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미국에서 나를 다시 쓰는 중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첫째가 있었고,
미국이라는 낯선 땅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일상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살이는 분명 장점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방인으로 시작된 삶.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한국에서의 일상은 늘 숨이 찼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하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졌던 날들.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유치원 전화를 넘긴 적도 있었다.
퇴근 후엔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식사 준비, 정리, 아이와 짧은 놀이, 그리고 재우기.
그 모든 걸 마친 뒤,
남편과 나란히 넷플릭스 앞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나누는 순간이
그날의 유일한 ‘나다운’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늘 바빠야만 했다.
일을 덜어내는 게 아니라,
그저 버티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게 삶이고,
그렇게 사는 게 옳다고 믿었다.
그런데 미국에 오자,
모든 게 멈췄다.
‘해야 할 일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속도를 정해야 했다.
바쁘게 살 것인가,
숨을 고르며 살 것인가.
그 선택조차 낯설었고,
나는 그 안에서
다시 ‘나’를 배워가는 중이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땐
한국에서의 관성을 그대로 끌고 왔다.
매일 정성껏 도시락을 싸고,
집은 늘 반듯하게 정리되어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엔 ESL 수업에 나갔고,
플레이데이트에도 열심이었으며,
심지어 석사 과정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몰두하면
무언가는 놓칠 수밖에 없다는 걸
천천히, 그리고 뼈저리게 배워갔다.
결국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었다.
1년이 지나면서
비로소 일상 속 틈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훨씬 안정된 리듬을 타고 있다.
미국에서 만난 한 지인의 말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엄마 생각하면 무조건 일해.
근데 아이 생각하면, 무조건 집에 있어야 돼.”
나는 아마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후자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나는 ‘일하는 삶’을 선택했다.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업하고
그 모든 것이 나에겐 관성이었다.
거기에 치솟는 서울 집값,
아이에게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행을 앞두고,
한 친구가 해준 말이 인상 깊었다.
늘 전교 상위권을 놓치지 않던,
‘정석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말했다.
“애 낳는 순간, 인생 1순위가 바뀌더라.
가능하다면 난 하루 종일 집에서 애 보고 싶어.”
‘누군가의 엄마로만 사는 게 싫다’는 말이
신경 쓰인다고 하자,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야, 걔 애 안 낳아봐서 그래. 몰라서 그래.”
이런 말이 통하는 사람.
그래서 지금도 내게 소중한 친구다.
반면, 마음에 오래 남은 말도 있다.
“어휴~ 진짜 너무너무 힘드시겠어요.
회사 나가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집에 절대 못 있어요. 미쳐요.
애들 잘 때 들어가는 게 훨씬 편해요.”
마치 집에 있는 내 삶은
인내의 산물이고,
워킹맘은 더 우아하고 능동적인 존재라는 듯한 말투.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왜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을
남의 삶 위에 덧칠하려 하는 걸까.
일하는 엄마가 위대하고,
집에 있는 엄마는 뒤처진 사람처럼 여겨지는 세상.
그 알 수 없는 선 긋기와
은근한 우열감이 때때로 사람을 아프게 만든다.
하지만 삶이란, 결국
나보다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방향을 바꾸는 일이 아닐까.
누구는 그 방향이 회사였고,
나는 집이었다.
그것뿐인데,
그 선택을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정돈된 집, 건강한 식사,
허둥대지 않는 하루.
이 평범함 속에서
나는 안다.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2년 차가 된 지금,
나의 일상은 분명 달라졌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준비하지만,
예쁘게보다는 충분히에 집중한다.
아이의 기분과 건강
그 두 가지만 챙기면 된다.
집에 돌아오면
쌓인 집안일을 정리하고,
단정한 공간을 유지하려 애쓴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조용하고 잘 정돈된 집에 대한 작은 로망.
지금, 내 리듬대로 실현해가고 있다.
가끔 꽃을 사 식탁에 올려두면
공간의 공기가 달라진다.
그 작은 변화가
내 하루를 더 다정하게 만들어준다.
요즘은 ESL 수업 대신,
내 속도로 조용히 공부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글을 쓰고,
미국 시황과 경제 뉴스를 영어로 읽는다.
용어는 낯설지만,
시장 감각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이해하다 보면
투자뿐 아니라
삶의 방향도 함께 정리된다.
미국에서의 삶은
‘무엇을 해냈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더 가까운 듯하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위한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며
내 리듬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삶의 방식은 하나가 아니다.
누가 더 멋지고 더 낫다고
쉽게 재단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족의 하루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
그 하루를 조용히,
그러나 성실히 살아내고 있는 이들.
그들도,
분명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