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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헤이그 이야기

by Kim Nayo

바람의 나라


“얘들아, X 조심해라!”

네덜란드에 처음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껑충껑충 우리는 처음 땅바닥만을 보며 다녔다.

우리가 묵은 헤이그의 스헤베닝겐 쪽은 동물들의 배설이 허가가 된 구역인지라 온 거리가 분뇨 투성이었다.

이곳은 애완동물에 대한 세금이 따로 추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욱이 바닷가라 새들이 뿌리고 다니는 하얀 자국들까지 아주 온 곳에 선명했다.

이곳 개들의 몸집들이 큰 만큼 그 크기도 상당한 데다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있어 그 무더기로 쌓인 분뇨에 난 처음 기겁을 할 지경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재밌어라, 킬킬거렸는데 그것도 일주일쯤 지나고 보니 전혀 신경 쓰이거나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숙소 코앞이 바닷가라서 모래 놀이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가기엔 좋았을 법한데 날씨가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다.

2월 말의 바닷가는 사정없이 매서운 바람으로 경치를 느긋이 누닐 여유마저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하면 일반적으로 나막신에 네덜란드 의상을 차려 입은 귀여운 소녀의 모습과 튤립, 풍차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게는 '하멜의 나라',‘거스 히딩크’의 고향으로 더욱 가까워진 나라이기도하고.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네덜란드는 우리가 만들었다.”

이 말은 네덜란드인이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든 것을 말해 준다.

네덜란드는 25% 이상의 땅이 바다보다 낮다.

또한 무섭도록 강한 바람을 이용, 수천 개의 풍차를 만들어 무공해 공장을 만들어 낸 자연에 맞선 개척자.

이것이 우리가 아는 네덜란드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네덜란드라고 하면 강한 바람과 자전거를 떠올리게 된다.

어느 곳이나 잘 되어 있는 자전거 길, 어떤 날씨에든 자전거를 개의치 않고 타고 다니는 이들에게 가장 큰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혀 자전거를 탈 줄 모르던 내가 이곳에 와 자전거를 배우며 이 나라의 건강함을 새삼 느끼며 감탄했고 차고 세찬 바람은 이들에게 역경이기보다는 시원하고 힘(풍력)을 주는 고마움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또한 산 없는 평지에 바다가 가까운 터라 변화무쌍한 날씨와 강한 비바람은 정말 자연의 다채로움을 보여 주며 넓은 하늘의 형형색색의 구름은 시적 감상을 띄워 준다.

헤이그는 특히 숲과 공원이 많은 도시이기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산림욕의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곳곳에 많은 운하와 또 불필요 해 보이는 인공 연못 따위를 만든 까닭은 뭔가 하고 의아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늘 가까이 물새며 오리, 백조가 와서 노니는 것을 보며 '아, 바로 저거구나',라고 다시 또 감탄을 했다.

자연 친화.

또한 네덜란드에서 가장 흔하게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꽃집이다.

여기저기 작은 꽃집에서 끊임없이 피워내는 그 싱싱하고 사랑스러운 꽃들을 볼 때마다 나 역시 싱싱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곤란할 것 같은 언어 문제에 있어서도 국제무역 국가답게 대부분 국민들이 3,4개 국어에 능통한지라 영어가 어디서든 통한다.

단지 의아한 것은 아이들에게 영어책이나 장난감을 사주려고 하면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도 간단한 회화가 될 정도로 영어 실력이 높은 나라인데 대부분 상품을 봐도 아이들 장난감에도 영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모든 장난감은 더치어로 번역되고 녹음되어 있으며 영어 서적 등은 따로 영어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타고난 어학능력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 경우 사방에서 영어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영한 번역이나 영문 신문, 영어 교재 등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소위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간단한 영어회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사실은 뭘까?

이곳 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당연히 그에 따른 자습서니 문제집이니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지만 이들의 언어 실력은 우리보다 더 뛰어나다.

학부모에게는 끊임없이 다음 학습에 대한 계획, 모임 등의 페이퍼가 오고 매일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폴더에는 담임과의 커뮤니케이션 북이 들어 있다.

금요일마다 책 한 권씩을 빌려 오며 숙제의 과중함도 없다.

나는 조기 교육으로 몸달은 엄마가 되지 못해 따로 영어 공부 등을 시키지 않았다.

