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와이프가 바라본 미국의 명과 암

미국 생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by 기록가 슈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주재원 와이프


직장 생활을 하며 선배들의 주재원 이야기를 듣고는

“저도 주재원 와이프가 꿈이에요”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처럼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들었던 말은 단연

“부럽다”, “즐기다 와”가 가장 많았다.


물론 미국에서의 삶이 주는 장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적지 않은 고충도 함께한다.


‘사모님’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메이드가 있고, 골프를 즐기며 브런치를 먹는 삶을

상상했다면, 그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오히려 태어나 처음으로 손에 물을 가장 많이

묻히며 살아가는 ‘식모’에 가까운 날들이다.


해외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는

‘국뽕주의’가 짙은 나.

여행에 환장하는 타입도 아닌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미국 생활의 ‘명’과 ‘암’을 솔직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미국, 이래서 살기 좋다


자연 | 어쩌면 캘리포니아라서 더 빛나는 하늘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보기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비염을 달고 살고,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며

“오늘은 실내에만 있자”던 날들이 이어졌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의 움직임조차

제한되었던 한국.


그에 비해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하다.

파란 하늘이 계속되는 날씨는

일상과 마음까지도 환히 밝혀준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Lovely Weather”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푸른 물감을 가득 부어놓은 듯한 하늘 아래,

안개는 있어도 미세먼지로 시야가 가려지는 일은 없다.



자유 |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삶


한국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회다.

무엇을 입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타인의 평가와 기대가 삶을 압박하곤 한다.


반면 미국은 타인의 삶에 큰 관심이 없다.

무엇을 하든, 어떤 옷을 입든

‘그 사람의 선택’으로 존중받는다.


누군가를 따라 하는 집단의식도,

일반적인 틀에 끼워 맞추려는 분위기도 거의 없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안했지만,

이제는 ‘내 의지대로 살아도 되는 삶’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 삶에 대해 아무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자유다.



교육 환경 | 드넓은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미국의 학교는 공간부터 다르다.

초등학교에는 축구, 야구, 농구, 배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광활한 잔디밭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연 놀이터가 된다.


중고등학교에는 실내 체육관은 물론,

수영장, 농구장, 배구장이 갖춰져 있는 곳도 많다.


‘운동으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기른다’는 가치가

교육 전반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 스포츠에 열정적인 ‘싸커맘’은

미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7세 고시’와 조기교육 열풍 속에서

책상에 붙들려 있는 한국 아이들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운동과 자연 속 활동에 중심을 두는 교육 환경은

아이들에게 더없는 선물이다.



가족 중심 | 함께하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끈끈함


주재원이라는 역할은 바쁘다.

남편은 시차를 오가며 일하고, 밤낮 없는 일정이

계속되지만 그럼에도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회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이 많고,

주말은 온전히 가족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기쁨도 고난도 함께 겪다 보니

가족 간의 유대는 더욱 끈끈해진다.


가족은 모든 결정의 중심이 되고,

주말이면 공원을 산책하거나

아이들의 팀 스포츠를 따라다니며

작은 이벤트들을 함께 쌓아간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우리 가족만의 색깔이 또렷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참 지긋지긋해지는 순간들


의료 시스템 | ‘지나친 자연주의’의 그림자


미국 병원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괜찮아요.”


그 무심한 한마디는 결국
한 생명을 놓치게 만들었다.


과잉 진료보다
환자의 면역력과 자연 치유력을 우선시하는

미국 의료 시스템.
그 접근 방식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조금 더 적극적인 대처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거라는
후회와 자책이 아직도 마음을 짓누른다.


계속된 출혈에도 “문제 없다”는 말만 되풀이됐다.

혈청 크기나 백혈구 수치 변화 같은
작은 징후들에 조금만 더 민감하게 반응했더라면.
좀 더 촘촘한 관찰과 진단이 이어졌더라면.
그 아이는 아직 곁에 있었을까.


사실 이 같은 의료적 ‘태도’는

일상에서도 반복된다.


아이에게 콧물이 나거나 기침이 시작되면,
한국에서는 항원 검사를 받고
필요 시 약 처방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미국에서는 늘 똑같다.

“가습기 틀고 지켜보세요.”


단순한 말 같지만,
그 안에는 '버텨보라'는 무책임함이 담겨 있다.
그리고 때로 그 방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이민자 사회에서도

미국 의료 시스템은 가장 큰 고충으로 꼽힌다.

“괜찮다” “별일 아니다”라는 안일한 진단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그 무게를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고물가 |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현실


미국은 인건비가 곧 서비스 가격이다.

사람 손이 들어가는 순간,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외식은 기본 팁이 18%부터 시작되고,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에 팁을 얹는

일이 익숙지 않아 늘 불편하다.


결국 직접 해먹고, 테이크아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공유기 설치, 네일아트, 피부관리 등

한국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여기선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에 무언가 고장이라도 나면,

한국처럼 간단하고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차고 문 수리 200달러, 변기 고장 수리 700달러.

작은 고장 하나가 가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 결과, 미국에 오래 거주한 남편들은

자연스레 ‘맥가이버’가 되어간다.

영화 속 풍경 같던 DIY의 삶이

어느덧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도 저도 아닌 이방인 ’주재원 가족‘


어느 날, 지인이 건넨 한 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미국 이민자들 사이에는 계급이 있어.

그러니 절대 주재원 가족이라고 하지 마.

그건 4등급이야.”


1급은 시민권자, 2급은 영주권자,

3급은 기억나지 않지만,

4급은 유학생과 주재원 가족이라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자연스레 조심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민자도, 여행자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포지션은

주재원 가족을 더욱 조용하게 만든다.



Melting Pot의 아이러니 | ‘케바케 사바사’의 나라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일이 잦다.


같은 서류, 같은 절차인데도

이 사람에겐 되던 일이

저 사람에겐 안 된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보장번호(SSN) 발급이다.

2주 전에는 문제없었던 것이

2주 후엔 갑자기 안 된다고 하고,

다른 지점에선 또 아무 문제 없이 승인된다.


논리로 설득이 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감정 소비를 줄이고

‘이 또한 미국이니까’ 하고

담담해지는 연습을 하게 된다.




다른 나라, 다른 삶의 결


한국과 미국의 삶은 다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미국과

실제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은

때로는 극명하게 다르다.


미국에서의 삶은

한국 사회에선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생각의 깊이’가 넓어지는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때론 힘들고, 낯설고,

지긋지긋할 만큼 버거운 날들도 있었지만,

주재원 와이프로 육아휴직을 보내는 시간은

내 삶에서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여정이다.


이 경험은 언젠가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이 되어,

또 하나의 큰 자산으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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