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장 하늘이 무너진 후

by 이병일

매일의 투쟁, 매일의 기도: 연서와의 하루

집안은 거대한 중환자실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막막했습니다. 연서의 콧구멍으로, 때로는 입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튜브는 그 가느다란 굵기에 비해 너무나 무거운 고통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식도 너머로 관이 지날 때마다 연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다소의 경기 반응이 보였습니다. 그 불편함의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삼켰습니다.


연서의 소화를 고려해 그린비아와 엔커버를 섞은 우윳빛 유동식을 주사기에 정성껏 담습니다. 소화가 되길 기다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주입합니다. 새벽 2시,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에서 주사기를 들고 있다 보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아차 하는 순간, 손에서 미끄러진 주사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쏟아진 유동식이 이불을 적십니다. 그 하얀 액체를 닦아내며 가끔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슬픔이라기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 홀로 서 있다는 지독한 외로움에 가까운 것일까요.


처음에는 바닥에 매트와 이불을 깔고 각도가 있는 쿠션을 놓아 아이를 먹였습니다. 소화가 될 때쯤 다시 자세를 바꿔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거실 구조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리클라이닝 베드를 들여 연서를 눕혔더니, 매번 쿠션을 조절하지 않아도 되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거실 한 면이 의료용 침대와 각종 물품으로 가득 찼지만, 연서가 조금이라도 편안해하는 모습에 안도했습니다. 이후 배에 위루관을 삽입하면서 매번 관을 넣어야 하는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위루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너무 늦게 편하게 해 준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침이면 집안은 복합적인 리듬으로 흐릅니다. 첫째 연우를 학교에 보내는 분주함 사이로, 이모님께서 연서의 식사를 챙겨주십니다. 연서가 먹어야 할 약은 꽤 많습니다. 경기약, 가래약, 유산균, 각종 비타민에 때때로 추가되는 약까지. 약마다 먹이는 타이밍이 달라 시간별로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식사와 투약 사이사이 석션을 하고 가래가 쌓이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한편, 일주일에 거의 매일 한 번꼴로 재활 및 치료를 위해 외출을 합니다. 연서의 몸이 커지면서 유모차도 점점 크고 무거운 장애 아동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내가 들기에는 많이 무거울텐데, 엄마는 역시 대단합니다. 사실 아내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인데,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연서를 위해 정들었던 교실을 뒤로하고 장기 휴직을 선택했습니다.


밤 9~10시부터는 제 차례입니다. 아내가 연우를 재우러 들어가면 저는 연서 곁을 지킵니다. 마지막 식사를 마친 연서에게 여러 약을 시간대에 맞게 나누어 먹입니다. 호흡에 도움이 되도록 네뷸라이저를 해주고, 석션을 하고 기저귀를 갈아줍니다. 자세를 바꿔주거나 엎드리게 한 후 마사지기로 등을 두드리고, 시간에 맞춰 위루관으로 물을 넣어 수분을 보충해 주다보면 새벽이 깊어갑니다. 아이를 돌보는 틈틈이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팀장이 보내온 자료를 읽고 메일로 피드백을 하거나, 다음날 있을 미팅에서 얘기할 내용을 적어둡니다. 전략 보고서의 논리와 아이의 숨소리가 교차하는 기묘한 새벽. 연서가 잘 잠들면 소파에서 웅크리고 잠시 눈을 붙이고, 때로 밤낮이 바뀐 상태면 그마저도 쉽지는 않습니다. 늦은 새벽에 역시 뒤척이는 아직 어린 연우 옆에서 충분치 못한 잠을 자고 나온 아내와 교대하고 나서야, 내일을 위해 세 시간 남짓하나마 제대로 된 잠을 청하러 들어갑니다.


작은 어깨가 견뎌내는 빛: 연우라는 존재

연서가 태어나기 전까지, 연우는 온 우주의 중심이었습니다. 양가 조부모님부터 우리 부부까지 모든 사랑이 연우 한 점으로 모였습니다. 연서의 사고 이후, 우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의 슬픔이 연우의 어린 가슴에 그늘을 드리우지는 않을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일상을 지켜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연서의 유모차 옆에서도 연우와 까르르 웃으며 공놀이를 했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러 알라딘 서점에, 동네 도서관에, 서울책보고에 갔습니다. 주말이면 수영장으로, 냇가로, 어린이 대공원이나 올림픽 공원 또는 서울숲으로 가급적이면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놀이터의 시소 한쪽에는 연우가, 그 옆 벤치에는 연서와 아내가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연우는 우리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배워갔습니다. 동생의 기저귀를 가져다주고, 석션이 필요하면 혼자서 책도 봅니다. 그 성숙함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가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걱정되어 찾아보니,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 질환이 있는 형제를 둔 아이들은 종종 ‘착한 아이 증후군’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공감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얻기도 한다고 합니다.

