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의 추억

(1) 국어 선생님과 금강불괴

by 해가뜨니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참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싸움을 밥 먹듯 하면서도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겼으니 말이다.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국어였다. 국어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2학년 때 우리 국어 선생님은 단발머리에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얼굴도 단아하셨다. 그런데 말투에 사투리가 섞여 있어 가끔 투박하게 들렸고, 이름도 남자 이름 같아서 특이했다. 처음 선생님의 성함만 들었을 땐 당연히 남자 선생님일 줄 알았다.


선생님은 항상 바지를 입으셨는데, 어느 날 학교 행사가 있어 처음으로 치마를 입고 오셨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을 본 순간, 반 친구들이 깜짝 놀라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오..."


"선생님, 오늘 너무 예쁘신 거 아니에요? 혹시 선보러 가세요?"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선생님은 "짜식들, 나도 꾸미면 예쁘다고!" 하며 으쓱해 보였지만, 쑥스러운 표정을 숨기진 못하셨다.


나는 그날의 선생님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고, 생각할 때마다 설렘이 여전했다. 선생님은 정말 아름다우셨다. 그날 이후 우리 반에서는 국어 선생님이 결혼을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는 인식이 공식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를 유독 챙겨주셨다. 도서관 사서가 없고, 국어 선생님이 책 대출도 맡고 계셨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찾아가 책을 빌렸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특별하게 여긴 듯했다. 가끔 내가 빌린 책을 다 읽었는지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도서관에서 혼자 심심하셨던지 반납할 때마다 책 내용에 대해 자주 물어보셨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했고, 선생님은 그때마다 나를 늘 칭찬해 주셨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선생님의 칭찬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종종 놀리곤 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라며 선생님 말투를 따라 하고 낄낄댔다. 내가 "한 번만 더 따라 하면 죽는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면 그제야 장난을 멈췄다. 나는 싸움을 자주 하는 말썽꾸러기였으니까.


우리 반에는 김희원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성격은 정말 별로였다.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와 거친 말투 때문에 상대방은 늘 기분이 상했다. 체격이 엄청 커서 싸움에서는 맷집이 장난 아니었다. 맞아도 맞아도 끝까지 버텨서 결국 상대방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졌다. 반 친구들이 희원이의 별명을 '금강불괴'라고 부른 이유다.


두발 규정이 엄격해서 아주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녔는데,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밀릴 것 같으면 상대의 머리를 이빨로 물어뜯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희원이는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

희원이는 손에 뒷짐을 지고 마치 동네 이장이라도 되는 듯 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비를 걸다가, 결국 내게도 다가왔다.


"다른 수업시간엔 선생님 질문에 찍소리도 못하면서, 국어 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나대냐?"


순간 욱하는 마음에 그대로 받아쳤다.


"너 방금 뭐라 그랬냐?"


결국 희원이와 싸움이 붙었다.


희원이는 수세에 몰릴 때마다 내 머리를 이빨로 물려했지만, 나는 간신히 피했다. 그러자 손톱을 세워 내 얼굴을 긁었다. 비열한 행동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나는 더 거칠게 주먹을 날렸다.

싸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마침 수업 종이 울렸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이 내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얼굴에 불이 나는 듯 화끈거렸다.


'거울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국어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나는 수업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그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셨다.


"쓰니 얼굴이 왜 그래? 싸웠니?"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도서관으로 불렀다. 그리고 서랍에서 연고를 꺼내 내 얼굴에 발라 주셨다.


"이렇게 상처 내면 어떡해, 얼마나 아프니..."


3f513f61-691a-4725-a435-3379a4102b28.jpg 출처 : ChatGPT AI 생성


선생님의 다정한 말투와 살살 불어주는 숨결 덕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도대체 누구랑 싸운 거야?"


선생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실 거라는 기대감으로 솔직히 말했다.


"김희원이랑 싸웠어요."


선생님은 크게 눈을 뜨며 깜짝 놀라셨다.


"전교 1등 김희원이?"


"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듯 입술을 깨물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희원이가 나쁜 애는 아닌데… 친구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응?"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선생님은 진짜 희원이가 어떤 애인지 모르시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도서관을 나오며 깨달았다. 선생님이 특별해 보였던 그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희미해져 버렸다. 잠시 마음이 설렜던 것도, 위로받았던 따뜻함도 결국은 내 진짜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의 평범한 위로에 불과했다.


나는 스쳐 지나가며 신발장에 놓인, 저마다 색이 다른 신발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정히 손을 내밀어주며 위로해 주는 내 편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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