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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힘 나게 하는 요령

by 미친 에너지


오늘도 일을 하다하다 8시 반이 되었다.


오늘 환자 130명 넘게 오셨다.


대기환자 20명 이상 될 때는 최소 5분 안에 진료를 봐야 하고


그 5분 동안 차트에 진료 기록을 완벽히 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컴터 화면을 보느라 신경을 쏟게 되면 그만큼 환자를 볼 시간이 줄게 되고, 그의 말에 경청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환자의 말에 모든 힌트가 있고. 모든 플랜이 세워지고, 모든 처방이 결정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진료를 마치고 모든 환자의 차트를

다시

정리한다.


점심시간에 단백질 쉐이크와 커피를 때리고 겨우 몇십명의 차트를 정리하면 한시간이 훨쩍 간다.


눈의 피로를 위해 5분 정도 눈을 감으며 명상을 해야 하고,

3-4분 정도는 스트레칭을 해야만 한다.


총 진료를 마치고, 약국과 의논할 일이 오늘 있었고. 수습할 일을 수습한 후 차트 정리를 시작하느라

금방 여덟시를 넘겼다. 그리고 전화해서 확인해야할 환자들은 해야 했기에 벌써 8시 반이되었다.

그래도 아직 차트 정리를 다 못해서 집에 가져가야 한다.


아...


아들... 내 아들. 집에 혼자 있는 아들도 챙겨야 하는데. 다행히 방학이라 쉬고 있겠지만 일단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근심거리가 있어. 나는 나중에 어떻게 살지? 뭘 하면서 돈을 벌고 살지????

서울대 철학과를 가서 돈을 어떻게 벌지? 내가 진짜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자신이 없어>


6학년이 되는 아들, 제법 진지했고, 목소리에 풀이 죽어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어하고, 역사와 사회, 철학적인 관념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어디서 주어들었는지

서울대 철학과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분명히 어디서 아들 기 죽이는 소리를 듣고 온 것 같은데.. 절대 아니라고 한다.


<지금 너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다보면 그 기쁨이 기쁜일을 만든단다. 지금 너에게 기쁜 일은 뭐야?>


< 유투브 보고 빅뱅, 비와이 노래 듣는 거, 웹툰 보는 거, 책 보는 거....>


<그래, 너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도 기뻐지게 할 수 있지. 다만 지금은 너가 기쁜 일을 하기 위해 숙제와 제 할일을 해야할 뿐이고, 그지?>



<엄마, 나는 독립해서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역시 철학과 지망생 답다.


8시 반에 결국 나는 짐을 싸서 병원에서 나왔고,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20분 걸린다.

집까지 가는 동안 전화를 붙잡고 아들에게 신들린 듯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 ! 지금도 아들은 독립하고 있지!


투투(우리집 고양이) 똥도 스스로 치우잖아? 엄마가 매일 치워야 변기 안 막힌다고 한 그 한마디에

매일 스스로 치우는 00이는 이미 독립한 거야.

혼자사는 것만이 독립이 아니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행동하는 것이 독립이지.


방학 끝나면 준비물 챙기자고 너가 먼저 말하고

너가 스스로 어제 밤에 준비물 다 챙겼잖아.

매번 엄마가 챙겨줬는데 스스로 그걸 챙겨줘서 엄마가 얼마나 편했는지 몰라.

니가 그렇게 엄마에게서 독립해줄 때마다 엄마는 너무 편해.


그리고 이렇게 밤 늦게까지 혼자서 숙제 해놓고 집 지키고 있자나.

그것도 독립이지. 덕분에 엄마는 엄마 할 일 실컷 하고 가잖아.

지금도 충분히 독립하고 있어 너는.



아들은 드디어 진정해간다.


나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한 두개를 칭찬했가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그의 변화됨으로서 내가 에너지(힘을) 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에너지를 받아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들,

즉 상대방이다.

사람은 에너지를 받아야 움직이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에너지는 좋은 기분이다.

좋은 기분,

즉 사람에게 힘을 주는 에너지는

바뀌라고 강요받을 때 소멸한다.


그래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 중에 좋은 모습 하나를 칭찬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안 바뀌어도 된다. 지금 모습 중에 이 모습이 참 좋다.
그 모습이 참 엄마는 좋다.


나아가 환자 분 이 모습은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환자와 아들 밖에 모르느 바보다)


이것이 사랑이다.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칭찬하는 것.

이것은 그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기뻐하는 것.

내가 그 기쁨의 에너지를 아들에게, 환자에게 줄 때 아들과 환자는 힘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도 13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하며

마음 속으로 계속 반복했다.

이미 다 나은 모습을 내가 느껴야 이 환자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으므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빨리 좋아지셔서.

사랑합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용서하세요. 이렇게 열심히 좋게 바꾸실지 모르고 걱정만 해서.

미안합니다. 이런 모습을 몰라봐서.


내가 환자에게 에너지를 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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