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이 짙은 나날의 연속
나 요즘, 진짜 행복한가봐
어느 날 문득,
‘아, 나 요즘 진짜 행복한 거 같아’
그 생각이 스치듯 들었다.
축복받은 이곳의 날씨,
누군가 건넨 따뜻한 한마디,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지만 소중한 일상.
그 모든 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의 개학 이후, 일상은 쉼 없이 굴러가고 있다.
그 바쁜 리듬 속에서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풍요롭게 물들이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 때문에 웃고, 또 사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나
그야말로 ‘E’가 맞다 싶었다.
"이제 우리 CES 얘기 말고, 사람 사는 얘기로"
전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책임님’이 미국에 왔다.
그때 그는 늘 열정적이었고,
“와, 나는 저렇게는 못 한다”
감탄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바쁘고 능력 있던 사람이
미국에 와서 나처럼 ‘스테이 앳 홈 맘’이 되어,
아이 이야기와 일상, 맛집과 핫플을 공유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살다 보면 인생은,늘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도 남편을 따라 주재원 아내로,
책임님도 남편을 따라 교환교수 아내로 오게 됐다.
게다가 사는 곳이 차로 1시간 20분 거리라니
미국에서 그 정도면 이웃 아닌가.
며칠 전, 나는 책임님네 동네를 찾았다.
파란 하늘, 살랑이는 바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조잘거림.
방문한 곳마다 근사했고, 그 하루는 정말 ‘완벽하다’는 말이 어울렸다.
샌디에고는 벌써 다섯 번째였지만,
그 유명한 올드타운과 시포트 빌리지,
항공모함은 이제야 처음 가봤다.
할로윈을 앞두고 북적이는 거리,
‘코코’의 한 장면처럼 오색의 라틴 리듬이 가득했다.
그날의 잔상은 꽤 오래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둥둥 떠 있었고, 그 기분은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회사에서의 ‘책임님’이 아닌,
이젠 ‘친구’로 다가온 사람.
‘아’ 하면 ‘어’가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아’를 받아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생겼다는 게 참 고마웠다.
며칠 전 통화 중,
내가 너무 흥분해서 “아니 언니!” 하고 불쑥 내뱉자
둘 다 그 자리에서 빵터졌다.
“어머, 책임님 죄송해요” 하며 깔깔댔지만,
이젠 ‘책임님’보다 ‘언니’가 더 자연스러워질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우리 주말에 같이 Park 갈래?”
아이 학교에서 알게 된 미국 엄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애들 주말에 놀이터에서 놀게 할까?”
그녀의 밝은 제안에 “좋아, 토요일 오후 괜찮아!” 하며 흔쾌히 응했다.
다음날, 나는 그룹채팅방에 초대되었다.
한국맘들의 경우 바로 시간을 정하고 바로 누가 오는지 알아야 하지만
미국은 답이 늦든 빠르든, 그저 ‘사람마다 리듬이 다르구나’ 싶을 뿐이다.
그날은 2학년 아이 넷이 모였다.
아이들은 놀이터를 누비며 2시간 넘게 놀았고,
심지어 옆 파티팀과도 합세해 신나게 뛰어놀았다.
엄마들은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솔솔 부는 바람 속에서 웃음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
그저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따뜻하고 충만했다.
요즘 들어 영어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는데,
그날은 특히 한마디에 빵 터졌다.
“내 남편은 완벽하긴 한데, 운전할 땐 내가 8할은 해.”
“He’s such a princess passenger while I’m driving.”
‘프린세스 패신저’라는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이해되어 웃음이 터지며 나는 거의 쓰러졌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 함께 깔깔 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아, 그래.
이렇게 별것 아닌 걸로 웃는 게 나다.
학창시절, 낙엽 하나에도 웃었고
신입사원 시절, 회의 중 ‘ㅇ’ 발음이 많다고 낄낄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처럼 다시 웃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게 했다.
"비오는 날, 학교 정문 앞에서 수다 2시간"
오늘은 교장선생님 주관 행사 회의가 있었다.
정작 회의는 한 시간도 안 걸렸는데,집에 오니 세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올 즈음, 하늘이 쏟아붓듯 비가 내렸다.
잠시 비를 피하자는 말로 시작된 대화는
회의 얘기에서 아이 얘기로,
그리고 어느새 서로의 일상으로 흘러갔다.
멕시칸, 파키스탄, 코리안. 우리 셋 모두 이민자 엄마들.
말도, 문화도 다르지만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마음만큼은 같았다.
적당한 거리감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가 반가운 사람들.
아이들보다 먼저 친구가 된 우리.
이 모임의 채팅방은 백인 엄마들 그룹과는 또 다르다.
행사장이나 회의에 갈 때면,
“우리 같이 가자”, “너 올 거지?” 꼭 확인하고 함께 간다.
나는 E 같기도 하고, I 같기도 한 사람이라
모임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제는 안다.
이곳에 어디서든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걸.
한국어로 말하는 게 분명 편한데,
이상하게 한국인들 사이에선 말 한마디에 의미를 과하게 얹게 된다.
괜히 눈치 보고, ‘이 말을 괜히 했나’ 후회하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미국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 그리고 한국에서 이어진 소중한 인연들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래서 요즘, 문득문득 생각이 든다.
아, 나 요즘 진짜 행복한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