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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과 멋

네덜란드 헤이그 이야기

by Kim Nayo Feb 27. 2025


나는 오른 손목에 고질적인 통증이 있은지 벌써 6년 가까이되었다 .

미국에서 테니스를 치다가, 혹은 무거운 것을 잘못 들었던가.....

여하튼 나도 모르게 손목에 큰 혹이 생기더니 힘만 주면 상당한 통증이 있다.

미국 의사는 수술을 해 주겠지만 혹이 다시 생기는 것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없단다.

아이도 가진 상태이고 다시 재발한다는데 왜 수술을?

손목대를 차고 살며 거의 쓰지 않자 혹은 사라졌고 나는 중증 왕비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

아이를 낳는 순간에도 -나는 하반신 마취를 한 덕에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손목이 아파요!"라고 소동을 피웠으니...(오른팔에 혈압계를 끼워놔서 손목이 무지 저렸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다음 발령 난 필리핀에서는 인건비가 싼 덕을 톡톡히 봐서 정말 왕비 같은 생활이 가능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도 전동 칫솔로 닦아야 할 정도였다.

역시 오른 손목이어서 가끔 느끼는 통증을 수반하며 살아야 했으니....

마침 어느 분이 심하게 허리를 다치시는 바람에 덩달아 함께 한국 한의사를 소개받았고 소위 대침이란 걸 7번 맞았었다.

첨엔 죽을 것 같이 아프더니 점차 통증을 견딜만했다.

침을 뽑은 자리에서 피가 나왔는데 고인 어혈이 나오는 거라고 했다. 단 7번의 대침 후 더이상 올 필요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나눈 완쾌는 안된듯해서 미련이 남아

그 후로도 중국 전기 침집을 상당히 오래 다녔였다.

침 탓일까?

그런대로 손목이 많이 나아져서 보통 칫솔질을 할 수도 있었고 2년 간 서울에서 살림살이를 그럭저럭 해냈다.

정말 서울로 이삿짐을 받으면서 나는 극도로 몸이 안 좋았었다.

필리핀에서 둘째를 낳으면서 찬 에어컨바람에 몸조리가 잘못된 탓도 있었고......

(지금 내 병 자랑?)

이번에 네덜란드로 발령을 받고 이삿짐을 받으면서 상당히 몸조심을 했고 나름대로 몸 추스리기에 신경을 썼었다.

여기도 필리핀인을 도우미로 쓸 수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는데 속도 모르는 남들은

"어머, 남편 사랑이 지극하시네요. 다들 혼자 짐을 푸는데 사람을 쓰다뇨?"

다행히 공기 좋고 먹거리 좋은 이곳에서 나는 피부도 좀 더 탱탱(?)해지고 회춘했다는 남편의 농담도 듣는다.여기서 의아한 것은 대부분 모든 아줌마들의 의견은 여기 물이 석회질이 섞여 피부가 망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림질용 물을 따로 사서 써야 하는데 일반 수돗물을 받아 쓰면 석회분이 쌓여 다리미가 고장 난 다고.

실제 여기는 대부분 물을 사서 먹는다.

SPA라는 일반물(파란 병)과, 탄산수(옅은 녹색병), 레몬첨가물(노랑, 빨강병)....

그렇다.

뭐 내 피부는 이제 고작 여기 3달 차짜리니까.

나의 성공작이자 불후의 명작.

쳐다만 봐도 피곤한 극성의 두 아이들을 데리고 있자니 드디어 손목이 시큰시큰......

나는 중국 침집을 이미 눈여겨보아 두었고 헤이그의 센트럼(다운타운) 스푼이 근처로 중국 침집이 이곳저곳 많은 것에 놀랬다.

일단 소개받은 침집에 예약을 하고 갔는데 의외로 너무 깨끗~

60대의 늙은 할머니 의사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비서가 통역을 해야만 했다.

필리핀에서 다니던 중국의사와 마찬가지로 이 할머니도 똑같은 전기 침술을 쓰고 있었다.

병은 소문내라고 했던가.

Zoetermeer라는 지역에 축구스타 송병국을 치료했다,라는 한의사에게 가보라고 권유를 받아 찾아뵙게 되었다.

