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름은 길다

두 달 반, 아이와 나의 계절

by 기록가 슈


미국의 여름은 길다.png


워킹맘은 아이와의 시간이 간절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이라는 귀한 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그것도 두 달 반을 함께 붙어 지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만만치 않았다.


피로가 쌓일수록

투덜거림이 마음 한편을 슬쩍 차지하고,

그러다 문득

“참 간사하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작년 여름은 준비도 없이 시작됐다.

미국에 도착한 지 석 달.

모든 게 낯설던 시절,

미국생활 적응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무작정 썸머캠프에 아이를 보냈다.

목적도 기준도 없이.

결과는 흐릿하고, 마음은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조금 일찍 계획을 세우고,

방학 초반 3주는 아이와 나,

우리 둘만의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함께 걷고, 웃고, 먹고, 이야기 나누는 매일이

그 자체로 소중한 기억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제발… 엄마 좀 그만 불러.”


피식 웃음이 났다.

지치고, 복잡하고,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여름.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곧 그리워질 우리 둘만의 계절이다.





미국살이 2년 차, 두 번째 여름을 앞두며


작년, 첫해의 여름.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되돌아보니, 수영하고, 뛰놀고,
친구들과 웃고 울며 추억을 쌓았던 시간이었다.


그 여름, 시에서 운영하는 캠프에 다녀왔다.

시 캠프는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그램은 다소 느슨하고,

경험 많은 교사들은 보기 어렵다.


자연스레 아이들 사이에서도
조금은 거칠고,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고,
젊은 스태프들은 그런 친구들을
능숙하게 이끌기엔 아직 부족해 보였다.


어느 날은 돌아와 영어 슬랭을 하나둘 말해주는데,
욕은 아니지만 욕과 다르지 않은 표현들까지
배워오는 걸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이후엔 다른 캠프를 고민했다.
이른바 '한국맘'들 사이에서 유명한
'갈릴레오 사이언스 캠프'도 있었지만,
40분 이상 왕복 라이딩에 주당 600~800불.
1학년 아이에게는 과한 선택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선택한 건 우리 동네에 있는
소박한 사이언스 캠프였다.

일주일마다 '전자 자동차', '우주선' 같은
테마로 만들고 조립하며,
과학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수업.
화산 폭발 원리를 배우기 위해
베이킹 소다와 콜라로 실험도 했던 기억.
아이도, 나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주당 300불대의 가격도 꽤 합리적이었다.
물론 시 캠프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이지만,
그만큼 좋은 친구들과 누나, 형들을 만나며
3주 내내 신나게 다녔던 캠프다.


그렇게 작년 여름은
시 캠프, 사이언스 캠프, 그리고 틈틈이 떠난
소소한 여행들로 채워졌다.


매일매일이 바쁘고 생기 있었던 시간.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맞이한 개학 날.
아직도 그 여름의 온도가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올해의 여름은
어떤 기억으로 채워지게 될까?


오프닝에서 언급했듯,
이번 여름은 작년보다 조금 느슨하게.
캠프보다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히 하고 싶어,
첫 3주는 일부러 아무 프로그램도 넣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였던
‘릴로 & 스티치’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가고,
도서관에서 책도 마음껏 빌렸다.


쇼핑몰에 가서 간식도 사 먹고,
학기 중엔 “쓸데없다”며 미뤘던
작은 소모품들도 기분 좋게 사주었다.



그야말로 둘만의 시간.
조금은 특별하게, 조금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우리만의 여름을 시작했다.


집에는 작은 농구 골대도 들였다.
틈틈이 농구 게임을 하며 땀을 흘리고,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TV 앞에 나란히 앉아 LA 다저스 경기를 봤다.


집 안이 경기장처럼 후끈해지는 저녁,
우린 함께 소리 지르고, 손뼉 치며
진짜 여름을 살고 있었다.


2주 차쯤, 집에만 있으니
슬슬 나도 아이도 에너지가 넘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놀이공원으로 오전 10시 ‘오픈런’을 감행했다.


연간 회원권이 있는 곳이라
‘슬렁슬렁 타다 점심 먹고 돌아오자’는 마음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오후 5시.



그렇게 둘만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매 순간이 즐겁고 따뜻했지만,
한편으론 피로감도 서서히 쌓여갔다.


집안일에 삼시세끼,
거기에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 여름은 특히 남편도
일에 치여 여름휴가를 반납해야 했다.
가족여행은 계획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남은 여름,
아이와 나의 시간으로
오롯이 채워가야 할 순간들만 남았다.




Basebalism, 야구로 물든 우리 여름


올해 여름, 우리 가족의 키워드는 단연 야구다.
아마도 이 여름을 통틀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깊이 남을 단어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여름은 다양한 스포츠 캠프로 가득하다.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골프, 농구,
야구, 테니스, 수영, 수구, 배구까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찾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난다.


올해 우리 아이는 야구에 푹 빠졌다.
리틀리그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야구 캠프에도 등록했다.
아이 스스로 좋아하고 원했던 활동이기에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
내년엔 야구 외에도 골프 캠프를
한번 시도해 볼까 생각 중이다.


이런 캠프들은 유난히 한국 부모들 사이에서
'누가 한다더라' 하면 줄줄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모방이라기보단,
검증된 선택이라는 믿음이 작용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하니까"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맞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는 엄마, 아빠가 시켜서 야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좋아하게 되었고,
스스로 열정을 쏟고 있다.


MLB 선수들의 이름, 타율, 투수의 이닝을
외우고 이야기하며,
야구 카드 교환을 통해
친구들과 선수들의 성적을 분석한다.
‘정말 이 아이가 좋아하고 있구나’ 싶다.

이런 모습 덕분에 나 역시
야구에 빠져들었다.


자연스럽게 LA 다저스의 팬이 되었고,
올해 개막 이후엔 한 달에 한두 번씩
경기장을 찾고 있다.




이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 가족에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 쌓인 감정, 그리고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여름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채워가는 중이다.


IMG_7056.PNG


keyword
이전 06화"엄마, 나 여기서 쭉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