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당신의 의식 속이야. 여기는 회장의 방이 아니야.”
진명이 깨닫자 공간이 더 일그러졌다. 그 공간은 불안해 보였다.
봉석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명과 선애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봉석의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은 무의식 중의 세계가 그 방이었다. 진명은 그곳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이었다.
“이제 집으로 가요. 더 이상 여기에 있지 말고. 이런 것을 원하신 거예요?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요.”
회장의 모습은 원래의 봉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나는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받을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 그래서 진명이 너를 부른 거야. 곧 사자가 올 거야. 그들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어.”
“무슨 말이에요? 곧 죽는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그럴 수 있죠?”
“나는 계속 내가 만든 세계에서 살고 있었어. 여기에는 가족도 있고 돈도 있고 풍족한 삶을 사는 내 모습들이 있었거든. 여기에는 내가 꿈꾸던 삶이 있었어.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면 절망하다가도 또다시 이곳에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의존하고 살았던 것 같아. 너를 오랫동안 기다렸어. 진작에 너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회장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어서 네 세상으로 가. 이곳은 이제 버틸 수가 없구나.”
진명은 다시 현관문 앞으로 돌아가 있었다. 진명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이 없어.
진명은 다시 공간이동을 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현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은 진명의 눈에 보였다. 집 안의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진명이 현관 안으로 공간이동을 하자 그곳은 조금 전에 보았던 집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철거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진명은 관리실에 가서 그 집에 대해 물었다.
“거기 한 달 전부터 비어있어요. 인테리어 공사한다고 다 철거했을걸요.”
진명은 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평택의 건설회사도 찾아가니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진명은 뭔가에 홀린 듯 머리가 복잡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진명은 소희와 함께 낮에는 회사원, 밤과 주말에는 해결사로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 내려오세요.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빌라 지붕에 올라가 있는 여성을 구하기 위해 진명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억울한 일들을 순간이동을 통해 보고 왔다.
“웬 주차 딱지지?”
지현은 남편의 벌금 고지서를 보았다. 그리고 남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현의 남편 종민은 요즘 밤마다 운동장을 돈다며 조깅을 하러 나갔다.
“나 운동 다녀올게.”
종민은 조깅을 하면서 친해진 무리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다. 지현도 한번 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종민이 한 가족을 소개해주며
“우리 학교 후배야.”
지현은 후배의 가족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후배가 밥을 먹으며
“오빠가 저랑 성격이 비슷해서 말이 잘 통해요, 저희 남편은 말이 없어서 좀 답답하거든요.”
후배는 옆에 있는 남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현은
“성격이 다른 거니깐요. 저도 오빠랑 성격이 반대예요.”
지현은 그 후배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종민은 운동을 갔다 와서 침대에서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종민은 운동을 다녀오고 나서는 항상 침대방에만 있었다. 그리고 밤에 차에 무엇인가를 가지러 간다며 나갔다. 한 시간 정도 뒤에 오는 편이어서 지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현은 낮에 필라테스 학원 수업을 듣고 집으로 걸어가려는데 저 멀리 남편의 차가 자신의 앞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지현은 손을 흔들려고 손을 올리는 순간 옆자리에 앉은 어떤 여자를 보았다. 종민은 지현을 보자 차를 멈췄고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급하게 문을 열고 도망을 갔다. 지현은 화를 내며
“그 후배 아냐? 왜 지금 같이 차를 타고 가?”
종민은
“아, 아무도 아니야. 지나가다가 태워만 준거야.”
종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요즘 저녁마다 운동가는 것도 이상하고 밤마다 나가는 것도 이상하다 생각했어. 저번에 밤에 전화하고 파라솔 의자에서 만난 사람이 저 여자야?”
종민은 화를 내며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라는 데 왜 그래?”
종민은 오히려 화를 더 크게 냈다.
지현은 종민이 화를 더 내는 것에서 바람에 대한 확신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주차 딱지의 주소가 그 여자의 집임을 알았다. 시간은 점심시간 때였다.
지현은 종민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동네의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했다.
“사실 저번에 남편이랑 복국집에서 그 여자랑 언니 남편이랑 있는 거 봤어. 밤에.”
냉장고에 있는 반찬도 아이들 주라던 헌 옷들도 그 여자가 준 것들이었다.
진명은 이 모든 것을 보고
“제가 도와줄게요.”
라고 말하며 그녀를 설득했다.
“진짜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진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복수를 도와줬다. 애초에 그 후배는 자신의 가정을 깰 생각조차 없었다. 이 사실을 안 후배의 남편은 화를 냈고 그녀는 잘못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지현은 종민과 이혼을 하게 됐다. 진명의 도움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진명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명은 해결사로의 시간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