사실은 남편이 다쳐서 먼저 찾게 된 것이지만.

중국에서 라이센스를 받았다는 한국 여의사 Ms.Lee.

이 분은 곧 개원을 할 예정인데 이미 1층에 웬만한 한의원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Ms.Lee는 단순한 침뿐만 아니라 부황, 주열법, 테이프 요법, 체질침 등으로 치료를 하시는데 전기 침술은 옛것이라 이제는 쓰지 않는다고.

원래 한의학에 관심이 많던 나는 끊임없이 나의 온갖 병치레 증세와 여러 궁금증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그 치료법을 배우고 싶다며 의중을 밝혔다.

남편의 치료가 끝난 후 2층 거실로 초대되어 차를 대접받았는데 물론 1층에서도 느꼈었지만 계단을 올라선 순간, 아! 하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목에 핀 매화꽃의 한국화며 병풍, 도자기, 차기구, 난꽃들...

마치 한국 고가구점을 방불게하는 많은 고급 고가구들을 보며 나는 참으로 감동을 받았다.

해외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 것을 대하면 왜 그리 반가운지!

공관 생활을 하면서 대사관 식구 집들을 방문해 보면 몇 분은 분명 한국 가구를 가지고 계신다.

나도 참으로 그것이 좋아 보여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가구를 몇 점 장만했고 한국화만을 걸어 두고 있는데-이번 네덜란드로 와서 얼마나 잘했던가 싶은지.

외국인을 초대했을 때 우리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자부심을 갖게 된다.

달짝지근한 향의 쑥차를 대접하면서 Ms.Lee는 조심스럽게 대사관에서, 또 외교관 부인들이 좀 더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널리 알려 주기를 바란다고 넌지시 충고를 하셨다. 한국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한국가구며 한국화, 도자기 등 한국 전통 물품을 구비해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맞는 말씀이고 또한 그것이 옳지만 남편의 너무 솔직한 대답.

"돈이 없습니다."

새삼 한국 고가구와 웬만한 한국화, 도자기 등등을 제법 갖추려면 정말 큰 목돈이 드는 것이 분명한 사실.

애당초 한국가구로 장만한 살림살이라든가 한국화 쪽으로 관련이 있다든가 평소 관심 분야가 전통문화 쪽이 아닌 담에야....

또한 각기 자기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집 안 분위기를 무조건 한국화해라, 강요할 수도 없고.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공무원 월급으로, 또 이사 다니면서 드는 정착비 등 다른 직업과 달리 씀씀이가 크게 나가는 생활 사정.

종종 우리 부부가 진지하게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외교관들은 좀 돈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다.

타향살이가 그리 간단하고 쉽지만은 않다.

화려하고 멋져 보일 망정 그 뒤편에는 분명 다른 애환이 있는 것이다.

글쎄, 사람마다 그 가치관이 다르니 꼭 돈이 있어 그걸 내보여야 외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먼저라는 점도 인정을 해야 한다.

꼭 대사관 쪽이 아니더라도 많은 주재원 가족들이 외국인과 친하게 지내며 한국을 많이 알리며 우리 음식이나 의복 등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또한 그간 많은 외교관 부인들이 나름대로 한국을 소개하는데 애썼고 전혀 손색없었음을 들은 바 있어 한국의 위상에 이상 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먼저 우리 음식으로, 우리 한복으로 한국을 자랑하는데 솔직히 그 외 한국 고가구라든가, 차도, 한국화 같은 것은 사실 아주 애매하다.

중국, 일본과 비슷하므로 선명하게 각인해 주기 어려운 것이다.-아마 내 부족한 지식 탓인 듯-

이제는 한국의 의료와 그 의료기 또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큰데 나는 이번에 Ms.Lee를 만난 계기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그분께 한의술을 조금이나마 얻어 배워 그 의료를 알리는데 써 볼까 한다.

나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또 더 나아가 해외살이에서 혹시 남에게 봉사하는 기회로 한국의 맛을 피부로 느끼게 해 보련다.

내게서 볼 수 있는 한국의 맛과 멋은 '건강한 삶'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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