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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프랑스

Chapter 2. 세계 속으로

by 뚱이

♡ 다시 프랑스로 가는 길


이탈리아의 마지막 숙소를 뒤로하고 남프랑스를 향해서 가는길에 오토그릴에 들려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오토그릴은 유럽에서 찾아보기 힘든 화장실이 공짜인 고속도로 휴게소 체인점이다.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진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들로 주린 배를 채우고서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잠깐 눈을 부치기로 했다.


한 시간 쯤 지나서 갑자기 차가 휘청 휘청 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이런! 아내가 졸음운전을 하고 있다. 가까운 휴게소에 들려서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사고가 나면 일이 복잡해진다’고 ‘무리해서 운전하면 안 된다’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한바가지나 퍼부어주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 남편을 도와준다고 졸음을 참고 운전을 하려고 했던 아내의 마음을 생각하니 그 마음이 예뻐서 잔소리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말해줬다.


이번 숙소도 시내에서 한참을 꾸불꾸불 들어가 산속에 숨겨져 있다. 깊이도 들어간다 싶다. 어렵게 AirB&B에 적혀 있는 주소에 도착했는데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바로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어서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호스트가 안내 한 방향으로 한 블록쯤 더 들어가니 손을 흔들면서 반기는 호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간단한 전화통화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게 하는 나 스스로를 뿌듯해 하며 호스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숙소 앞마당에는 밝은 하늘색의 넓직한 수영장과 오픈 벤치들이 있고 숙소 벽면은 화이트 톤으로 되어있어 마치 산토리니의 해변 호텔 같은 느낌이다. 안주인과 바깥주인이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숙소에 찾아와 친절을 베풀어 주니 그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감사했다. 덕분에 이번 숙소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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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 이상하다


남프랑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차에서 경고등이 깜박거린다.

지난번에는 요소수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또 뭘까? 싶어서 가까운 정비소를 검색하여 찾아 갔다. 그런데 정비소에 도착할 때 쯤 경고등이 꺼져버려서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는 정확한 상황설명을 하기가 어려웠다.

정비소 직원은 별문제 없는 거 아니냐며 다시 문제가 생기면 돌아오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출발해서 숙소로 향하는데 또 경고등이 깜박거린다. 이번에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곧바로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정비소로 향했다. 역시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나니 해결은 간단하다. 30분정도 지나니 수리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향하는데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에 정비소가 가까이에 없는 먼 길을 여행하는 중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도 그저 감사했다.

2-189 (2).png 모나코의 광장
2-190.png 멍뚱의 시원한 지중해 해변
2-191.png 샤갈이 잠들어있는 생폴드벙스의 공동묘지
2-192.png 에즈 빌리지 정상에서 내려다본 지중해


♡ 베르동 계곡


너무나 아름다운 알프스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베르동 계곡의 첫 번째 시작지점은 가스띠용 호수다. 이곳까지는 숙소에서 두 시간 거리이지만 가는 길이 워낙 멋있고 신기한 협곡들과 절리들이 눈길을 사로잡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달릴 수 있다.


가스띠용 호수에서 베르동 강을 따라 셍뜨크와 호수까지는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구간이 진짜 베르동 계곡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기하고 멋지고 웅장하면서도 정말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단지 길이 좁고 너무 구불거려서 사고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다들 사고 없이 잘 들 다니는 거 보면 세상에는 운전 잘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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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놓고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중간 중간 멋진 포인트에서 잠깐 주차하고 사진을 찍어보지만 이게 사진에 다 안 담기는 게 너무 아쉽다. 이건 정말 직접 봐야만 하는 광경이다.


드디어 도착한 셍뜨크와 호수의 물은 초록색 같기도 하고 파랑색 같기도 한 비취빛을 띄고 있다. 북해도의 청의 호수 같은 색을 띄고 있는데 그 규모는 비교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정말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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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스를 떠나 다음 숙소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한 김밥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이삿짐을 꾸려서 숙소와 이별을 고했다. 정말 친절한 호스트와 너무나 아름다운 숙소를 떠나려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앞으로 있을 또 다른 숙소들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베르동 계곡에 다시 들려서 계곡의 멋진 풍경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아침에 열심히 준비한 김밥과 맛있게 익은 배추김치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지나가던 한국 아저씨가 말을 걸어와서 깜짝 놀랐다.

