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내려놓고서야 보인 것들
잘 다니던 대기업 육아휴직을 하고
주재원 와이프로 미국에 와있다.
휴직을 결심한 가장 큰 요소
"초저학년 아들"
어느덧 미국 생활 2년 차.
아이를 바라보며 자주 되뇐다.
‘휴직하길 참 잘했다.’
현재 나는 "육아"휴직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아이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옆에 있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숨 쉬게 한다.
더 어렸으면 누리지 못했을 것들을
더 잘 누리고 있다 생각한다
참 감사하게도 아이는 학교에
무리 없이 잘 적응해 주었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덕분에 아이는 친구가 생겼고,
나도 아이를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됐다.
한국에서도 느꼈지만, 아이들끼리 친해지면
엄마들 사이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예전에는 놓치기 일쑤였던 것들
하원 후 놀이터에서 잠깐 놀아주는 일,
아이들끼리 잘 놀 수 있도록
옆에서 분위기를 이끄는 일,
서로의 집에 초대해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
그리고 결정적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적절한 시점에 개입해
아이의 감정을 다독이고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일.
예전엔 내가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순간들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의 사회적 관계 속에,
한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조용히 개입할 수 있다.
때로는 중재자로, 때로는 관찰자로서
아이의 마음과 행동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 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자란다.
육아휴직이라는 시간 속에서
단순한 ‘돌봄’을 넘어
‘관계’와 ‘성장’을 함께 배우는 중이다.
그렇다면,
주재원 아내인 나는 지금 행복할까?
부모님은 문득문득 이런 말씀을 하신다.
“육아휴직 2년 후엔 복직해야지.”
“아니면 여기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든가.”
한국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딸이
나름대로 자랑스러우신 부모님 입장에서
그 말들 속에는 숨은 뜻이 하나 있다.
“회사는 계속 다녀야지.”
아마도 딸이 남편과 대등한 위치에서
기죽지 않고, 떳떳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아닐까 싶다.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으로 다가오고,
그로 인한 압박감과 답답함이
어느 순간 문득, 나를 괴롭히곤 한다.
하지만 아이를 떠올리면
그 모든 불안이 순간 잠잠해진다.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이렇게라도 되찾고 있다는 생각.
아들과 하루 종일 함께하는 지금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하교 후의 시간도 이제는 늘 함께이고,
학교 행사나 준비물을 놓치는 일도 없다.
그토록 바라던 선생님과의 긴밀한 소통도 가능해졌고,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네트워킹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다.
할머니나 이모님이 대신하기 어려운
‘엄마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이 분명히 있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밝고 당당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아이의 존재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이를 돌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아이가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이곳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학교 봉사, 운동, 요리, 살림 등
처음엔 낯설었던 일상들이
조금은 내 것이 되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주재원 아내’라는 새로운 정체성 속에서
온전히 건강하다고 말하긴 아직 이르지만,
‘엄마’로서는 분명히
가장 행복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나와 마주하고,
그 안에서 다음 길을 찾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