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지와 PTA에서 다시 쌓은 나의 이력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약 15년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일해왔다.
대기업 조직 안에서 기획과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삼았고,
늘 ‘다음 일정’과 ‘다음 결과물’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워킹맘이 된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과 육아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늘 동시에 처리해야 할 과제였고,
나는 그 균형을 꽤 오랫동안, 꽤 성실하게 유지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휴직’이라는 단어는 쉼표라기보다
내 커리어에 갑자기 찍히는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을 쉬고 있는 지금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미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ESL 수업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료 ESL 과정은, 애석하게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Assessment Test에서 거의 만점을 받았고,
수업은 예상보다 훨씬 느슨하게 흘러갔다.
결국 ESL을 그만두고 독학을 택했다.
TIME지를 구독하고, 미드를 보고,
CNBC 뉴스와 주식·경제 시황을 영문으로 읽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역시나 점수와 기준에 익숙한,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는
커뮤니티 컬리지 수업을 통해서야 다시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
사실 나는 공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학사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 줄곧 실무 현장에 있었고,
연구나 탐구보다는
사기업의 논리와 시장의 흐름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석사를 떠올리면서도
‘내가 정말 이 과정을 거쳐야 할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MBA도 잠시 스쳤지만,
임원이나 VP를 꿈꾸는 것도 아닌 나에게는
비용과 시간 면에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우선 그럼 Certificate부터.
영어 실력도 다지고,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력서 한 줄로라도 남길 수 있는
Marketing Management Certificate를 시작해보자.
가볍게 생각했던 선택은,
곧장 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미국 컬리지 수업은 생각보다 훨씬 빡빡했다.
매주 퀴즈가 있었고,
에세이 과제가 이어졌으며,
2~3주에 한 번씩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했다.
PPT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쓰고, 발표까지 마쳐야 했다.
게다가 나는
부모 인생에서 가장 바쁘다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초등학생의 엄마였다.
유난히 일찍 끝나는 학교 일정,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각종 액티비티 라이딩.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공부와 과제를 끝내야 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버텼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시간 안에
과제를 끝내고, 발표를 준비하고,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분명했다.
이번 학기 수강한 모든 과목에서
나는 A를 받았다.
성적표를 받아들고
뿌듯했다기보다는,
조용히 확신이 들었다.
아, 나는 아직 할 수 있구나.
환경이 바뀌어도,
언어가 달라도,
나는 여전히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흥미로운 건,
나는 늘 대행사가 아닌 ‘광고주’의 자리에서 일해왔다는 사실이었다.
과제를 통해 광고 기획안을 만들고,
포스터와 라디오 광고,
TV와 유튜브 광고의 스토리보드를 짜고
직접 제작과 편집까지 해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대행사들 정말 바쁘고 힘들었겠다.
대리 시절까지만 해도
나는 꽤 착한 광고주였다고 믿는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는 점점 까다로운, 어쩌면 악덕에 가까운 광고주가 되어 있었다.
원하는 결과물을 팀장과 임원 앞에 내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압박과 후려치기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는지를.
컬리지 과제 앞에서야,
그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컬리지 수업과 병행해, 나는 PTA 활동도 하고 있었다.
미국 PTA 멤버들을 보면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가 워킹맘이다.
PTA 활동은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실상 고난도의 실무에 가깝다.
기획, 재정, 마케팅, 전략, 홍보, 보고.
학교 예산을 짜고 배분하는 일은 재경 경험 없이는 쉽지 않고,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은
이벤트나 마케팅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다면
접근조차 어렵다.
교장 선생님과 논의하며 회의체를 운영하고,
회의록을 정리해 전체 내용을 요약·보고하는 일 역시
‘일해본 사람’이 아니면 버거운 영역이다.
우리 학교에서 Spirit Wear를 담당하는 학부모는
Art 대학교 교수다.
티셔츠 도안을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 업체와 커뮤니케이션하며
학부모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결제 시스템까지 연동한다.
이건 봉사가 아니라,
거의 하나의 회사에 가깝다.
나는 Native Speaker도 아니고,
이 학교에 오래 몸담은 인물도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특정 역할을 맡기엔 조심스러운 위치였다.
그래서 Native Speaker 가정이 아닌 가족들을 돕는,
교육청 직원들과 교육구 교장들이 함께 모이는
행사를 기획·서포트하는 일을 맡게 됐다.
아이의 상황상 대표직을 맡기는 어려웠다.
우리 아이는 ELPAC 시험에서 전 영역 4점 이상을 받아
English Learner에서 이미 원어민으로 재분류(reclassification)된 상태였다.
더 이상 ESL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엄마와 닮았다고 해야 할까.)
대신 교장 선생님은 말했다.
“Secondary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그 말 그대로,
꽤 많은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
교육청 직원들이 모이는 행사인 만큼
교장 선생님에게는
‘우리 학교를 잘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행사 콘셉트 설정부터,
시즌을 반영한 데코레이션 기획,
중요하다는 케이터링 구성,
행사 당일 운영과 학부모 협조까지.
두세 차례 회의를 거쳐 방향을 잡고,
PTA 멤버들의 지인을 통해
플라워 숍을 운영하는 학부모,
헬륨 풍선 데코레이션을 맡은 부부를 섭외했다.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인 diversity를 살려
음식 역시 이탈리안, 아시안, 멕시칸 등
다양한 국가의 메뉴로 구성했다.
그 과정을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예전에 프레스 컨퍼런스 기획하던 때랑
이 모든 맥락이 너무 닮아 있구나.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나는 김밥을 준비해 갔다.
백인이 대부분인 학교라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건 Korean Sushi야”라고 설명했더니
돌아온 말은
“Oh, Kimbap!”
김밥은 예상보다 빨리 동났고,
교장 선생님은
“내 것도 좀 남겨줘”라며
미리 몇 개를 챙겨달라고 했다.
그 순간만큼은
한국인으로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 행사뿐 아니라
Walk to School 같은 소소한 이벤트에서도
데코레이션을 하고,
걸어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사인업을 돕는 일에 직접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아이 엄마’로만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이 커뮤니티 안에서
나만의 역할과 위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그렇게 활동하다 보니
친구도 달라졌다.
아이의 친구 부모가 아니라,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PTA 멤버 중에는
내가 진학을 고민 중인 대학교의 교수도 있는데,
내가 컬리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내 인맥과 커리어를
나만의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고,
이 시간이 분명히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는,
우선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Marketing Management Certificate 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이 선택이
내 커리어의 종착지는 아니다.
나는 이제,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이라는
더 큰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모든 계획이 또렷하게 완성된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목표의 윤곽을 하나씩 그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력서의 한 줄은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는 휴직이나 퇴사를 감수하고
유학을 떠난다.
나는 같은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공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이 기간 동안
배웠고, 움직였고,
확실히 이전보다 성장했다.
만약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나는 이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컬리지에서의 학업,
PTA에서의 실무 경험,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해 온 글쓰기까지.
이 모든 것은
‘경력 단절’이 아니라
다음 커리어를 위한
충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이곳, 미국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는 미국의 교육기관에서
검증된 커리큘럼을 통해 공부했고,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에서 오랜기간
실무를 쌓아온 사람이다.
그 사실은
어디에서든 나를 설명해주는
가장 분명한 언어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루저도,
경력이 끊긴 사람도 아니다.
나는 이 시간을 지나며
더 단단해졌고,
더 넓어졌고,
더 매력적인 경력직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다음 커리어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커리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