“Glass child(유리 아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투명해서 부모의 시선이 그 뒤에 있는 아픈 형제에게만 머물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연우는 투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단단하게 채워갔고, 우리 삶에서 가장 빛나는 ‘밝은 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연우를 배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우의 존재가 우리에게 힘을 주었죠. 연우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엉뚱한 질문들이 없었다면, 아내와 나는 무너진 하늘 아래에서 영영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연우는 우리가 다시 웃어도 된다는 것을 알려준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상처를 품고 걷는 법: 신체 예산의 회복

견디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다양한 서적을 뒤적이고 다른 이들의 경험담을 참고했습니다. 뇌과학의 ‘신체 예산’ 개념이나 ‘회복탄력성’ 이론들을 접하며 그것을 일상에 옮기려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신체 예산을 갉아먹지 않기 위해 애썼고, 그러면서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와 연우 셋이서 무드 미터를 활용해 지금 나의 감정이 ‘빨강(에너지는 높으나 불쾌함)’인지 ‘파랑(에너지도 낮고 불쾌함)’인지 확인하고 하루를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고, 가급적 스마트폰에 기대지 않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읽고 배우고 들은 다양한 내용들을 토대로 했지만, 우리에게 맞는 방법들을 적용하면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가면 되는 것을. 그 과정에서 깨달은 가장 큰 진리는 이론보다 ‘마음의 결’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양가 가족들의 지지, 아내와의 끈끈한 동지애, 그리고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 가족의 파산 직전인 신체 예산을 조금씩 채워주는 적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와 나, 연우와 연서, 그리고 양가 가족들의 따스한 배려가 있었기에 우리 가정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무모하고도 찬란했던 여름: 동해 여행의 기억

연서가 돌이 되기도 전인 어느 여름, 우리는 속초로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챙겨야 할 의료용품만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다를 보고 싶었고,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여행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연서는 작은 바구니형 카시트에 뉘어 백사장 파라솔 아래 두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번갈아 가며 연우와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튜브를 타고 파도에 몸을 맡겼습니다. 백사장에서 한참동안 모래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연우가 다급하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외쳤습니다. 화장실은 백사장을 한참 가로질러야 있었습니다. 나는 한 손에는 연서가 누워있는 바구니 카시트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우의 손을 꽉 잡은 채 모래밭을 뛰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은 비 오듯 흐르고, 팔을 떨어질 듯 하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그 장면은 지금도 제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뜨거운 모래를 밟으며 두 아이와 함께 달리던 그 순간.


이틀동안 묵었던 해수욕장 인근 숙소를 뒤로하고 설악 쪽에 있는 리조트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다가 파도가 너무 예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 한 장이 아직도 거실에 걸려 있습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서 물방울은 눈부시게 산란하고,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 위에는 햇살이 가득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고통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리조트에서의 장면들도 파노라마 사진처럼 떠올려집니다. 실내 수영장에서 지치지 않고 노는 연우와 썬베드에 누워있는 연서가 동시에 제 눈에 들어왔을 때의 미묘한 감정, 어둠이 깔리자 형형색색의 야광 조형물들 보며 신나하는 연우와 아내, 둘이 하트를 그리며 사진 찍는 모습. 방에 돌아온 우리는 큰 욕조에 넷이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녹였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 예쁘게 남습니다. 밤에 잠드는 건 사실 조금 고생이었지요. 보통은 숙소를 잡을 때 거실과 방이 분리되거나 방이 2개인 곳을 잡는데, 여기는 호텔형 룸이라 거실과 방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밤새 연서를 돌보면서, 특히 석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사실 꽤 커서 아내와 저는 번갈아서 연서를 보긴 했지만 둘다 거의 잠을 못잤네요.


다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공기를 마십니다. 신선한 공기와 함께 찾아온 울산바위의 절경은 잠시동안 고단함을 잊게 할 만큼 장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연서의 연약한 피부가 햇볕에 타서 하얗게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무모한 아빠탓에 가장 고생한 건 연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행은 우리에게 단순한 나들이 이상의 의미였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짐을 싸고, 모래밭을 달리고, 함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그때 일을 떠올리며 부여하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상처를 안고도 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석션기 소리에 잠을 설치고 아이의 피부가 벗겨질지언정, 그 눈부신 물방울의 기억이 우리를 다음 계절로 인도할 것임을 믿으며 우리는 다시 일상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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