로 창조된 이들의 세계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질감의 서사를 빚어낸다.
브레송은 비전문 배우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 인간 감정의 본질적인 떨림을 대사의 여백과 시선의 정지 속에 새긴다.
영화는 사건보다 정서의 흐름에 집중하며 사랑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간극,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의 본질을 은은히 탐색한다.
특히 파리의 야경과 고요한 강변은 몽상가의 현실과 겹쳐지며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중간중간 등장하여 눈과 귀를 매료시키는 길거리의 음악가들은 여인에게 있어서는 비현실적인 몽상에 가깝겠지만 반대로 몽상가에겐 지극한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일 것이다.
자크에게 있어 고독은 슬픔이 아닌 일종의 평온이며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이다. 그러나 그런 몽상가 또한 기나긴 고독이 힘들었을테다.
그렇기에 생을 마감하려던 여인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윤리적이라기보단 자크의 고독을 달래기 위한 욕망 발현의 수단으로 나는 보인다.
몽상가의 나흘밤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말하기보다는 그것을 마주하는 인간의 떨림을 시적으로 체험하는 영화다.
브레송의 세계에서 사랑은 관계의 완성이자 말미가 아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빛나는 시간의 순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