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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산과 바다

Chapter 2. 세계 속으로

by 뚱이

♡ 알프스 돌로미티 숙소


구불구불한 길이 이거 졸릴만한 길이 아니다. 스위스의 알프스산맥 속에 숨어있던 숙소를 찾아 올라가던 길은 비교도 안 된다. 이 길이 훨씬 길고 가파른 길이다. 운전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만 자동차 유리 너머에 보이는 세상은 신기하고 멋지다. 운전하는 중에도 놓치기 아쉬운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보기는 했지만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이번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코르티나 담페초를 지나가는데 이곳이 유명한 이유를 알만하다. 왜 돌로미티가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지 알 것 같다. 구름 위에 펼쳐진 푸른 초원은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고 이를 둘러싼 기암괴석의 산들은 마치 신들이 지내고 있을법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광경들. 정말 잊을 수가 없는 귀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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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에 취해서 정신없이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 숙소도 그림 그 자체다. 영화에서나 봐왔던 그런 집이다. 창문 너머로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산들과 그 바위 사이에 우거진 숲. 숙소는 그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별장이다. 기가 막혔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냥 이 숙소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후회할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숙소 선택을 한 번씩 성공하면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밤이 되니 깊은 산속에서만 볼 수 있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마치 과학관에서 천체관람 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어디에 가서도 이렇게 많은 별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심에 감사해하며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밤이다.


♡ 산 위에서 빙하를 만나다


페다이아 호수. 호수의 물은 산꼭대기의 빙하가 녹은 물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물빛이 다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파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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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주변을 거닐 다 보니 산 위로 올라가는 곤돌라가 있다. 2인용 곤돌라인데 서서 타는 곤돌라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타서보니 짜릿짜릿한 게 제법 무섭다. 조그마한 바구니에 사람 둘 넣어놓고 건들건들 바위산을 올라가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오금이 저려온다. 아내는 이런 남편이 웃긴다며 장난을 해 오는데 정말 얄밉다.


주변에 있는 산들 중에서 제일 높은 산이 3,430m의 마르몰라다 산이다. 정상 바로 밑에서 바라본 마르몰라다 산은 빙하를 품고 있어서 더 신기하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호흡도 힘들고 어지러움 증상도 있어서 오랫동안 머무르지는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2-169 마르몰라다 산의 빙하.png 마르몰라다 산의 빙하


두 번째로 방문한 호수는 미수리나 호수다. 미수리나 호수는 돌로미티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라면 제일먼저 가보는 곳이라고 한다. 멋졌다. 호수주변을 산책하고 나니 벌써 4시 반이다. 산속의 밤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기에 어두워져서 위험해지기 전에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 하고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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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는 아이들이 직접 카레를 만들어 준단다. 아이들이 만들어주는 저녁을 기다리다 살짝 잠이 들었는데, 저녁 11시 쯤 되어서야 카레가 완성이 됐다고 자는 나를 깨운다. 그래도 아이들이 열심히 만든 카레이니 맛은 봐야지 싶어서 한입 먹어보는데 제법 맛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흐뭇한 아빠미소가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행복한 저녁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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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길 운전


새벽부터 비가 주절주절 내리더니만 출발할 때는 아주 장마처럼 비가 쏟아진다. 비오는 날은 운전하기가 두 배로 더 힘들다. 이곳 이탈리아 사람들의 운전습관은 한국 사람들이 운전하는 것 보다 훨씬 거칠다. 바짝 꼬리를 물고 붙어오기, 급하게 끼어들기, 방향등 안 켜고 끼어들기.


비가 새 차게 내려서인지 시야도 안 좋아서 더 긴장되고 힘들었다. 우리 차는 리스한 차이기에 번호판이 빨간색이다. 덕분에 리스차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는 꼴이 되어서 이곳 사람들이 더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의 빗길 운전은 이런 저런 이유로 방어 운전에 더 신경을 써야 했기에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든 운전이었다.


♡ 막둥이 생일


사춘기라고 빡빡 우기는 우리 막둥이가 오늘도 반항을 하고 있다. 생일선물 대신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고 싶단다. 베네치아 여행보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생일 아침상으로는 미역국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떡국을 끓여 달랜다. 덕분에 베네치아 인근의 한인마트에 들려서 사온 떡으로 떡국을 끓여 보았다.

