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의 삶의 속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늘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어야만
내 삶이 의미 있다고 믿었고,
멈추는 순간 무언가 놓칠 것만 같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기까지의 4~6시간,
그 짧지 않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애써 계획을 세우고 나를 몰아붙였다.
하루 4시간씩 ESL 수업에 매달리며 영어에 몰두하고,
일하느라 뒷전이었던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주말에만 겨우 꺼냈던 냄비와 프라이팬은
매일 따뜻한 밥과 반찬을 만드는 손길로 바뀌었고,
건강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가져본 정원은 내게 작은 설렘이었다.
화분을 놓고 꽃을 심으며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고,
하루라도 청소를 거르면 마음이 불편할 만큼
집안일에도 나름의 '열정'을 쏟았다.
過猶不及(과유불급)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너무 애쓰다 보면, 오히려 본질에서 멀어질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괜찮은 척하면서도 속으론 쉽게 흔들렸다.
“미국 석사 가나요?”
“영어는 이제 원어민이지?”
"여기서도 충분히 job 구할 수 있지 않아?”
그 말들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석사 과정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은 그게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석사를 하려는 거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정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 끝에 나온 건 단 하나.
‘휴직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는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목적이라면 분명 필요할 수도 있었지만,
이유가 불투명한 채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일이
과연 나를 어디로 데려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조금씩 '틈'을 발견하게 되면서
삶은 천천히 다른 결을 드러냈다.
하루하루,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시작하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다.
얼마 전 방영이 끝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이 말하던 대사가
마음속 깊이 오래 남았다.
인생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흘러가는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
그냥 때때로 겨울이고, 때때로 봄이었을 뿐.
수많은 날이 봄이었더라.
그때, 우리가 봄이 온 걸 알았더라면
좀 더 찐하게 살아볼걸.
수많은 날이 사실은 봄이었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봄인데
우리는 달려야만 꽃이 피고
그래야 봄이 오는 줄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멈춰 있다는 건 멈춘 게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삶의 리듬을 다시 찾는 그 시간이,
내겐 봄이었다.
그간 꿈꿔왔던, 아이와의 관계
미국에 온 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마음 한켠에 묻어두기만 했던
‘가족’,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와의 관계는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면서도
늘 ‘나중에’로 미뤄왔던, 숙제 같은 것이었다.
워킹맘 시절,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서
밤 7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오는 삶.
아무리 애쓴다 해도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은
아이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줄 수 없었다.
하루를 간신히 마치고,
아이를 재운 후 남편과 나눴던 맥주 한 잔.
그 작은 여유마저도
‘내일’을 향한 압박감 때문에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내 일상엔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미국에서의 삶은
나에게 전혀 다른 속도를 알려주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간 소중한 사람이
저녁에 무사히 다시 그 문을 열고 돌아오는 것.
그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큰 기적인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한 장면처럼
나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천국에 살았노라고,
소중한 이가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다시 저녁에 그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되었다.”
— 폭싹 속았수다 中
‘미국 주재원 아내’라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타이틀 하나에
나는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고,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다.
그냥 이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두었으면 될 것을,
괜히 ‘기회’라는 이름을 붙여
성과를 내보겠다고 몸부림쳤고,
결국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쳐버렸다.
사실, 이 시간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온전히 써야 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집중해도 부족한 시기였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하며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엄마’라는 이름, 그리고 ‘아내’라는 자리.
그 역할에 더 충실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한국에서는 아이와 이렇게 오래,
차분히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출산 후 3개월 만에 복직했던 나에게
죄책감은 일상이었고,
그 미안함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하지만 아직 2년의 육아휴직이 살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말 그대로 ‘육아휴직’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가 가장 필요할 시기에
아이 곁에 있는 지금.
아이도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요즘 누구보다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 돌아가면 엄마 또 회사 나가야 하잖아...
그래서 나는 미국에 살고 싶어.”
아이가 조심스레 내게 건넨 말.
그 말 한마디가
조용히 가슴 깊은 곳을 울렸다.
미국에 와서
내 역할에 충실하고 있구나.
그제야, 마음 한켠에서 잔잔한 울림이 퍼졌다.
삶에 여백을 주었을 뿐인데
요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식탁이 아니니까.
통번역가의 꿈을 꾸는 게 아니라면,
굳이 무리해서 영어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것이 ‘배움’이 아닌 ‘의무’로 느껴진다면,
우선은 내 삶의 로드맵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무엇보다
‘엄마’이자 ‘아내’라는 본업을 제쳐가며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일은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인맥을 넓히려 애쓰거나
억지로 소셜라이프에 끼어들 필요도 없다.
그런 관계는 내 안의 평온을 해칠 뿐이니까.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릴 이유도 없다.
삶의 방향도, 속도도
결국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저, 삶에 약간의 여백을 주었을 뿐인데
놀랍도록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무채색 같던 일상이
차츰 유채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잡초처럼 아등바등 버티는 삶보다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조용히 깊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
내면의 평화와 품격을 지키며,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일상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조바심은
아이를 살피고, 내 건강을 지켜야 할 때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꺼내 쓰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일상의 ‘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더 단단하게, 더 깊이—
오늘을 살아가기로 했다.
Carpe Diem.
아등바등 보다는 우아하게,
바쁘게 보다는 충실하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