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선상의 아리아

질리도록 들었건만 왜 몰랐을까.

by 박찰리

내가 처음 간 장례식은 친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아주 오랜 투병의 결과였다. 흰색 리본이 달린 머리핀을 빼는 것도 잊고 집에 혼자 와서는, 오래전 할머니께 선물 받은 오르골을 한동안 바라봤다. 책꽂이 위에 몇 년간 전시되어 있는 바흐 오르골이었다. 먼지 쌓인 손잡이를 돌려 봤다. 선물 받은 게 먼 과거의 일인데도 오르골은 멀쩡히 작동했다. 빨리 돌려도 보고 천천히 돌려보기도 하다가 손을 멈췄다. 종소리 같던 나긋나긋한 소음이 갑자기 끊긴 후에는 갑갑한 적막만 흘렀다. 흠, 왠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울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마땅했다. 그때의 나는, 내 감정이 조금이나마 동요한 게 슬퍼야 한다는 보통의 관념 때문일 것이라고 믿었다. 삼일장의 모든 절차에도 별로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내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달랐다고 생각했다. 애매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애매하게 남은 이 감정은 오랜 투병의 결과라고.


입관할 때의 기억이 그나마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 기억에 입관식에서 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상황과 감정이 섞여있었으리라. 억지로 설움을 삼켰을 수도, 실감이 안 났을 수도, 그저 먹먹한 느낌, 그저 그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때의 내가 느꼈던, 마치 꿈속에서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감정이 뭔지, 나는 지금까지도 알지 못했다. 2년이 다 돼가는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일까. 이 년 전의 내가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법을 알았더라면 여태껏 고민하지 않았을까.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간 뒤로 내 정신병은 말 그대로 피크를 찍었고, 나는 내가 괴로운 상태인지 즐거운 상태인지도 모르는 채로 호탕하게 웃어대며 친구들 앞에서 死ね-!(죽어!)를 외쳤더랬지. 괴상한 발언도 서슴지 않고 방언 터지듯 술술 쏟아냈고. 덕분에 死ね(죽어)라는 말은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일본어가 되었다.(한국어도, 중국어도, 영어도 아닌 일본어인 이유는, 신세이 카맛테쨩, 「Sunset Piano」라는 노래에 ‘死ね’라고 소리치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친구들이 나를 떠나지 않은 것에 아직까지 감사하다. 우울증 환자는 괜찮고(아마도), 정신병자는 금기시되던 세상에서 함께 정신병자가 되기를 자처해 준 아주 고마운 친구들. (안궁안물인 정신병 일대기를 주저리주저리 써댄 건,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던 중학교 3학년 시절에도 내 정신병이 ‘원래부터’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의도였다.)


그렇지만 나의 엄마와 아빠는 내가 친할머니의 장례식(혹은 입관식)을 겪은 뒤로부터 우울증이 심해졌다고 믿었다. 엄마는 멋대로 생각한 내 우울증을 외할머니에게 말했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꾸짖었다. 여리고, 하늘하늘한 청소년인 나를 입관식에 데려갔다는 이유였다. 나의 상태와 의견은 철저히 배제한 채, 모두가 나를 단정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하마터면 내가 나 자신이 단정 지어진 상황을 몰랐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도, 외할머니, 엄마, 아빠 외에 다른 사람들까지 그 소문을 무작정 믿었을 것이며 지금까지 믿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나를 은밀하게 걱정하는 사람이 그들 외에 더 존재하리라는 사실도. 모든 것이 불쾌했다. 정체성의 한 구석이 남들의 손으로 마구 재단당한 것 같았다. 내가 엄청나게 둔해서 자신의 상태 및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그건 아주 불쾌한 일이었다. 내 우울을 세상에 까발리고 싶지 않았다. 무슨 비 맞는 길고양이 보듯 하는 눈빛이 싫었다. ‘비 맞은 고양이’도 아닌 ‘비 맞는 고양이’. 결국엔 모른 체 떠나버릴, ‘비 맞는 고양이’라는 점까지 말이다.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머릿속에서 세고 있자면,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는 평생 모를, 나도 몰랐던 내 비밀들. 요즘 들어서는 그런 비밀들이 내 귀까지 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다른 이들의 풍문을 망각하고 생활하고 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으니 없는 셈 치는 것이다. 지금은 동네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집에 가면 그 오르골 음악의 제목을 찾아볼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시절, 나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말 그대로 빠져 있었다. 주인공 신지, 레이, 아스카, 미사토의 웨하스 카드나 피규어 같은 것들을 사 모으고, 일본으로 교환 학생을 간 친구에게는 굿즈 대리 구매를 부탁할 정도였다. 그때의 나는 한참 인터넷에서 그로테스크한 영상들을 찾아보고 있었고, 그 영상들의 주된 주된 요소는 피가 나오고, 죽은 사람이 나오고, 사람이 사람을 패는 것들이었다. 오싹한 콘텐츠가 내 안의 폭력성과 우울을 해소시켜 주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은 내 마음에 쏙 들어오고야 말았다.


아무튼 간에, 갑자기 「에반게리온」의 덕후였던 내 과거를 한 문단 씩이나 작성한 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인 EOE, 그러니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 삽입된 곡 중 하나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였기 때문이다. 2호기와 양산형의 전투 씬에서 흐르는 음악이었다. 이 장면이라 하면, 아스카의 비명과 함께 내 인상에 깊이 남았었기에, 하루에 세 시간씩 귀에 꽂고 다니던 내 이어폰에서는 항상 「G선상의 아리아」 혹은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가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반복재생하던 음악 중 하나인 「G선상의 아리아」. 오르골의 손잡이를 스무 바퀴째 돌릴 때도 몰랐던. 스타벅스에서 집으로 돌아와 오르골 박스에 적힌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음악의 제목. 그건 분명 「G선상의 아리아」였다. 질리도록 들었건만 나는 왜 몰랐을까? 그 오르골의 높낮이는 대체 왜 낯설게 느껴진 걸까?


나는 바흐를 들으며 이 글을 썼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그들의 추측을 단순한 억측으로만 정의해야 할까,하는 의문이 살짝 들었다. 나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한 걸 감지하는 타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G선상의 아리아」가 끝나자 갑자기 이어폰에서는 관련도 없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가 나왔다. 분명 반복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바흐를 틀지는 않았다. 그냥, 나오는 탱고를 계속 듣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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