이탈리아 소고기를 일본 간장과 한국 참기름을 부어서 볶은 국물에 끓인 떡국이 제법 맛있다.


생일 선물로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로 하고 아내와 큰아이랑 같이 숙소를 나섰다. 짤츠부르크에서도 막둥이 혼자만 남겨놓고 여행을 갔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다. 앞으로는 이런 거 허락 안한다고 확실하게 약속을 하고 개인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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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판기는 역시 어려워


로마 근교의 작은 마을 오타비아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로마 시내로 가기 위해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오타비아역은 역내 승무원이 없이 발권기만 있는 역이다.

처음 접해보는 발권기에는 영어가 하나도 없다. 이탈리아어로만 되어있는 발권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가는 아줌마를 붙잡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분도 발권기 발급에 익숙하지 않은지 이것저것 눌러보시더니 난감한 표정을 하며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신다. 알아듣지 못하겠으니 더 답답하기만 하다.


이때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음이 급한 젊은 아저씨가 자기도 표를 사야하니깐 자기가 살 때 5장을 같이 사자고 영어로 제안하신다. 우리야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발권기에 익숙한 아저씨는 전문가의 포스를 뿜어내며 뭔가를 척척 누르더니 티켓을 받아서 우리에게 건네주고는 바쁜 발걸음을 옮기셨다.


어떻게 하는 건지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데 아저씨가 가버려서 우리가족은 서로 머리를 맏대고서 아저씨가 건네준 티켓을 분석해 보았다.

티켓에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역이 아닌 다른 역의 이름이 인쇄되어있었다. 이곳 방식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역을 찾아서 티켓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갈 역이 포함된 코스의 종착역을 클릭해서 구입하는 것이었다. 내일부터는 우리도 잘 할 수 있겠지.


로마에 오면 제일 먼저 봐야 할 곳으로 선택한 콜로세움을 관광하고 개선문과 함께 포로로마노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이 있는 캄피돌리오에 도착했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뒤로 돌아가 보니 포로로마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리스에서 이런 유적지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우리가족에게 큰 감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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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에 걸리다


한국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지 2개월.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관광지를 알아보고, 운전에 요리까지 너무 많은 것을 해서였을까? 몸살감기에 걸려버린 나는 오늘의 일정을 함께하지 못하고 가족들만 기차역까지 바래 다 줬다.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 어제부터 흘린 땀으로 냄새가 지독한 몸을 씻어주고 혼자만의 휴식을 취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다음 여행지인 스페인의 숙소를 예약하고, 이탈리아와 남프랑스의 여행계획도 점검하다 보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남편이 걱정할까봐 어디 어디 갔는지 인증샷을 찍어서 보내주는 아내가 이럴 땐 참 귀엽다. 어제는 시간이 부족해서 못 갔던 진실의 입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나 보다. 못내 아쉬웠었는데 잘 됐다 싶다.


저녁은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직접 차려준다고 한다. 나갔다 와서 피곤할 텐데 아픈 남편을 위해서 요리까지 자처한다니 오늘따라 아내가 더 사랑스럽다.


♡ 이산가족이 될 뻔 했던 바티칸시티 관광


아침 일찍 서둘러서 9시 쯤 바티칸 미술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도 역시나 기다리는 줄이 엄청나게 길다. 두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티칸 미술관도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내부 관광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지난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했던 것처럼 오후 2시에 베드로성당 가는 입구에서 만나 베드로성당관광은 같이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바티칸 미술관에도 볼거리가 많다. 아테네학당, 천지창조 등 유명한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벅찬 감동으로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오후 1시반이다. 누구보다도 빨리 관광을 끝냈을 막둥이가 걱정이 되어 관광을 마무리하고 출구 쪽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대단한 박물관들을 여러 곳 다녀봐서 인지 이제는 좀 식상한 것들도 있고 해서 생각보다 빨리 돌아보게 되었다.


출구 쪽으로 나와 보니 어라? 이게 바로 베드로성당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가? 20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바로 베드로성당으로 연결되어있었던 거 같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내에게 카톡으로 어디냐고 물어보니 거의 다 봐서 이제 출구에 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안 보인다. 아내는 아까 약속했던 베드로 성당으로 연결되는 출구 쪽에 있다고 한다.

