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3장 우리 가정은 행복합니다.

by 이병일

그 시절의 행복은 마치 탄산음료 같았습니다. 뚜껑을 따는 순간 치익, 하고 터져 나오는 경쾌한 소리,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과 짜릿함. 그것은 즉각적이고 선명한 기쁨이었습니다. 서른넷에 결혼을 하고 둘째 연서가 태어나기 전까지의 4년 반 남짓한 시간은 내게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반짝이는, 행복으로 꽉 찬 풍선 같은 날들이었지요.


신혼의 금요일 밤은 늘 설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주의 피로를 털어내듯 빈백에 깊숙이 몸을 묻고, 은은한 조명 아래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와인 잔을 기울였습니다. 굳이 멋을 내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저 서로의 숨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만으로도 공간은 충만했습니다. 때로는 삼겹살집의 지글거리는 불판 앞에서 소주 한 잔에 세상 시름을 잊기도 했고, 강변역 포장마차의 덜컹거리는 천막 아래서 오돌뼈를 안주 삼아 밤 깊은 줄 모르고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소주를 한 잔 기울일 때는 2병을 시키면 딱 좋았습니다. 한병으로는 조금 모자라다 싶은 제가 한병 반을 마시고, 한병은 조금 부담스러운 아내가 반병을 마시는 정도의 비율이었습니다. 둘이라서 좋았고, 함께라서 더 좋았던 날들이었습니다.


주말이면 우리는 지도를 펼쳐 들고 새로운 목적지를 찾았습니다. 한번은 아내의 생일 겸 미리 계획했던 벚꽃 여행을 위해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주말이라 도로는 꽉 막혔고, 내 속은 이틀 전부터 알 수 없이 꼬인 듯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터널을 지날 때, 아내가 터뜨린 환호성은 멀미마저 잊게 했습니다. 경포호 주변을 손잡고 산책하며 맞았던 봄바람은 더없이 간지러웠고, 저녁 펜션 바비큐 그릴 위에서 고기가 익어갈 때 퍼지던 고소한 냄새는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고기를 탑처럼 쌓아서 고기 케익이라고 우겼습니다. 그 모든 순간의 즐거움이 뱃속의 불편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습니다. 그날 밤, 속이 너무 불편해서 밤새 뒤척이다 다음 날 아침 겨우 서울로 올라왔고, 월요일 아침에 찾은 병원에서 맹장염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으로 이송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복막염이 될 뻔했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아내와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우리 참 다이내믹하다”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마저도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기묘하고 따뜻한 추억입니다.


푸켓 인근의 카오락으로 떠났던 태교 여행은 인생 첫 휴양지 여행이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고운 모래의 감촉, 따뜻한 햇살 아래 선베드에 누워 꼭 읽겠노라고 사놓고 째려만 보던 ‘일레븐 링스’를 읽었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미 프로농구(NBA)의 필 잭슨 감독이 쓴 일종의 자서전 비슷한 내용인데, 저의 우상인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일화들이 많아서 참 흥미롭게 읽어 나갔습니다. 책을 읽다 잠시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파도 소리를 듣던 그 순간이 문득 기억납니다.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었습니다. 그 나른하고 평화로운 행복의 여운은 꽤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연우가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결혼보다 아이가 인생을 바꾸는 더 큰 계기가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둘이 아닌 셋이 되어 함께 잠을 설치고, 피곤함은 배가 되었지만, 셋이서 느끼는 행복은 산술적인 합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1 더하기 1 더하기 1은 3이 아니라, 10,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우와 함께 스티커를 붙이며 온 집안을 알록달록하게 만들고, 서툰 솜씨로 그린 연우의 낙서에 감탄하며, 블록으로 성을 쌓았다가 와르르 무너뜨리며 까르르 웃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내 배 위에서 쌔근쌔근 잠든 연우의 작은 숨소리,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연우와 함께했던 여행의 순간들은 지금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 위에서 요트를 타고 바람을 가르던 순간의 상쾌함, 오키나와의 투명한 바닷물 속에서 연우를 품에 안고 물고기들과 눈을 맞추던 찰나의 경이로움, 비 오는 여수에서 처음 맛본 간장게장의 짭조름함과 케이블카 아래로 펼쳐지던 밤바다의 불빛들… 코타키나발루의 리조트 인피니티 풀에서 황홀하게 물들어가던 일몰을 배경으로 연우를 번쩍 안아 올렸을 때, 아이의 얼굴에 번지던 그 환한 미소는 내 인생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매순간, 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충만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4년 반 동안 느꼈던 행복은 그 자체로 즐거움과 기쁨으로부터 오는 행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났고, 원하는 시기에 아이를 가졌으며,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양가 부모님도 가까이 계셔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고, 나 역시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그래서 행복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우리가 믿었던 행복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말한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가 누리는 즉각적인 쾌락의 총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The experiencing self is the one that lives in the present and knows the present(경험하는 자아는 현재를 살며 현재를 아는 자아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눈앞의 즐거움이 곧 삶의 본질이라 믿었습니다. 건강한 신체, 안정적인 직장, 사랑스러운 아이,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평온한 환경들. 우리는 이 조건들이 마치 자연법칙처럼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행복이란 그저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가 설계한 도면대로 집을 짓기만 한다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성채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가올 폭풍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지극히 아름답고도 연약한 ‘운’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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