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9월 근황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올렸던 <여자바둑리그> 글이 8월 초이니 무려 두 달 만의 글이다.
복귀 후 첫 번째 글은 두 달간의 근황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앞선 마지막 글에서는 [휴재공지]라며 '8월 내내 바쁠 예정'이라고 말만 하고 뭔지 대충 얼버무렸는데, 진짜로 엄청 바빴던 게 맞다. 8월 한 달 동안 160페이지짜리 책을 한 권 썼기 때문이다.
조금 덧붙이자면, 복지관에서 주관하는 <어르신 자서전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다. 어르신께서 자기 인생 이야기를 하고, 나는 인터뷰와 집필을 맡아서 진행하는 방식. 8월 내내 거기에 온 정신을 쏟았던 것 같다.
내 파트너였던 어르신은 70대 중반의 할머니셨다. 그분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정정하신 분이었다. 40대에 늦게 도배사 자격증을 따서 30년 넘게 현역에서 활동하셨다는데, 그래서인지 넘치는 에너지가 인터뷰를 하면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도박꾼 호구였던 남편 때문에 많이 고생을 하셨다 보니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대충 감추고 흘려 넘기려고 해서,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또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분이라서 '별일 없었어' '그냥 놀았지 뭐' 하면서 재미있는 일상 에피소드들을 잘 말해주지 않다 보니 인터뷰를 하면서도 치열한 심리전을 이어가야 했다.
1주일에 한 번, 목요일마다 만나서 1시간 반 가량 인터뷰를 하고, 집에 와서는 녹음파일을 가지고 4~5시간 걸려 녹취록을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그 주 인터뷰를 통해 추가로 얻은 정보들을 가지고 스토리를 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요일이 되고, 다음 인터뷰를 가야 했다. 8월 말이 되어서야 마지막 인터뷰를 하고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8월 말이 되어 드디어 책을 마무리지었는데, 책을 완성하자 번아웃 비슷한 게 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9월 초부터 다시 여자바둑리그 글을 써야 했는데, 꾸준히 쓰던 흐름이 끊어져서인지 한 달 동안 너무 빡세게 글을 써서인지 그냥 글을 쓰기가 싫었다. 9월 초에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던 것 같다. 아니, 놀았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뭘 했는지도 모르게 그냥 시간이 사라졌다.
9월 초에는 <프로기사 대상 바둑 강사교육>에 참여했다. 하루에 2시간씩 3번 수업하고, 4일 동안 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에 총 24시간 수업을 들었다. 수업 내용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강사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고, 나머지 하나는 학원을 개업하고 운영할 때 사업가로서 알아야 할 기본을 배우는 내용이었다.
강사 역량 교육은 크게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1. 초보자에 대한 이해
2. 아이들에 대한 이해
이 두 가지가 꽤 중요했다. 프로기사가 바둑 실력이 부족해 못 가르칠 일은 없겠지만, 강사 경험이 없는 프로라면 입문자를 대상으로 바둑을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학생이 대체 어디서 헷갈리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경우 대각선도 연결된 것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성인이나 대학생만 가르칠 수 있는 곳은 없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워낙 날먹이라 이미 자리가 찼거나 돈이 안 된다고 한다.
강사교육을 받은 후에는 방송통신대 중간과제(중간고사 대신)를 했다. 리포트 형식의 글을 써서 제출하면 되는 건데, 한참 놀다가 바둑강사 교육을 받고 나서 글을 여러 개를 쓰려니 머리가 안 돌아가서 꽤 고생했다.
그다음에는 바둑리그 선발전 준비... 를 해야 하는데, 바둑이 도무지 손에 안 잡혔다. 한 달 동안 책을 쓴 다음 강사교육을 빡세게 받고 리포트 여러 개를 뽑아낸 머리로 바둑에 집중하라니, 내가 뇌 입장이었으면 노동청에 신고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연습대국을 적당히 몇 판 뒀는데, 전부 다 이겨버려서 더 혼란스러웠다. 졌으면 문제 파악이라도 하면서 억지로 의지를 끌어올렸을 것 같은데, 자꾸 이기니까 뭘 하고 싶지가 않았다.
결국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로 시합에 나섰고, 빡센 상대를 만나서 광탈하고 말았다.
탈락하고 나서는 '바둑리그 기자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라면 이전에 올라온 기사보다 더 나은 글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 현실에 두들겨 맞기 전까지는 계획과 자신감을 갖고 있어야 하는 법. 기자 모집 공고가 뜨면 각 잡고 한 번 신청해 봐야겠다. 올해부터 기자 안 뽑는 건 아니겠지.
*작가의 한마디
바둑 글을 쓸 때는 꽤 괜찮게 썼던 것 같은데... 근황 글을 처음 써봐서 그런지 간만에 글을 써서 감이 다 죽었는지 글이 영 재미가 없네요. 다시 보니까 내 얘기를 안 쓰고 어르신 얘기랑 교육받은 얘기만 써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만약에 기자로 뽑히면 브런치에는 문제 안 생기는 선에서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거 좀 올려볼까 합니다. 작년 모집요강 보니까 관전기 경력자 우대라 하던데 브런치에 올린 관전기는 경력으로 안 쳐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