자기들은 두 부부가 여행을 하고 있고 우리와 같은 날 출발해서 90일 여행을 거의 마쳐가고 있다고 하신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사람들 이기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다음숙소를 예약해 놓은 상태이고 너무 늦게 도착하면 또 밤길에 길을 헤매이게 되니 죄송하다며 헤어져야만 했다. 만약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동안 우리가 겪은 일이랑 그분들이 겪었던 일들을 서로 나누면서 우리가 준비한 김밥과 배추김치의 맛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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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봉투 분실 사건


대한항공 광고로 유명해진 마을 무스띠에 상뜨마리와 라벤다 평원으로 유명한 발렁솔르를 지나 새로운 숙소인 마흐띠그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으로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정리하는 중에 아내가 폭탄 발언을 한다.

“여보, 미안해. 지난 숙소에 우리 전 재산인 복대를 침대 밑에 놓고 왔어.”

“뭐라고?”


이미 저녁 7시가 넘었지만 그나마 지난 숙소까지는 고속도로로 가면 여기서 2시간 반 거리다. 호스트에게 바로 전화해서 우리가 놔두고 온 지갑이 있어서 돌아가려 하는데, 늦은 시간이지만 10시까지 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친절한 호스트는 언제든지 다시 와도 좋다고 한다.


두 시간 반을 운전해서 다시 도착한 숙소에 들어가 보니 안방 침대의 배치가 바뀌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걱정스런 손길로 침대들을 전부 들춰보니 다행히 복대가 매트리스와 침대틀 사이에 곱게 놓여있다.

다행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우리를 너무나 친절하게 맞이해주고, 늦은 시간에 운전하면 위험할 테니 하룻밤 더 자고 아침에 출발하라고 이야기 해주고, 가는 길에 졸릴 수도 있으니 가면서 먹으라고 간식꺼리도 챙겨주던 착한 부부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세상에는 참 착한사람들이 많구나 싶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더 너그러워 진건가 싶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내가 미안하다며 운전해줘서 그나마 편하게 마흐띠그 숙소에 다시 도착했다.

2-196.png 베르동계곡 인근의 조용한 마을 무스띠에쌍뜨마리
2-197.png 발랑솔의 끝없이 펼쳐진 라벤다밭


♡ 푸념 2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아침부터 약간 짜증이 난다.

8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아무도 안 일어난다. 언제나처럼 아침을 다 차려놓고 깨워야 일어나는 상황이 오늘은 유독 짜증스럽다.


매일아침 일찍 일어난 죄로 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그날의 여행계획도 세우고, 여행경비 정산도 하고, 다음 숙소 예약도 하고, 중간 중간 예약관리도 해야 하고, 운전도 하고, 길안내도 하고, 통역도 하고, 관광지에 대한 정보 설명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자연스래 내가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가족들 그 누구도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그냥 여행하는 게 좋은 건지 관심이 없는 건지.

이래서 나만 두 번이나 감기에 걸렸나? 싶다.


♡ 푸념 3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곳들을 두루 돌아다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운전을 하다 보니, 그동안 서로에게 아쉬웠던 것들을 털어 놓게 되었다. 기분 좋게 여행 중이라서 이럴 때 조금 털어 놓으면 서로 마음이 좀 덜 상할까 싶어서 이야기 한 건데 이 것이 아내의 맘에 상처가 되어 서글픈 눈물로 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런!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지 정말 답답하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라서 욕심이 생긴다. 아내가 이런 것 저런 것은 좀 고쳐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말을 꺼낸 것이었는데, 아이들 앞에서 구박받는 것이 너무 싫고 약간은 무시당하는 것 같기도 해서 슬퍼서 눈물이 난단다.


숙소에 들어와서 다른 이야기들로 분위기를 바꿔보려 하지만 도무지 소용이 없다. 시간이 좀 필요했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로 힘들다. 감기까지 걸려서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아내까지 저러고 있으니 더 힘들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길고도 힘들게 지나간다.

2-198.png 까씨스의 해변
2-199.png 마르세유 성당
2-200.png 아비뇽의 성곽과 끊어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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