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08-09 | 발행일 2022-08-09 제15면
TV나 영화 속에서 새하얀 화이트 큐브를 배경으로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등장인물이 팔짱을 끼고 턱 끝을 살짝 든 채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 걸어주세요. 저기로 옮겨 주세요"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화되어 연출된 장면이지만 미술작품을 전시로 소개하는 데에 디스플레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미술관에서도 전시장이 작품을 맞이할 준비가 끝나고 나면 드디어 작품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이때 어떤 작품이 어떤 공간과 위치에, 어떤 조명 아래, 어떠한 각도와 높이로 걸리는지에 따라 작품의 표정이 달라진다.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을 대표하는 승리의 여신 '사모트라케의 니케(Victorie de Samothrace Nike)' 조각을 떠올려 보자.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계단을 저 멀리서부터 올려다보며 니케의 조각을 마주한다. 천장의 동그란 창문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자연광을 몸으로 받으며 위엄 있는 자태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승리의 여신이 축복을 내리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승리의 여신 니케상이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평범한 바닥에 적당한 좌대 위에 세워져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우리가 열광하는 루브르의 니케와는 완전히 다른 아우라를 가지게 될 것이리라.
현대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회화, 조각이나 설치, 영상작업 작품도 놓이는 공간과 위치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일례로 대구미술관에서 매해 열리는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중 필자는 작년 제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강요배 작가의 개인전을 기획한 바 있었다. 본 전시는 강요배 화백이 쌓아온 궤적들과 신작들을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이었다. 그중 세로 3.3m, 가로 16m에 달하는 대형 회화작업인 '수풍교향(水風交響)'(2021)은 심상에서 일렁이는 대자연의 광활함과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마치 파노라마 같은 다채로운 자연의 표정을 담은 대작이다. 이 작품은 대구미술관의 3전시실, 즉 한쪽 벽면이 전면 통유리로 이루어진 전시장 한쪽 면에 걸렸는데 그 옆에는 작가가 제주의 자연을 담아 생생한 사운드가 더해진 '강요배의 소리풍경'이라는 영상작업이 상영되었다. 이러한 디스플레이로 인해 3전시실은 창밖 실제 자연의 민낯과 영상작업 스크린 속의 제주 자연 그리고 캔버스 위에서 붓질로 일렁이는 회화의 자연이 하모니를 이루며 공감각적 경험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큐레이터는 계속해서 현장에서 관람객에게 더 깊숙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의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 '적절한' 위치는 작품에 숨어있는 다채로운 표정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혜원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