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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 Dec 10. 2015

붉은 핑크색, 그 처연한 아름다움

해달감상기 | Helsingør

@2014년 4월.


감히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덴마크의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벽면이 온통 핑크색으로 물든 사진들로 가득한 전시장을 보았을 때,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유리창으로 된 긴 복도를 지나 마침내 당도한 Richard Mosse 의 Enclave 전시장에는 그 화려한 "핫핑크" 색에 감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멀리서만 바라봐도 시선을 단순에 빼앗는 그 단순한 색감의 마력. 모두는 그렇게 자연에서는 다시 없을 법한 흑백과 핫핑크가 교묘하게 접합된 거대한 사진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된다.



Richard Mosse 의 소름끼치는 핑크색 작품. (c) Louisiana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 사진이 사실은 무섭도록 끔찍한 공포를 함께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아일랜드 출신의 Richard Mosse 는 여러 개의 스크린이 겹쳐진 영상을 통해서 담아낸다. 핑크색 가득한 벽면을 지나 옆쪽으로 난 통로를 통해 어두운 암실로 들어가면, 서로 마주보고 배치된 4개의 스크린과 또 그 옆으로 마주보고 배치된 2 개의 스크린을 마주하게 된다. 이 여섯 개의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지는 영상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핑크색이 가득한데, 이 아름다운 붉음을 통하여 우리가 보게 되는 사실은 참혹하고, 또 잔혹하다.


Richard Mosse 는 DR Congo에서 일년 동안 현지 내전을 일으키는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영상으로 담았다. 코닥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16mm 필름인 Kodak Aerochrom 은, 수풀 속에 위장하고 가려진 적군들을 선별해 내기 위해서 나뭇잎이 가지고 있는 엽록소를 적외선 파장 변환을 통하여 선명한 붉은 색으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필름 없이도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현재에는 더이상 쓸 수가 없어진 이 필름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자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치환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그 필름을 통하여 작가가 담아낸 것은 그 아름다움과 정 반대로 대척되는 점에 서 있는 전쟁의 참혹함이다.

Richard Mosse 의 영상은 점멸을 반복하고, 같은 시간의 다른 관점을 멀티 스크린에 보여주며 관객을 서서히 DR Congo의 잊혀진 수풀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해맑게 웃는 아프리카 청년들이 있으며, 등에는 삐죽하게 장총을 메고, 어깨와 허리에는 섬뜩할만큼 많은 양의 총알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그들은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잔혹할만큼 맑은 눈으로 사격 연습을 하고, 실제 전쟁 습격을 하고, 적 - 과연 적이라고 칭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 의 시체를 들추고 구경한다. 이 모든 장면에는, 무서우리만큼 아름다운 붉은 핑크색이 함께한다. 그들이 숲을 지날 때, 들판을 걸을 때, 야자나무 아래를 지날 때, 옆을 지나가는 UN 군을 구경할 때, 모든 배경은 찬란한 핑크색으로 가득하다.

같은 시간의 다른 관점의 쇼트, 그리고 절묘하게 조화되는 음악은 관객들을 교묘히 아프리카 대륙의 정가운데로 데려가 그들의 핑크색 가득한 공포를 경험하도록 끌어들인다. 아무도 가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던, 그래서 덮여 있었지만, 사실이지만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장면들. 눈 앞에 펼쳐지는 영화 같은, 꾸며낸 것만 같은 장면들에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젊은 청년들이 군복을 입고 장총을 메고 무념 무상의 표정으로 걸어가다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들을 둘러싸고 이리저리 들춰보는 장면은, 이것이 설마 실제 상황인 것인지를 두번 세번 의심하게 만들었다. 언제 무슨일이, 어떤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둠의 장막 속에서 핑크색으로 가득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물들였다.

알려지지 않았기에 잊혀졌던 그들의 일상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핑크색의 영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소름끼치는 현실이었다. 현실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다시 현실로 무섭도록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어쩌면 예술의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전쟁에 대한, 현실에 대한, 그리고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무서우리만큼 아름다운 경종을 울려주는 역할.


반드시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큰 화면으로 관람할 것.


Source: http://en.louisiana.dk/exhibition/richard-mo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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