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저. 『미움받을 용기』(1)
이 책을 처음 접한 때는 2024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소소회 바둑연구실>에 들락거리며 연습대국이나 공부 등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연구실에 나 혼자뿐이라 바둑 외의 다른 것을 하고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입구 근처에 위치한 큰 책장에는 수십 권 이상의 책이 꽃혀있었는데, 그중 내 눈길을 잡아끄는 책이 있었다. 제목은『미움받을 용기』. 나는 '어디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고, 그때부터 이 책의 마지막을 볼 때까지 홀린 듯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저자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에게 스스로 변화할 용기, 남들과 다르게 살아갈 용기, 당당하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남들에게 미움받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우리가 행복해지지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자기혐오와 인간불신이 강하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똑똑한 한 청년이
'당당하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찾아가 토론을 벌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책의 내용 전부가 현실감 있는 대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고 매우 부드럽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그런 형식만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고, 앞서 말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이 과거의 내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찾아나갔던 과정과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 쓸모없지 않았구나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200만 독자가 선택했고, 51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달성했다는(위 사진 참조) 『미움받을 용기』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철학자 : 과거의 원인에만 주목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려 든다면, 모든 이야기는 '결정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네.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의해 이미 어떻게 될지 정해진 상태'라고 말이야. 안 그런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탓'할 거리를 찾는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동료를, 상사를 '탓'하고,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출제자를 '탓'한다. '탓'할 대상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성적 부진이 계속되면 시험 범위를 '탓'하고, 살기 팍팍할 때는 글러먹은 세상을 '탓'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 이외의 사람을 탓할 수 없는 경우 과거의 나를 '탓' 하면서까지 '지금의 나'의 책임을 덜어내려 노력한다.
사실 입으로 남'탓'을 내뱉는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더 잘했으면 되는데'라고. 하지만 이 순수한 깨달음조차 '원래 사람이 그런거야'라며 사람의 본성을 탓하고 싶은 마음에 밀려나버리고 만다. '잘못한 건 아니니까 고칠 필요 없어!' 같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청년 : 선생님 말씀은 너무 잔인해요! '불행해진 건 모두 네 잘못 때문이야'하고 단죄당하는 느낌이 든다고요!
철학자 : 아니,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야. 더 나아지기 위해 '바꾸는' 것이지.
우리의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쓰고 싶어한다. 따라서 이전까지 해오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확실한' 방법이다. 지금처럼 계속하다가는 큰일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뇌의 입장에서는 변화를 꾀할 이유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하던 대로 하고, 지속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딱 지속 가능할 만큼 변화를 꾀한다. 이것이 뇌의 입장에서는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상황'-> '나쁜 상황'으로 인식하게 되고, 더 나아가 '변화'-> '나쁜 일'로 여기게 되기까지 한다. 실제로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 등이 나한테 '이걸 좀 바꿔라'라고 조언한다면 대단히 불쾌하게 여기기도 한다.
저자는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수 차례 강조한다. 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결정론'적 해석을 꾸며내게 만들며, '변화는 나쁜 것'이라는 무의식이 주위의 변화 요구를 자신에 대한 '단죄' '인격 침해' 등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철학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을 탓하고, 변화를 꺼리는 본능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프로가 되기 이전 바둑도장을 다니던 시절부터, 프로입단 이후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있던 시기까지, 나는 '상담기'에서 절대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이벤트 종목으로 종종 치러지는 '상담기'는 기존의 1:1 바둑과 다르게 3:3이나 6:6처럼 다수의 인원이 팀이 되어 토론을 통해 다음 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 상담기에서 이상하리만큼 팀원 운이 없었다. 팀을 나누면 가장 강한 사람은 꼭 상대 팀에 들어갔고, 우리 팀원들은 내가 '거긴 아닌데...' 싶어하던 자리에 두어서 졌다. 아니, 어차피 그렇게 질 거면 내 의견을 좀 듣던가. 상담기를 둘 때마다 우리 팀은 약했고, 실수했고, 패배했다. 나는 딱히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꾸 내 팀은 지기만 하는지. 그때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재앙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고 있던 나는 부모님이 추천해 준 리더십 책<네이비씰 승리의 기술>에서 '책임지는 자세란 내가 바뀔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보고서야 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책임지는 자세'로 살기 위해 그 문장대로 삶의 모든 부분을 바꾸어나갔다.
몇 년 뒤 참가한 '상담기' 이벤트에서 나는 팀의 분위기를 매끄럽게 끌어가 2전 2승을 거뒀다.
이제는 항상 지던 시절의 내가 어떤 문제를 품고 살았는지, 이겼을 때는 왜 잘 해냈는지 안다.
그때의 나는 틀린 의견을 냈다가 비웃음을 살까봐 사람들에게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거긴 아닌데...'싶은 수도 두기 전에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나는 그거 안 될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 수를 생각하기보다 조금 전 팀원이 주장했던 수를 평가하며 대화 흐름을 끊었다. 팀원들은 나에게 ''복기맨' 인줄 알겠다'며 눈치를 주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년 뒤의 나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내 의견은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아니다' 싶은 수는 이유까지 붙여서 그곳에 두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이미 둔 수를 후회하는 팀원에게 "그건 지나간 거니까, 지금 이쪽 모양에 집중하자"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수 년에 걸쳐 나 자신을 바꾸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뀌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었다. 바꿔가는 과정은 그에 비하면 그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특히 나를 조금씩 고쳐 갈 때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가장 좋았다.
다시 몇 년이 지나,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나는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위해 '결정론'을 부정해야 했고, '잔인하리만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바꾸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되게 만드는'것에 노력을 쏟았다. 내가 깊게 고민하고 고생했던 과정들이 책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것을 보고,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다는 것에 매우 기뻤다. 그날 집에 돌아와 이 책을 주문했고, 책장의 '로열칸'에 넣어두었다.
다시 1년 정도가 지나 이번에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5개의 장으로 나누어진 이 책에는, 직접 깊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는 닿지 못할 문장들이 많이 있다. 최근 1년간의 경험을 통해 변화한 내 모습도 보여서 더욱 재미있었다.
이 책의 독후감으로 한 편만 쓰고 끝내기는 좀 아쉬워서, 몇 편정도는 더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재미있었다면 남은 이야기들도 기대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