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하고 싶어진 진짜 이유
한국에서 전력 질주하듯 일하다가 미국에 오니,
처음엔 정말 여유가 생긴 줄 알았다.
그토록 갈망하던 ‘놀이터 타임’도 마음껏 챙겨줄 수 있고, 플레이데이트도 실컷 시켜줄 수 있고, 엄마들 브런치 모임까지 자연스레 따라붙으니 괜히 뿌듯했다.
전업 선배 친구가 “초등 입학되면 자발적 아싸가 답이야”라던 말을 귓등으로 흘렸던 이유다.
사람은 역시 겪어봐야 안다.
처음엔 불러주는 게 고맙기만 했다.
아이도 좋고, 나도 좋고, 이게 ‘미국 생활의 낭만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문장들이
마음속에 걸렸다.
“어… 아까 그 말은 뭐지?”
집에 돌아오는 길마다 혼자 반추하게 되는 순간이
늘어갔다. 그리고 결국 확신했다.
아, 이 모임…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구나.
관심이 비교로, 비교가 질투로 흘러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미국 정착 기간 순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생기고,
별 근거도 없이 선배 대접을 요구하는 기묘한 문화.
한국 대기업의 시스템, 구조, 논리 속에서 굴러온 내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였다.
우리 아이는 미국 온 지 얼마 안 돼 ELPAC을 통과했고,
iReady 시험에서도 상위 1%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만능형 인간’으로 키우겠다는
욕심은 없다. 언어적 감각이 타고난 건 인지하고 있었기에 독서로 좀 더 트레이닝을 해주고, writing은 엄마표 한계가 있으니 원어민의 도움을 받아왔다.
공부든 운동이든 예술이든 글쓰기든,
결국 타고난 capability가 있고
부모의 역할은 그걸 찾아 키우는 것뿐이다.
대기업에서도 모두가 리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조직은 결국 “팀플레이”니까.
그런데 나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로,
시민권자·영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가 공부머리가 있다는 이유로,
외국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그리고 교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말 다양하고 신선한(?) 형태의 공격을 받아왔다.
질투와 허영과 자격지심이 한데 섞인 그 세계 속에서
내 자존감은 매일 조금씩 잘려나갔다.
“여긴 내가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그제야 명확해졌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CES, 모터쇼, 언론 홍보, 디지털 마케팅, 브랜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만 10년 넘게 해온 사람이니
미국에서도 자연스럽게 마케팅 매니지먼트 학위를 준비하게 됐다.
그리고 이때, 미국 친구들의 반응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내가 “다시 공부 시작했어”라고 말하자마자
“I’m so proud of you! So glad to hear that!”
진심이 가득한 응원들이 쏟아졌다.
반면 한국맘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에에? 공부요? 어디 학교? 등록은 어떻게 했어? 나는~…”
대화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자기 이야기 마라톤’으로 넘어간다.
워킹맘이 되면 아이 케어가 안될 거라고도 경고한다.
세계관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여기서 친해진 외국맘들은 대부분 워킹맘이다.
그래서 더 통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이들과는 브런치 타임 같은 건 없다.
대신 아주 건강한 방식으로 만난다.
하교 후 놀이터에서 아이들 뛰노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엔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저녁엔 가족 단위로 레스토랑이나 새로운 액티비티를 함께 즐긴다.
서로를 재거나 비교하거나 줄 세우지 않는 그 담백함.
그게 참 좋다.
물론, 한국 사람이라고 다 이상하거나 관심병 환자는 아니다. 진짜 좋은 분들도 많다.
어쨌든 이제는 더 긁히지 않기로 했다.
내가 속한 세계가 나를 소모시키면,
그 세계를 바꾸거나, 아니면 과감히 떠나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삶을 다시 내가 주도하는 세계로 가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