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정말 눌러앉는 건 아닐까요?
미국행을 결심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15년 가까이 달려온 직장 생활,
안정적이던 한국의 일상은 잠시 멈춰야 했다.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하면 할수록 깊은 안갯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단순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그 한마디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생각보다 훨씬 빨리, 훨씬 깊게
이곳에 마음을 열게 된 이유,
바로 아이였다.
미국에서의 첫 등교날,
학교를 마치고 헐레벌떡 뛰어오던 아이가
온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엄마, 학교 너무 좋아!"
"왜?"
"쉬는 시간이 진짜 길고, 체육도 엄청 많고,
놀이터랑 운동장도 엄청 커!"
그날 이후 아이는 단 한 번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서 쭉 살고 싶어"라며
조심스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곤 한다.
아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자유롭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
그게 미국이라는 땅과 딱 맞아떨어졌던 모양이다.
과연 아이가 미국을 사랑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어려서일까, 아니면 이미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일까.
"엄마, 한국에서는 맨날 선생님이 '앉아, 앉아' 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말을 별로 안 해."
"그럼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더 많이 하셔?"
"음… 네 생각을 얘기해 봐, 이런 말?"
이 짧은 대화가 낯설고 새로웠다.
미국 학교도 분명 규칙이 있지만,
그 규칙이 아이에게는 훨씬
덜 억압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앉으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분위기,
그 속에서 느끼는 압박감.
아이는 어쩌면 그 말 자체보다
한국의 촘촘히 짜인 일상과 질서에서
자신도 모르게 숨이 막혔던 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아이에게 허락된다는 느낌이 있었나 보다.
학업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아예 안 시키는 건 아니지만,
불필요한 경쟁이나 조급함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과열되지 않은 학습 환경,
주입보다는 참여를 유도하는 수업 방식.
아이는 그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미국에 온 지 몇 주 되지 않아
"나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만 봐도 그렇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아이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공원 가서 놀고 싶어."
디즈니랜드도, 박물관도,
그리운 건 화려한 체험이 아니다.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공원에서 뛰고, 자전거 타고,
마당에서 공놀이하다가
개미나 도마뱀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미국에는 키즈카페 같은 실내 놀이터가 거의 없다.
그 대신 자연이 아이들의 놀이터다.
플레이데이트를 해도
공원에 텐트를 치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놀거나,
여름이면 수영장에서 물장구치고,
함께 바다로 떠나는 날이 많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논다.
쉬지 않고, 핸드폰도 없이,
오직 자연과 친구들, 그리고 상상력만으로.
탐험을 간다며 막대기를 들고
언덕을 몇 바퀴나 돌고 오는 날도 있고,
아무 장난감 하나 없는 휑한 수영장에서
잠수 게임 하나로 반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미국에서 자연과 가까워진 아이는
어느새 얼굴이 햇빛에 까맣게 그을었고,
옷은 매일 흙과 잔디로 얼룩지지만
그 표정만은 날이 갈수록 환해지고 있다.
미국은 그야말로 스포츠의 나라다.
7세 고시 학원으로 뛰는 부모는 보기 힘들지만,
운동장과 체육관을 오가는 ‘싸커맘’들은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야구를 하더니
이내 집에서 다저스 경기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Spring Season 리그에 들어가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무언가에 열정을 갖고 빠져드는 모습을
부모로서 처음 본 순간이었다.
어릴 적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없이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왔던 우리 세대에게
이건 참으로 인상 깊은 변화였다.
한국이라면 부모가 선택한 운동에
아이를 맞춰가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걸 찾고
그에 대해 전폭적인 응원을 받는 문화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말 하나에
길이 열리는 방식이다.
야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미국 생활에 스며드는 계기였고,
어려움 속에서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며,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유대감을 만드는 매개체다.
첫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놀라운 실력 향상을 보여주었고,
코치들로부터 연달아 칭찬을 받으며
팀 내에서 게임볼(Game Ball)을
무려 세 번이나 받았다.
이 모든 성과는 억지로 시켜서 이룬 결과가 아니다.
야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아이가
주중에도, 주말에도,
스스로 배트와 글러브를 챙겨
마당에서, 공원에서 쉼 없이 연습한 결과였다.
좋아서 하는 일은 다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이고,
즐기면서 하다 보니 실력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미국이라는 이 낯선 땅이
아이가 마음 놓고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에 나오며 어렵사리 커리어를 ‘일시정지’하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무조건 돌아간다.
이 결정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의 놀라운 적응력,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둘 발견되는
미국 생활의 예상 밖 장점들이
조금씩 내 생각에 균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가 좋다고 해서
부모의 기반 없이 섣불리 눌러앉을 수는 없다.
경제적인 여건, 커리어, 거주의 안정성
현실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큰 무게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교육 환경 속에서 밝고 건강하게
스스로를 표현하며 자라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국이 최고야'라고만 외쳤던
좁은 시선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이민 1세대의 고생 위에서
2세대가 좀 더 나은 사회적 기반을 누리는
모습을 보며,
단순한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 끝에 어떤 선택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여정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