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형제, 지금은 자매

by 해가뜨니

일요일 오후, 막내딸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다가왔다.


“아빠... 언니가 놀아달라는데 안 놀아줘. 유튜브 본대.”


“언니도 이제 막 공부가 끝났으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난 언니랑 놀고 싶어서 공부 끝나길 기다렸단 말이야. 언니랑 노는 게 재미있어. 근데 안 놀아준대.”


나는 울먹이는 딸을 품에 안고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그러던 중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국민학생인 나는 유치원 다니는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종종 귀찮게 느껴지곤 했다.

그날도 친구들과 놀기로 한 약속 때문에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엄마, 친구랑 놀다가 오면 안 돼?"


“너 나가면 동생은?”


“혼자서 장난감 가지고 놀면 되잖아. 오늘은 내 장난감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말할게.”


언제 왔는지 모르게, 옆에 서 있던 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난 형이랑 같이 놀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이 더 중요했고, 빨리 나가고 싶었다.


“엄마, 그럼 동생이랑 같이 나가면 돼?”


방금 전까지 울먹이던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내편이 되어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 형아랑 같이 나가서 같이 놀고 싶어요! 제발요!"


엄마는 동생 문제가 해결되자, 흔쾌히 허락하셨다.


"밖에 나가면 동생 꼭 잘 챙기고,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야 해. 알았지? 저번처럼 해 질 때까지 놀면 안 돼."


동생과 나는 동시에 대답했다.


"네!"


동생과 나는 외출복으로 후다닥 옷을 갈아입었다.

먼저 나간 동생이 문밖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형, 빨리 와!”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8층에서 7층으로 내려갈 때쯤, 나는 마음속으로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이제 집에 들어가. 오늘은 정말 안 돼. 다음에 놀아줄게!"


동생은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했다.


"싫어.. 엄마가 형이랑 같이 놀라고 했단 말이야"


나는 완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형이 다음에 진짜 재미있게 놀아줄게. 오늘은 진짜 안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말고 바로 올라가. ”


1층에 도착하자, 나는 내리기 직전에 우리 집 층수를 눌렀다.

동생은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안에 그대로 서 있었다.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곧 문이 닫히고, 동생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 또 왜 울어... 괜히 마음 불편하게"


약속 시간에 늦은 나는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려 놀다 보니, 동생의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거실에서 혼자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동생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형아~” 하고 웃으며 달려올 동생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작고 가만한 그 어깨가 어쩐지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시며 화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너, 동생 이용해서 나가려고 그랬지? 형이 돼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못됐어!”


“엄마, 그게 아니라... 진짜 약속 시간 다 됐는데, 안 보내줘서 그런 거 말이야...”


엄마의 다음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 동생, 혼자 울면서 집에 들어왔어. 형이 거짓말했다고 얼마나 서럽게 한참을 울었는지 알아?”


동생을 쳐다보니 작은 어깨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었다.


그날, 형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던 어린 동생에게 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형과 함께 있으면 씩씩했던 동생을, 나는 외롭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외로움은 단단히 굳어져, 결국 동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되었다.


그때의 기억은 오래도록 후회로 남아 있다.



“언니가 동생 마음도 좀 알아줘야지. 괜찮아, 울지 마. 아빠가 같이 가줄게. 언니랑 얘기 잘해보자.

우리 셋이 같이 놀자, 응?”


막내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서 내려왔다. 눈물을 닦고,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희망해 본다.


형제였던 나는, 동생을 외롭게 했지만 자매인 너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를.


나에게는 후회의 기억이 남았지만,

너희에게는 따뜻한 사랑의 기억으로 채워지기를.


그때는 형제, 지금은 자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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