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지난 글에서 만자씨(암슬생작가)의 항암 주기를 2주에서 3주로 늘렸다고 했다.
한 주 차이지만 그 효과는 사실 기대 이상이었다. 한 주를 더 쉬고 항암을 하게 되니 항암 전까지 체력이 훨씬 더 좋아졌고, 구내염도 덜해 매운 음식도 먹게 되었고, 식욕도 좋아졌다.
오늘 3주 만의 항암인데, 느낌으로는 아주 오랜만에 항암을 하는 것 같다. 항암 하는 날은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많아 다른 때 보다 병원에 일찍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낮병동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 병상 하나를 선택했는데, 오늘은 운 좋게도 창가 쪽이다.
밖이 보여 답답함이 훨씬 덜한, 소위 말해 로열석이다.
영양주사를 시작으로 항암 전 처치들을 하기 시작했다. 10시 30분경 주치의 선생님 면담을 했는데 염려했던 염증수치(CRP)가 2점대로 정상(5.0) 범위였고, 간, 신장,백혈구, 호중구, 빈혈 등 다른 수치들도 다 좋다고 하신다. 적잖이 긴장했는데 다행스러웠다.
"3주 간격으로 하시니 어떠시던가요? 어떤 분들은 더 오래 쉬다하면 오히려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너무 좋았습니다. 피로감도 훨씬 덜하고 식사도 너무 잘했구요. 돌아서면 배가 고플 정도였습니다. 컨디션이 좋으니 운동도 더 열심히 했고 잠도 잘 자고."
"호호, 그러셨어요? 아주 좋습니다."
선생님의 표정도 아주 밝아졌다.
'이 환자는 뭐든 잘 맞아. 늘 긍정적이고.'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별문제 없으니 항암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암을 연기하지 않고 제때 한다는 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꽤 많은 암 환우분들이 피검사 결과 수치가 좋지 않거나, 몸 컨디션이 안 좋아 항암을 다음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몸 컨션이 좋지 않으면 미리 전화로 일정 변경을 하면 되는데,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멀리서(지역도 다양하다) 오는데 피검사 결과 항암을 하기에 부적절해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는 아주 낭패감이 들 것 같다.
먼길을 소득 없이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것도 속상한 일이지만, 검사 결과 수치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더 마음이 쓰일 것이다.
그래도, 일정이 미루어진만큼 더 잘 먹고, 더 열심히 운동해서 좋은 컨디션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다행히 만자씨는 지금까지 수십 차례 항암을 해왔지만, 한 번도 연기를 한 적이 없다. 수호천사가 철저하게 관리를 해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행운도 따라줬다고 볼 수 있다.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점심은 '산나물(두릅ㆍ엄나무순) 김밥'이었다. 수호천사는 어젯밤 재료를 준비해 놓고, 피곤한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스레 김밥을 싸줬다. 지난번 주문한 산나물로 속을 만든 영양덩어리 '산나물 김밥'이었다.
수호천사가 아침에,
"내 입에는 잘 맞는데 자기 입엔 어떨지 모르겠다."라고 복선을 깔았다.
수호천사는 평균보다 싱겁게, 만자씨는 조금 간간하게 먹으니 그 말인즉 만자씨에겐 싱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밥 한 개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산나물 향이 온 입안으로 퍼졌다. 맛도 좋았다.
다만, 만자씨 입엔 살짝 싱거웠으나, 반찬으로 싸준 두릅, 엄나무 장아찌를 곁들여 먹으니 간이 제대로 맞았다.
의외로 양이 많아 김밥 두 알 남기고 다 먹었다. 남은 건 돌아오는 길에 먹으면 또 꿀맛이다. 어릴 적 소풍 때처럼.
맛있는 도시락을 먹은 후 늘 그러하듯 수호천사에게 결과 보고를 했다.
"자기야, 맛있게 잘 먹었어. 고맙네."
"그래? 싱겁지는 않았구? 괜찮았어?"
"(응 쪼금 싱거웠지만) 아주 입에 딱 맞았어."
점심을 먹을 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병원 옥상을 걸었다.
이후 본격적인 항암제 주사를 시작했다. 항암제는 보통 오후 12시가 넘어야 병실로 전달된다.
주치의 선생님이 채혈 결과를 보고, 항암을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별문제가 없어 항암이 결정되면 그때 병원 약국에서 항암제가 조제된다.
오니바이드, 키투르다, 폐르본을 차례로 주사하고, 5FU *인퓨저를 달고 퇴원을 했다. 빨리 시작해도 오후 5시는 되어야 퇴원이 가능하다.
(* 일정한 속도로 항암제가 주입되도록 특수하게 고안된 의료 기구로 아기 젖병처럼 생김. 병원에서 몸의 케모포트에 연결해 달고 나와 46시간 후 항암제가 다 들어가면 제거함)
오는 길엔 비가 쏟아졌다. 멜론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쉰 목소리로 크게 따라불렀다. 폐운동에 좋을 것 같아서...
6시 30분경 집에 도착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역시 피곤하다. 거기에 긴 운전까지. 소파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
이번 주말은 무리하지 않고 가벼운 산책과 가까운 맛집 투어나 해볼까 한다. 5회까지 봤던 '폭싹 속았쑤다'를 정주행 하는 것도 옵션이다.
이번 항암도 부디 별 부작용 없이, 아니 부작용이 심하지 않게 지나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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