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선택

공부는 다시, 나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by 기록가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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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종영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누구의 삶을 평가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대기업에 수년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드라마를 보며 깊이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저렇지 않지…”,
“아, 내가 신입·대리 시절엔 저런 분들 많았지”
싶은 생각들이 잇달아 머리를 스쳤다.


확실한 건, 어떤 형태로든 내 안에도 김부장은 있다는 것.
직장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얻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소중함도 있었다.


새벽같이 출근해 아이의 하루가 끝날 무렵 돌아오던 날들.
그때마다 “아, 내 꿈은 전업주부야!”
이렇게 외치며 버틴 적도 많았다.




엄마들의 놀이터 같은 브런치 모임을 그토록 꿈꿨는데
막상 ‘맘스클럽’ 안에 직접 걸어 들어가 보니
내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점점 사라지고
아이와 남편만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
아이의 세계에 매몰된 채
아이의 일정과 성취가 곧 나의 삶이 되는 구조.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또 레슨, 또 프로그램을 추가하며
남의 시선을 기준으로 사는 나날들.

이건 대치동 7세 고시와 다를 바 없는 세계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럴 거면 왜 미국에 살아?”
그 질문이 맴돌았다.


그들은 한국보다 더 ‘한국적으로’ 살고 있었다.




휴직 종료 시점이 다가온다.
남편을 따라 주재원 와이프라는 타이틀을 달고 미국에 올 때만 해도
“아 몰라, 2년 뒤에 생각해.”
라는 생각으로 직장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었다.


전업맘, 아이에게 온전히 올인하는 삶을 꿈꾸던 때였다.


하지만 이 세계에 직접 들어와 보니
이건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서열.
이민 온 기간과 나이순으로 정해지는 위계.
회사에서도 이제 보기 힘든 ‘장유유서’가
이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엿같은 ‘후배생활’은 내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를 바꿔보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대단한 석박사 과정이 아니라,
원래 하던 업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매니지먼트 Certificate 과정.


책을 읽고, 공부하고, 과제를 하고, 발표를 하다 보니
내 삶이 다시 바빠졌다.
영어도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무엇보다 내 삶의 중심이 서서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지인들은
“너 정말 대단하다.”
“I’m so proud of you.”
라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줬다.


하지만 맘스클럽에선
“아~ 나도 공부하려고 했는데. 자격증 따면 페이 세거든.”
이라는 말로, 또 서열질을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
미국의 한인 사회가 원래 이런 건지.
미국에서 오래 산 순서로 대접받아야 하는 건지.
‘내가 미국에서 살아보니까~’로 시작하는
그들의 인생 지론을 몇 번이나 들어서 그런 건지.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도
커밍아웃할까 말까 고민했다.
브런치북에도 쓰지 말까 싶었다.


한국 대기업 문화처럼
‘결과로 말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진 탓일까.
“그래서 공부했는데 결실이 뭐야?”
라는 질문에 아직 답할 수 없어서일까..




하지만,
내 안의 김부장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지금,
모든 결론을 미리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국에서 다시 취업을 하게 되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게 되든
이 시간과 공부가 헛되진 않을 거라는 확신만은 있다.




지난 2년간,
좁은 한인 사회 안에서 참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 사회는 나랑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존중과 배려가 기본값이 아닌 공간에서
그걸 기대하며 상처받는 것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성장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한국만 학벌·직업·타이틀에 민감한 줄 아는데
미국도 똑같다.
아니, 솔직히 더하다.


하버드 나오면 자랑스러운 게 당연하고
스탠퍼드 붙었다는 지인 이야기만 나와도
“와… 그건 진짜 미친 거야.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런 반응이 바로 나온다.


그게 정상이다.
그 사람의 노력과 과정에 대한 존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국 한인들 사이에서는
그걸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은 스카이에 집착해서 문제야.”
하면서도


누군가의 남편이 의사라 하면,
“뭐야, 자랑이야?”
“우리 친척 중에도 대학병원 교수 있어.”
라며 갑자기 이상한 경쟁심을 세우고
상대의 성취를 축소한다.


미국 사람들도 학벌·타이틀 존중하는데
왜 여기 사는 한국 사람들만
그 사실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걸까.


그 모순이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김부장 이야기를 보면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게 된다.
그 타이틀을 벗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기분.

그래서 요즘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한 시대라고들 말하는 거겠지.


나도 말한다.
“나 한국에서 이런 일 했어.”
“전시 담당으로 CES, 모터쇼도 다녀봤어.”
“전기차 관련 일도 해서 캘리포니아 EV 문화가 얼마나 선진적인지 알아.”

이 몇 마디면
미국 친구들은 나를 단순한 ‘떙땡맘’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맘들 사이에서는
“한국은 다 대기업 가고 싶어 하고~ 다양성이 없잖아요.”
라며 또 다른 방식의 폄하가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시작하며 더욱이
완전히 미국이라는 세계에 빠져들어 보기로 했다.


이번 Thanksgiving에도
여러 미국 친구 가족들이 따뜻하게 초대했다.


“우리도 하와이에 시댁 있고 친정은 동부라
땡스기빙은 늘 친구들이랑 보내.
너도 한국까지 못 갈 테니까 우리 집 와!”


“터키 먹고 싶으면 우리 집에 와.

애들끼리도 잘 노니 복작하고 따뜻하게 보내자!”


그런 마음들이 참 감사했다.

결국 여행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이런 초대가 따뜻하게 느껴진 한편
한국맘들이 또
‘외국인이랑만 어울린다’는 프레임을 씌우지 않을까
걱정이 스쳤다.


그만큼
내 감정회로가 많이 손상되고 너덜너덜해진 것 같다.


그러니 제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줘!

그게 아니면 신경을 꺼줘라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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