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우리 반에는 별명이 '세탁소'인 친구가 있었다.
집이 세탁소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이었다.
동네 주택가의 작은 세탁소였고, 바로 옆 가정집과 내부 통로로 연결돼 있어 오가기도 편했다.
친구 옷에서는 늘 은은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친구집에 놀러 가면 다림질할 때 나는 스팀 소리가 들려서 괜히 신기하고 멋져 보였다.
어느 날 세탁소가 말했다.
"이번 주말 내 생일인데, 집에서 밥 먹자."
친한 몇몇 친구들이 초대를 받았고, 세탁소는 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야, 너희들 알지? 우리 엄마 음식 솜씨 진짜 별로인 거. 맛없으면 그냥 남겨. 억지로 먹지 마.
엄마도 자기 음식 못하는 거 아셔. 근데도 생일상은 꼭 챙겨주시겠다며 친구들 꼭 데려오라고 하시더라."
그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어딘가 진심처럼 들렸다.
실제로 점심시간에 친구들 반찬을 나눠 먹을 때면, 세탁소의 반찬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마치 암묵적인 약속처럼. 한 번 먹어본 친구들도 두 번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설마 그렇게까지 맛이 없겠어?'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생일을 기다렸다.
드디어 생일 당일, 세탁소 집에 도착하니 커다란 식탁 위에 버터크림 케이크와 과일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고, 사람 수에 맞춰 큼지막한 왕돈가스가 접시에 담겨 있었다. 보기엔 꽤 그럴듯했는데...
어머니는 일손이 바쁜지, "얘들아,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 하시곤 다시 세탁소 쪽으로 들어가셨다.
우리는 나이프로 돈가스를 썰어 포크로 조심스럽게 한 입 넣었다.
'... 어? 이게 뭐지?'
식탁 위에 갑작스레 정적이 내려앉았다.
겉은 바삭할 줄 알았는데, 눅눅했고, 고기 맛은 거의 없었다.
대신 밀가루 반죽 특유의 텁텁하고 눅진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기름도 덜 빠졌는지 느끼함이 오래 남았다. 친구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나만 이래? 거의 튀김옷만 먹는 기분인데.'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을 보니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세탁소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때 괜히 말한 거 아니지? ㅋㅋ 맛없으면 남겨. 빅웨이 가서 햄버거나 먹자."
"아냐 아냐, 괜찮아. 근데 진짜 크긴 하다, 왕돈가스네ㅋㅋ"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니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할 순 없었다.
우리는 천천히 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돈가스를 한 조각씩 줄여갔다.
그런데 문제는 일행 중 한 친구였다.
항상 급하게 먹는 습관이 있던 녀석. 학교 점심시간에도 늘 밥 먹기 1등이었던 그 친구는 자기 돈가스를 케첩에 흠뻑 적셔 눅눅하게 만든 뒤,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말했다.
"어휴 다 먹었다. 세탁소야, 콜라 더 없냐?"
"냉장고에 있어. 네가 꺼내 먹어."
그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 마침 세탁소 안쪽에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어머, 이 친구는 벌써 다 먹었어? 돈가스 찾고 있었구나? 엄마를 부르지 그랬어~"
어머니는 미안한 얼굴로 가스레인지 위에 있던 왕돈가스를 가져와 친구 앞에 놓아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며, "필요한 거 있음 언제든 불러~" 하시곤 다시 세탁소 쪽으로 사라지셨다.
우리는 친구 앞에 새로 놓인 두 번째 왕돈가스를 보고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러니까 좀 천천히 먹으라니까!"
"진짜 무식하게 입에 다 때려 넣더라 ㅋㅋㅋ"
그 친구는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야, 진짜... 누가 제발 조금만 먹어줘라ㅠ 나 진짜 배 터질 것 같다고!"
그날 이후, 돈가스를 먹을 때면 어김없이 세탁소 생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상하게, 피식 웃음이 난다.
그 친구의 절박한 외침도, 외면했던 우리들도 그날의 웃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