영어가 처음인 만 4세의 우리 막내 아이 같은 경우, 알파벳을 전혀 모르고 학교를 들어갔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1년 정도이면 어느 정도 자기표현을 충분히 할 줄 아는 실력이 된다고 들었다.

만 5세의 딸아이 역시 알파벳과 영단어 몇 개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1학년 입학 후 8개월이 된 지금 간단한 단어의 영어책은 혼자서 읽고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외워서 쓸 줄 안다.

이것은 암기식이 아닌 체계적인 반복 학습과 충분한 이해 속에서 얻어지는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아이들은 만 4세부터 수영을 기본적으로 배우게 되어 있다.

수영은 자기 생명과도 관련된 기초 체력이기에.

초등학교 졸업 때는 모두 수영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곳 지도를 펼쳐 보면 동네 곳곳에 공원, 스포츠 센터와 도서관, 박물관들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은 것은 미래를 키우는 선진국의 큰 자랑이 아닐지.

또한 감사하고 싶은 것은 오자마자 같은 공관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과 정보를 받기도 했었지만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 바로 앞 집의 독일인 노부부가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것이다.

외국인을 대함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이들의 영어 실력에 늘 감탄할 밖에.

이곳 네덜란드 헤이그는 세 번째 발령지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내가 또 어떤 것을 배우고 즐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여유로움이 이제는 있음을 느낀다.

남의 나라에서 살다 보면 물론 불편한 것도 답답한 일도 많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내 삶에 충실하고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배울 것이 있고 많이 본만큼 느낄 것도 많다는 것이다.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두 번째 필리핀 마닐라 발령에서도 좋은 분들을 만났기에 지금도 그때의 인연에 감사하고 있는 중이다.

타지에 와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기에 이곳 부인들의 배려로 함께 마켓도 가고 점심도 함께 하는 것이 참 고맙다.

남편의 직장 관계로 만나게 되는 부인들......

평범한 이웃도 아니요, 친구도 아닌 상하의 관계이라 가끔은 힘든 상대가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는 인복이라 해야 할까 첫 부임지부터 좋은 분들과의 인연으로 감사하고 있다.

좋은 만남이란 소중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많이 베풀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네덜란드인들이 짠 구두쇠이며 이익에 대해서라면 지독하다는 기존의 평가는 내게 무용지물이다.

이제껏 내가 만난 네덜란드인들은 대부분 상냥하고 늘 이웃에게 미소로 인사하는, 또한 외국어에 능통한 멋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어떻더라, 가 아니라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는 그것이 더 신경 쓰이게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항상 일본인이냐고 질문을 받았었다.

하지만 어느덧 어디를 가든 한국인이냐는 소리와 함께 안녕하세요.라는 한국 인사를 쉽게 들을 수가 있어졌다.

내가 해외살이를 해보니 외국인으로서 받는 서운함이나 부당함이 느껴지면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의 입장은 어떨까, 하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돌려 생각해 보게도 되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해외에 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나는 실감한다.

외교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이웃과 잘 지내고 그 나라의 법을 잘 따르며 한국인이라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야말로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지만 아주 큰 외교라고 생각한다.

네덜란드에서의 남은 생활을 어떻게 지내느냐는 모두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이 나라의 단점만을 불평할 것인지, 아니면 나를 발전시킬 배움을 받아들일지는.

이곳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한가로이 노니는 소와 말, 양, 깔끔하고 예쁘게 관리된 밭, 빨간 벽돌의 뾰족 지붕 농가, 촘촘히 바람이 역할을 해 주는 정렬된 나무는 한 폭의 그림이다.

간혹 다니는 도시마다 잘 보존된 풍차도 볼 수 있지만 고속도로에서는 하얀 풍력 빈더 (전기 풍차)를 더 많이 보게 된다.

바람아, 바람아.

거대한 풍차를 돌리는 강함과 동시에 건강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자의 땀을 시원하게 닦아내는 상냥한 바람아.

바로 우리 한국을 또한 제대로 알리게 전 세계로 대한민국 바람을 세차게 불게 해다오.

어디서 시작되는지 처음엔 작고 약해서 모르지만 강하게 불어오는 그 힘은 그 누구 못지않게 굳건하고 확실하다고.

대한민국 바람을 좀 더 강하게 강하게 일으켜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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