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다녀온 뒤, ‘한국 최고야 병’이 다시 도졌다

한국이 문명국처럼 느껴지는 이유에 대하여

by 기록가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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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의료 강국


미국 주재원 가족으로 나온 지 2년 만에 한국에 들어갔다.


“건강검진은 미국에서 할래, 한국에서 할래?”
이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한국’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나 옳았다.


나는 미국에서 최악의 의료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거의 맹신에 가깝게 신뢰하게 되었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믿음은 빠르게 ‘확신’이 되었다.


아이의 치과 검진이 그랬다.
미국에서는 6개월마다 꼬박꼬박 정기 검진을 받았고,
“치아 상태가 아주 좋다”,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예약조차 쉽지 않은,
과잉진료 없기로 유명한 어린이 치과에 갔더니
충치가 네 개, 치석이 너무 많다며
스케일링, 불소 도포, 충치 치료까지
치과만 두 번을 다녀왔다.


미국에서는
윗니, 아랫니 번갈아 칩 같은 걸 물고
세트별로 촬영하는 꽤나 ‘빡센’ 시스템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칩 물고 가만히 있으면
기계가 회전하며 5초 만에 끝났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었다.
정확함이었다.


남편의 경우는 더 극적이었다.
얼굴에 표피낭종(지방종)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피부과를 세 곳이나 다녔지만
주사를 놔주는 곳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그마저도 효과는 없었다.


“수술은 흉터가 남을 수 있어요.”
“굳이 권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연고 처방만 잔뜩 받은 채
2년 동안 남편은 얼굴에 낭종을 ‘품고’ 살았다.


한국에 가서, 물론 이름 있는 병원을 찾긴 했지만
의사는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수술하셔야죠.”

그날 바로 절개, 제거, 봉합.
드레싱, 실밥 제거까지 일주일 만에 끝.
지금은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고,
남아도 레이저로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이 몇 가지 경험만으로도
나는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한국은 분명 의료 강국이다.




팁 없는 외식, 배달의 속도, 그리고 ‘다 되는 나라’


한국에서 느낀 편안함은 의료에서 끝나지 않았다.

팁 없는 외식 문화,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한 배달 시스템.


쿠팡, 네이버, 컬리, 쓱, 현대식품관, 올리브영, 백화점까지.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나라.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 다녀오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한국은 너무 정신 사납고,
사람들이 personal distance도 안 지키고,
뒷사람 문도 안 잡아주고
아직 문명 레벨이 낮은 것 같아요.”


처음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직접 다녀오고 나니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어쩌면,
그건 불편함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어설픈 우월의식은 아니었을까?


물론 나도 한국에 오니 들려오는

잦은 클락션 소리 등 불편한 점도 있지만

굳이 이런 말을 핏대세워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나, 미국에서의 나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향수병, 고국병, 귀국날 손꼽아 병에
한꺼번에 걸려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나의 위치와 터전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나’와
‘미국에서의 나’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더구나 이제는
잘나가던 한국 대기업 워킹맘이라는 타이틀도
정말 내려놓아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휴직의 끝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한국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느꼈던
‘통하는 느낌’.
이곳에서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지금 내가 속한 무리,
지금 내가 서 있는 사회가
곧 나의 위치라고 생각하니
그 사실이 더 숨 막히게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전업맘들과 대화를 나눠도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보다 투자를 잘해
이미 더 높은 수익을 내고 있었고,
미국 주식 역시
그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는
주식이나 투자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니
결국 그 이야기는 ‘자랑’이 되어버릴 것 같아
입을 다물게 된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브런치를 먹고,
소모적인 대화를 반복한다.

그 시간과 비용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공부를 시작하고
모임을 하나둘 거절하자
내가 가려는 방향에

조언을 얹는 사람들로
내 주변은 점점 가득해졌다.


그제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온 걸까.


그리고 문득,
내 주변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의 위치라는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한국이 더 그리워졌다


의료, 시스템, 사교육, 대화.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편안했던 한국이
점점 더 그리워졌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미국의 한인 사회는
어딘가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맞벌이로 바쁘게 살며
부부가 동등한 존재로
각자의 커리어와 삶을 지켜가는 모습이
오히려 미개하고 답답하게 비춰지는 현실.


그 모순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쩌면 그들이 한국에서 누려보지 못했던 윤택함이
미국의 광활한 자연과
넓은 집에 가려져 버린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열심히
나의 위치와 터전을 지켜왔고,
그와 동시에
아이 교육과 육아에도
최선을 다해온 사람으로서.

한국은
살 만한 선진국이 맞다.


그리고
내 주변에
이런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없다면,

나는
먼저 내가 머무는 레벨을
조정하며 전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26년의 나는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분명하다.
불평하는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겠다는 것.
이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기회로 바꾸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것.


나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겠다.
환경을 탓하기보다
이 환경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진을 택하겠다.


다만, 분명한 기준도 함께 세운다.
이 모든 변화와 도전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면,
특히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충분히 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땐 반드시 속도를 조절하겠다.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행복이고,
성취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그 자리에 머무르는 시간을 선택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요란하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다만,
2026년의 끝에서 돌아봤을 때
“그래도 나는 그때, 멈춰 있지는 않았어”
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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