이런! 내가 다른 쪽 출구로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밖으로 나가 바티칸시티의 외벽을 빙 둘러서 베드로 광장으로 갔다. 베드로 광장의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에서 아내를 만나기는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문제다. 아이들은 여행 중에 핸드폰을 정지해 놨기에 와이파이가 안되면 핸드폰으로 연락할 길이 없는데 아이들은 어느 쪽 출구로 나올까? 걱정이다.


아내는 베드로성당 출구 쪽으로 가서 기다려보기로 하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벨리스크에서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3시가 넘어가자 이제 걱정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경비원에게 부탁을 해서 아이들을 찾으러 성당안쪽으로 들어가고, 나는 혹시 길이 엇갈릴 수 있다며 성당 출구 쪽에서 지키기로 한지 한 시간 쯤 흘렀을까. 미술관 폐관시간인 오후 4시가 다 되어갈 때 쯤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다행히 아이들을 만났단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아이는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약속한 시간이 훌쩍 넘어버려서 엄마 아빠가 다 가버린 줄 알고 연락할 방법도 없어서 조마조마해 있었고, 막둥이는 베드로 성당 가는 출구가 어딘지 몰라서 그냥 미술관 안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들끼리 만나서 베드로성당 입구 쪽으로 나오다가 엄마와 만났단다.


여행 중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숙소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많이 놀랬었나 보다.


감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머리도 단순해져서 생각이 좀 짧았었던 거 같다. 나도 잘 모르는 베드로성당 입구를 아이들이 어떻게 찾아올 수 있겠는가? 다음에는 모두가 잘 아는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도 더블로 잡아서 만약에 1차 집결지에서 못 만나면 2차 집결지에서 볼 수 있도록 하자고 서로 약속했다.


어찌됐건 아내와 아이들은 모녀상봉을 한 이후에 베드로성당 내부를 돌며 관광을 하고 나왔나 본데, 나만 성당내부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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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퀘테레 ZTL 그리고 피사


피렌체에서 한 시간 거리에 친퀘테레라고 서해안을 따라 형성된 작은 다섯 개의 마을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품고 있다고 한다. 다섯 개 도시의 이름은 차례대로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라 그리고 몬테로소 알 마레이다.


직접 찾아가 보니 마을들이 해변에 있어서 예쁘긴 하다. 하지만, 환상의 섬 산토리니를 다녀온 우리에게는 벼랑위에 지어진 집들에게서 특별한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특히나 이탈리아의 독특한 교통통제시스템인 ZTL은 친퀘테레의 감흥을 더 반감시켰다. ZTL은 zona traffico limitato라고 하는데 이탈리아에는 유적지가 많아서 차량진입을 통제하기 위해 지역 주민을 제외하고는 차량진입을 금지하는 구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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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퀘테레 관광을 마치고 피사에 도착하니 거의 저녁 7시가 다 되어간다. 해가 지기 전에 인증샷을 남기려고 급하게 서둘러 사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의외로 피사의 사탑은 밝은 색의 건물이었고 깨끗해 보였다. 급한 마음에 되는대로 막 찍어댔는데도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 몇 장은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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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지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어두움이 내려앉는다. 이탈리아의 시골 밤길은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혼자는 못 다닐 정도다. 운전도 두 배는 더 신경 쓰여서 피곤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 요소수가 뭐야?


우리가 리스한 차는 경유차인데 나는 아직까지 경유차를 한 번도 몰아보지 않아서 경유차에는 요소수를 넣어줘야 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몇 일전부터 차에서 계속 경고등이 깜빡이는데 무슨 신호인지 몰라서 불안하기만 했다. 어제 아내가 조수역할을 해준다고 우리 자동차의 한글판 매뉴얼을 다운 받아준 덕분에 요소수를 채워달라는 경고인 걸 알았다.


아침에 한국에 있는 푸조 리스 회사에 전화해서 이런 상황인데 서비스가 되냐고 물어봤더니 요소수는 연료처럼 소모품이라서 개인부담이라고 한다. 앞으로 차 반납할 때까지 한번 정도 더 넣을 수도 있다고 했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푸조 정비소를 먼저 찾아갔다. 이제는 영어로 차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설명하고 정비사가 이야기하는 것도 알아듣는 기특한 나를 보며 다들 엄지 척을 해준다. 요소수를 채우고 나니 어제까지 푸르럭 대며 힘겨워하던 차도 이제는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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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지역 소도시 피엔차
2-185.png 시에나 캄포광장
2-186.png 피렌체의 두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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