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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기간

by 명희진

11월이 되면 언제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소설이나 시등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기간에 신춘문예를 준비할 거다.

그 이야기는 그들이 지난 일 년 간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방지나 그저 그런 등단을 했다면, 신춘 문예가 자신을 다시 증명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언젠가 한 선생님은 내게, 그냥 축제에 참가한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일 년간 준비한 원고로 성과를 내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축제를 즐겼다고 생각하라고. 습작 초기에는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축제를 즐길 수 없었다. 모두를 위한 축제가 아닌 1등 만을 위한 축제였으니까.


나도 그동안 신춘문예(동아, 조선, 한국, 경향등 서울에 있는 신문사)에서 등단하길 바랐다. 지방 신문은 보내지도 않았다. 되더라도 주목받을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다. 신춘에서 등단하지 못하면 문예지 등단이 있다. 이건 신춘보다 더 어렵다. 어떨 때는 당선자를 아예 뽑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떨 땐 그들이 찾는 신인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등단 이력을 생각하면 등단이라는 제도가 싫으면서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민중문학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나는 다른 신인 등단을 바로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발표된 내 소설은 소설의 좋음과는 상관없이 묻히게 된다. 그게 문학계의 생리다. 그저 그런 등단은 그다음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다. 약간의 재능을 확인받은 것 말고 아무것도 아니다.


오랜 외국 생활과 결혼, 출산으로 내겐 문우가 없다. 한동안은 한국 소설을 읽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고 소설을 아예 놓은 건 아니었다. 언제나 외국 소설을 읽고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쓰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는 다시 소설을 잡았다. 이제는 성과와 상관없이 글을 썼다. 뭐든 쓰고 싶은 마음에 오스트리아 간호사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물론, 이상한 여자와 연루돼 일 년동안의 작업이 수포가 됐지만, 글을 쓰고 있어 괜찮았다.


그러면서 나는 본인을 비등단 작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정말 열심히, 성실히 읽었다. 거기에 내가 원하는 답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절망스럽게도 거기에 내가 원하는 길은 없었다. 그들의 문장은, 소설은 아직 설익은 밥 같았다. 등단 작가와 너무 비교가 됐다. 그들이 선택한 길을 응원하면서도 나는 그 길에 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절제된 문장을 쓸 줄 아는, 그런 문장으로 서사를 만드는 소설가가 내가 원하는 거였다. 그건 정말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책을 출간하고 내 책이, 내 이야기를 읽는 독자가 생기길 바랐으니까.


이번에는 따로 신춘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생각이 들다가, 갑자기 불안해졌다. 남은 신문사가 하나 있었고 마지못해 또 그곳에 글을 보냈다. 한국의 언니에게 글을 보내 언니가 그걸 신문사에 투고했다. 신춘에 당선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축제에 마지막으로 참여하고 싶었다. 혹시라는 기대를 걸고... 이런 현실이 싫으면서도 이 현실을 바꿀 힘이 내겐 없다. 나는 그저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뿐인데... 그 길이 참 험난해 생각이 많은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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