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세상이 멈췄다
나는 확고한 외동주의자였다.
'내 인생에 둘째는 없다'는 생각은
오랜 시간 변함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아이 하나만 있어도
이미 충분하단 시선이 많았고,
워킹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조차
벅차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런데 외동이 드문 이 나라에서
문득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국가안에서
한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낸다는 일이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일이 아닐까,
처음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전부’라 여겼던 일들에
조금씩 힘을 빼고 나니,
늘 뒷전이던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게 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게 축복처럼
둘째가 찾아와 주었다.
하지만 그 만남은
너무도 짧고,
갑작스럽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미국의 단점으로
의료 시스템을 꼽은 적이 있다.
생명을 앗아간 진료.
신뢰하기 어려웠던 병원.
현지인들조차 입을 모아 말하는
미국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 글 아래, 한 댓글이 달렸다.
“항생제, 스테로이드, 해열제는
우리 몸에 더 해롭습니다.
약에 기대는 건 수렁에 빠지는 길이에요.”
정제되지 않은 확신.
정답처럼 툭 던진 말.
그 댓글이 유독 아팠던 건,
나의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E.coli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항생제를 조금만 더 빨리 썼더라면
지금도 내 곁에 있었을지 모른다.
의료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켜보기만 했다.
자연주의 출산,
약을 쓰지 않는 철학.
그게 과연,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순간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었을까?
그래서 그 댓글이 더 아팠다.
내게는
‘약 때문’이 아니라
‘약을 쓰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감정을, 이 이야기를
끝까지 꺼내놓을 수 있을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지금도
눈물샘이 먼저 반응하고
가슴은 여전히 미어진다.
그럼에도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는, 누구도,
이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임신 초기,
피 한 줄기에 놀라 응급실을 찾았다.
그 피는 경고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스침이었을까.
임신 중기로 접어들며 피는 멎었고,
나는 조심스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28주 차를 앞두고
또다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놀라 울며 병원에 도착했지만
의사는 “질 출혈입니다”라며
지혈 후 퇴원을 권했다.
일주일 뒤, 다시 피.
27주 차, 또다시 분만실.
수축이 조금 있다는 말과 함께
수액, 진통제. 그리고 다시 퇴원.
다다음 날, 주치의 진료일.
나는 여전히 하혈 중이었지만
의사는 말했다.
“한 번 피가 비친 산모는
출산할 때까지도 피가 나올 수 있어요.”
미국 병원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괜찮아요.”
29주 차를 앞두고
피가 또 한 번 쏟아지고 나서야
입원이 결정됐다.
하혈과 수축을 막기 위해
마그네슘을 투여받았고,
조산에 대비해 폐성숙 주사도 맞았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엔
폐성숙 주사를 신중히 써야 한다"라고 했다.
피가 그렇게 쏟아졌는데,
왜 아무도 감염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 순간,
나는 무지했고
의료진은 너무 조용했다.
3일 뒤,
마그네슘을 끊은 지 5시간 만에
다시 수축이 시작됐다.
진통은
20분 간격에서
15분, 10분으로 좁혀졌다.
내진 결과,
자궁문은 이미 5cm 열려 있었다.
예상치 못한 출산..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둘째도 같은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료진은 자연분만을 권유했고,
그 모든 과정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결국,
너무도 슬펐다
너는 작았지만,
놀라울 만큼 우렁찼다.
1.3kg, 작은 몸.
그 안에 선명한 이목구비와
힘 있는 울음이 있었다.
나는 안도했고,
의사는 말했다.
“건강합니다.”
“자가호흡도 가능해요.”
희망이 보였다.
비로소 나는 안심했다.
너는 곧장 NICU로 옮겨졌고,
나는 젖도 잘 돌지 않는 몸으로
3시간마다 유축하며
모유 한 방울에 마음을 걸었다.
태어난 지 이틀째 되는 날,
너는 조금씩 모유를 받아들였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울음을 냈고,
나는 그 울음이
너의 생명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3일째 저녁부터
모유 섭취량이 줄기 시작했다.
체중도 처음보다
200g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4일째 아침,
의사는 PICC 라인을 넣고
수액을 투여하겠다고 했다.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한다.
그때 바로 항생제를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그 물음은
시간이 흘러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4일째 새벽 1시.
전화가 울렸다.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나는 NICU 웹캠을 켰다.
너는 자꾸만 놀라고 있었다.
그건 반사가 아니라,
'발작'이었다.
Part 2: ‘작은 몸으로 버텨낸 너, 그리고 이별’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