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도시의 혈관
시계 바늘은 무심하게도 오후의 끝자락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고객사 회의실에서 인수 전 상업 실사(Commercial Due Diligence; CDD) 최종 보고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역시나 예상보다 늦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유능하고 이성적인 컨설턴트의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고객사 임원 분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논리로 응수하고, 복잡한 데이터 시트를 넘기며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을 역설하던 그 회의실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습니다.
하지만 보고를 마치고 빌딩 밖으로 나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전략가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8시에 예정된 30분의 짧은 면회 시간을 지키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한없이 무력한 아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중환자실에 홀로 누워 있을 연서를 생각하면 숨이 막혔습니다. 첫째 연우가 태어났던 그 눈부신 기억이 대비되듯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습니다.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이 짙고 무거운 공기, 그리고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강남 한복판의 도로는 마치 거대한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위치를 바꿔가며 연신 스마트폰의 택시 호출 앱을 눌렀지만, 화면엔 야속하게도 ‘주변에 차량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반복되었습니다. 마음이 타들어갑니다.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차량의 불빛과 매연은 눈이 시리도록 따가웠고, 어느덧 검정색 정장 속 와이셔츠는 흠뻑 젖었습니다.
겨우 택시 한 대를 잡아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옆자리 기사님에게 “혹시 지름길이 없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 시간엔 답이 없어요”라는 무뚝뚝한 대답뿐이었습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정지 화면처럼 느릿했고, 반대로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갑니다. 이대로면 면회 시간 10분을 남기고 겨우 도착할 수 있을지. 연서의 작은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연서야, 아빠 가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질주하는 아버지의 시간
면회 종료 12~13분을 남겨두고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도 잊은 채, 정장 차림으로 한양대학교 병원 언덕길을 내달렸습니다. 구두 굽이 보도블록에 부딪히며 내는 불규칙한 소리가 마치 내 흐트러진 심장박동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병원 로비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찌를 때 쯤,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조차 없어 계단을 뛰어 올라가 중환자실 문 앞에 섰을 때, 내 시야는 이미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로 흐릿해져 있었습니다.
짧은 만남
중환자실의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기계들이 내뱉는 금속성 비프음이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 그 거대하고 삭막한 기계들 사이에서, 연서는 어제와 다름없이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며칠 사이 몇번을 뵈었던 간호사 선생님과 눈이 마주칩니다. 제 얼굴 상태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고 짐작하셨나봅니다. 선생님께서 살짝 얘기해주십니다.
“오늘 면회시간 마치고 15분 정도는 더 계셔도 될 것 같아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만 연신 끄덕였습니다
아이의 작은 몸엔 가는 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조그마한 가슴팍에는 심전도 센서가 붙어 있고, 코에는 호흡을 돕는 튜브가 삽입되어 있고, 가느다란 손등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은 『순수 박물관』에서 사소한 사물이 한 사람의 평생을 대변한다고 하더군요. 연서가 누워있던 중환자실 침대가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고귀한 전시실이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습니다. 아직 부기가 가시지 않은 파리한 얼굴, 그리고 희미하게 푸른빛을 띠는 입술. 그 작은 손은 내 새끼손가락 하나를 다 감싸지도 못할 만큼 작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연서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봅니다.
“늦어서 미안해, 연서야. 많이 기다렸지.”
차마 눈물이 터질까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조곤조곤 속삭였습니다.
“아빠가 오늘 회사에서 중요한 보고를 하는데, 회의가 길어져서 조금 늦었어. 택시도 안잡히고, 차도 너무 막혀서 정말 열심히 뛰어서 왔어. 우리 연서 보니까 아빠 힘이 난다.”
연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작은 숨만 헐떡이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큰 병원 침대의 그 작은 움직임과 숨소리에서 아이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내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쥐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웅변보다 강력한 생의 의지였고, 내게 건네는 무언의 위로였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의 배려로 얻은 15분의 추가 시간은 그렇게 찰나처럼 지나갑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면회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간호사의 목소리는 마치 신데렐라의 마법을 깨는 종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잡았던 손을 놓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이 차가운 기계들 속에 아이를 홀로 두고 돌아서야 하는 아빠의 마음은, 매일 경험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과도 같았습니다.
중환자실 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깜빡이는 초록색 모니터 불빛들이 연서의 숨결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밖은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낮의 소란함은 온데간데없이 적막만이 감돌았습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손끝에 남은 연서의 작은 온기를 잊지 못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내 인생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선명한 빛이었습니다.
어둠 속 눈물과…
하루는 연서를 보러 병원 언덕을 오르는데, 이미 해는 저문 시각이었습니다. 병원 주변은 인적이 드물고, 학교 건물들의 그림자로 어둠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길을 비추지만, 내 마음속은 더욱 캄캄했습니다. 어느덧 늦가을 저녁의 찬 공기가 시렸습니다. 터벅터벅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러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길을 걸어 다니면서 울어본 경험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물이 맺히는게 아니라 주르륵 쏟아졌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차가워진 뺨을 타고 흐릅니다. 고통, 슬픔, 연서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이 뒤섞여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어둠속에서 그렇게 아이처럼 울고 또 울었습니다.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저밉니다.
그 밤의 언덕길은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이 슬픔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축축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조용히 되뇌었습니다. 연서가 이렇게 살아남아 주었으니, 이제 아빠도 연서를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이 밤은 이렇게 깊어가지만, 마음속에는 단단한 다짐이 희미하게나마 피어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