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세계 속으로
♡ 이번엔 독일이다
베른과 취리히를 지나 오스트리아 국경근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비넷을 판매한다고 쓰여 있는 슈퍼에서 10일짜리 오스트리아 비넷을 구입해 차 앞 유리에 붙이고 당당하게 오스트리아에 들어섰다.
오스트리아의 도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좁은 편이다. 좁은 도로를 지나 어렵게 오스트리아를 통과해서 독일에 도착하니 독일은 그래도 도로가 좀 넓은 편이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숙소 앞에 주차를 하자마자 호스트인 '카트린'이 반갑게 맞아 주어서 체크인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이곳 숙소에서는 특이하게도 여행자 세금이라는 것을 별도로 지불해야 했다. 6개월의 여행 중에 여행자 세금을 지불한 숙소는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행자 세금 말고도 세탁기 사용료도 3유로를 내야 한단다. 덕분에 독일의 첫인상은 인정이 좀 없는 곳이라는 느낌으로 남게 되었지만, 세탁기가 없었던 스위스 숙소 덕분에 빨래가 많이 밀려 있었기에 이용요금을 지불하더라도 빨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세탁기에 빨래들을 쏟아 넣고, 각자 개인 정비를 마친 후, 내일부터 먹을 김치를 담았다. 이제는 외국에서 김치를 담아 먹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 모습이 도리어 낯설게 느껴졌다.
♡ 로맨틱가도
아침부터 잔소리를 해댄 덕분에 아침 9시에 숙소를 나설 수는 있었지만 역시 가족들에게는 무리였던지 차에 타자마자 다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려는 듯 골아 떨어져 버렸다.
오늘의 목적지인 슈반가우를 향해 한 시간 여를 달려가다 보니 도로 양 옆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예뻐지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었던 그 로맨틱가도다.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워서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
“여보! 이 아름다운 독일의 길들을 좀 봐요.”
하지만 아내는 잠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린다. 물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 이 멋진 로맨틱가도를 잠자느라고 못 보다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슈반가우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랜만에 트레킹도 할 겸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잘 보이는 마리엔브루크다리까지 30여분을 걸어 올라 갔다. 다리위에서 보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정말 멋졌다. 월트디즈니사의 심벌이 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모토로 만들었다고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성이 정말 멋있다.
다음 장소는 호엔 슈반가우 성이다. 호엔 슈반가우성이 먼저 지어졌고 여기에서 지내면서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계획했다고 한다. 두 성 모두 슈반이라는 글이 포함되어있는 이름인데 이게 영어로 ‘스완’이라고 백조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이 두 성을 백조의 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 짜장을 만들어 달라고?
숙소에 들어오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여행계획을 세우고, 운전하고, 산을 오르면서 사진까지 찍어주며 돌아다니다 보니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침대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되는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게임 삼매경에 빠져든다. 이런 멋진 곳에 여행을 와서도 핸드폰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더 소중한 아이들이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행 와서까지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봐주기로 했다.
한참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고 있는데 아내가 깨운다. 배가 고프다고 짜장을 만들어 달랜다.
헉! 잘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서 저녁을 준비하라고?
휴~ 힘들지만 가족들이 원한다면 뭐 별 수 없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눈을 비벼가며 만든 짜장밥 이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맛있게 만들어졌다. 스위스에서 담았던 깍두기가 제법 맛있게 익어서 짜장밥과 궁합이 잘 맞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자들 셋이어 수다에 빠져있는 동안 나는 안방에서 내일 일정을 다시 정리했다.
♡ 로맨틱가도 2
다음 날, 스테인 가든 이라는 마을 근처의 비스교회를 방문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교회여서 그런지 내부가 정말 화려하고 멋있었다. 건물 바깥쪽 벽에는 해시계가 있었는데 나무그늘에 가려서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웃겼다. 교회 주변으로 목초지가 펼쳐져있고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도 이런 한적함과 평화로움을 기대할 수 있을까?
다시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인 뇌르틀링겐으로 향했다. 뇌르틀링겐은 만 오천년 전에 운석이 떨어져서 생긴 지름 1km의 분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주변을 성곽으로 둘러싸고 성곽 내부에 마을을 조성해서 살고 있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교회 앞 야외테이블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해봤다. 여유로운 오후였다.
낭만가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하이덴하임 근처 플레이네임이라는 시골마을에 오늘의 숙소가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인상 좋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반겨주신다. 우리 숙소는 2층인데 1층은 주인집이고 2층은 가끔 자녀분들이 묵어가는 집이라고 한다. 주인의 성격을 말해주듯이 잘 정돈되어있는 살림살이와 깨끗한 숙소가 마음에 들었다.
여행중에 느낀 거지만 유럽 사람들은 정리를 참 잘해놓고 사는 거 같다. 정리만 잘해놔도 집이 한결 더 깨끗해 보이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그전에는 몰랐을까? 아내와 함께 우리도 귀국하면 정리하면서 살자고 다짐해 본다. 시골 할머니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의 침대에 긴 여정으로 지친 몸을 맡기니 어느새 스르르 잠들어버렸다.
숙면을 취한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다음 여정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라는 마을이다. 특별한 기대 없이 방문한 마을이었는데도 우리에게 생각보다는 훨씬 좋은 느낌을 선물해 주는 마을이다. 거리에 걸려있는 아기자기하고 분위기 있는 간판들도 우리나라의 현란하고 자극적인 간판들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간판조차도 예술품 같은 품격이 전달되어지는 그런 곳이다.
고즈넉하고 시골스러운 길을 거닐다가 우연히 발견한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판매하는 상점에 들어가 보니 여기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일본 북해도의 오르골당 같은 느낌인데, 오르골이 아닌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한 소품들로 가득 차있다는 게 그곳이랑 다른 점이다. 거기에다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까지 해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마을 외곽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잘 가꿔져 있어서 앉아서 쉴만한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적당히 정돈된 느낌의 조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을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벤치에 앉아서 여유를 만끽하고 나서야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여유는 과하지 않은 장소에서 과하지 않은 행동으로 과하지 않은 시간과 함께 즐기는 것이 여유인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마을이었다.
♡ 부지런해야 볼 수 있어
포근한 숙소를 제공해 주신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인형이 나와서 춤을 춘다는 유명한 시계탑을 보기위해 뮌헨으로 향했다. 뮌헨의 마리엔 광장에 신시청사가 있는데, 그 신시청사의 중앙에 있는 시계탑이 바로 그 유명한 춤추는 인형 시계탑이다.
천천히 뮌헨시가지를 즐기면서 걸어가다 중간에 성당 두 곳을 들려서 잠깐 기도도 하고 쉬었다 가는데 이 성당들이 그동안 관광했던 유명한 성당 못지않게 멋있다. 입장료도 없다. 굳이 유명한 성당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게 되는 순간이다.
신 시청사 앞 시계탑에 도착하여 오후 1시가 되기를 기다리며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라? 1시가 넘어도 인형이 움직이질 않는다. 급하게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보니 11시, 12시, 17시 이렇게 하루에 세 번만 움직인다고 한다.
이런! 이건 자료조사 부족도 문제이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였어도 12시에 춤추는 인형을 볼 수 있었을텐데 우리의 게으름 탓이다. 역시 게으름을 피우면 좋은 거 많이 놓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