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의 최애 루틴
우리 아이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돈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시킨다고 자라는 영역도 아니다.
오래 지켜봐야 천천히 드러나는,
마치 브랜드의 Brand Equity(브랜드 자산) 같은 것.
측정하기 어렵고 주관적이지만
쌓이면 결국 가장 큰 힘이 되는 그 무형의 가치 말이다.
미국에 오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도서관 단골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요일에 열리는
Storytime에 맞춰 간다.
연령별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모두 무료다.
책 읽기를 독려하는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책 읽은 시간을 누적해
400시간마다 배지와 작은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이러니 돈 내고 북클럽이나 리딩 레슨을 듣는 것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도서관 자체가 이미 커뮤니티이자 최고의 교육 플랫폼이 되어 있으니까.
아이는 도서관에 가면 억지로 손을 잡아끌기 전까지는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 공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다.
나는 아이가 Graphic Novel,
흔히 말하는 만화책을 읽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책이라는 세계에만 몰입해 있다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아이에게 “책 봐” 하고는 폰을 보는
부모들의 모습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요즘엔 나도 어른 코너에서
책을 한 권 골라 읽는다.
마케팅, 글쓰기, 논픽션, 육아 등
나와 닿아 있는 주제를 탐색해 보고,
얼마 전엔 메타버스와 빅데이터 관련 책도 빌려 보았다.
전공서적 같은 밀도에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그 시도조차 내겐 신선한 자극이었다.
내가 도서관에서의 시간을 스스로 의미 있게 보내니
아이 역시 독서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최근에는 내가 컬리지 공부를 시작하면서
과제도 도서관에서 하고 있어
이곳은 어느새 우리 둘의 ‘공부방’이 되어버렸다.
작년만 해도 단순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장소였는데,
지금은 나에게도 작고 든든한 의미가 생긴 공간이다.
아이는 도서관에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원하는 책이 없으면 사서 선생님에게 다가가
순서와 예의를 갖춰 질문한다.
단순히 책 제목을 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서운 이야기 책인데 구스범프는 싫고,
좀비가 나오면 좋겠다”처럼
조건을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한다.
사서 선생님은 그런 아이를 즐겁게 받아주며
아이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을 때까지
여러 권을 추천해 준다.
미국에 온 초기부터 도서관을 꾸준히 다녔기에
웬만한 직원들은 이미 우리 아이의 얼굴을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일주일에 한 번 가는데도
늘 20권씩 빌려온다.
처음엔 단순히 ‘양에 집착하는 건가?’ 싶어
10권 이하로 제한했지만
정말 20권을 순식간에 읽어 치웠다.
게다가 학교 숙제 중 하나가 ‘매일 30분 읽기’라
이 정도 양은 금방 소화한다.
아이는 미국 책뿐 아니라 한국 책도 꾸준히 읽는다.
이삿짐을 보낼 때 한국 책만 10박스 넘게 가져왔고,
한국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아이가 원하는 책을 부탁했으니
집에 쌓인 책들도 제법 많다.
한글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독서는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한국 책, 미국 책 가릴 것 없이
아이가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읽게 한다.
두 언어, 두 나라의 관점을
함께 흡수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요즘은 아이가 책에 빠지고,
덩달아 나도 독서 분위기에 취한다.
미국이 책 읽기 좋은 나라라는 것도 맞지만,
사실은 나 역시 이 분위기를
슬며시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서는 결국 아이가 자랄 때 가장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