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맑음일 수는 없는 주재원 아내
캘리포니아 전역에 땅이 꺼져라 비가 내렸다.
보통 우기는 1~2월인데,
올해는 11월부터 폭우가 이어졌다.
비에 익숙하지 않은 땅이라 그런지,
뜨겁고 찬란한 태양 아래 살아가는 동네라 그런지,
지붕이 망가진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재방 지붕이 새어 카펫까지 깔린 방이
그대로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며칠을 수건으로 물을 찍어내고 히터로 말려댔다.
커뮤니티를 통해 부른 지붕 전문가는
임시로 플라스틱 덮개를 씌워 두었고,
조만간 정식 수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오래된 집이 많은 탓에,
아파트 위주로 살아온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터진다.
비가 내리던 날들이 이상하리만큼 계속되었다.
왠지 그 비가, 내 마음을 대신 울어주는 것만 같았다.
가을도 지났는데 마음은 더 시리고,
조금만 건드려도 감정이 툭 하고 올라오는 시기다.
미국에 온 지도 어느새 2년.
나름 잘 정착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문득 회의감이 밀려오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복직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를 놓아줘야 한다는 현실.
그게 생각보다 크게, 깊게 마음을 건드린다.
이미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미국에 건너온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쯤
마음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들 역시 사원증을 내려놓고
전업주부가 되어 이곳에 왔을 때,
정체성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낯섦과
‘쉼’이라는 이름 아래 밀려오는 불편함과 고통을
분명 겪었을 것이다.
그 번뇌가 이제야 가늠된다.
나도 그렇게 악착같은 커리어우먼은 아니었다.
임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중장기 플랜을 꿈꾸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일하던,
대기업의 하나의 부품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품’이었던 자리조차
내겐 참 많은 의미였다는 걸
여기 와서야 알게 됐다.
나에게 ‘직장’과 ‘커리어’라는 정체성은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국 한인 사회에서는,
정확히는 미국 내 한국 엄마들 속에서는
그 자체가 은근히 폄하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이미 지나온 이야기 거나,
지금의 미국 생활이 훨씬 낫다고 여기는 탓에
한국에서 누릴 수 있었던
커리어의 가치나 무게를 온전히 공감받기 어렵다.
그래서 자주 듣게 되는 말들
“한국은 어휴, 너무 좁고… 지방은 지저분하고…
사람들은 바쁘기만 하고…
그리고 국산차는 왜 그렇게 안 좋아요?”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쿡, 찔린다.
반면 아이는 늘 즐겁고 신나 있다.
미국 초등학교에는 PE 시간에
‘마일리지 토큰(Mileage Token)’이라는 제도가 있다.
아이들이 운동장 트랙을 달린 거리에 따라
작은 보상을 주는 동기부여 프로그램이다.
2마일을 달성할 때마다 발 모양 토큰을 하나씩 받는데,
오늘은 벌써 세 번째 토큰을 받아왔다.
그래서인지 PE가 있는 날이면
아이는 온몸이 땀에 젖고,
얼굴은 벌게져서는 운동장에서
전력질주라도 한 듯 뛰어온다.
미국은 이런 Reward 제도가 곳곳에 있어
아이들이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아이에게는 정말이지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특히 한국인이 거의 없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학교로 옮긴 뒤
아이는 훨씬 밝아졌고, 원래의 개성을 되찾은 듯했다.
아이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아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활발하고,
영어에도 막힘이 없다 보니
이런 환경이 훨씬 잘 맞는 것 같다.
중동·이슬람권 친구들과 금세 친해지고,
아랍어가 신기하다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집도 특정 종교나 인종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
이 다양한 환경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오히려 한국 엄마들의 지나친 관심과 오지랖,
훈계와 강요의 분위기가 나에게는 더 힘들었다.
나 또한 대학 수업을 들을 만큼
영어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 가족이 선택한 이 방향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다시 적응하는 동안,
외국인 엄마들에게서 플레이데이트 제안
쪽지를 받아 들고,
백인 엄마들 모임에도 불려 다니며,
스몰톡이 무서워 늘 도망치던 내가
아침마다 외국 엄마들과 허그를 나누고
한참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 비도 오고 바람도 불지만
이 작은 행복들이 결국 나를 견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