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이야기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것 .
요즘 세태로는 공부 잘하기 ?
결국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이겠지 .
'건강한 체력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건강 속에서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 주는 게 먼저이다.
나의 미취학 딸과 아들 .
낯선 외국 땅에 와서 인터내셔널 스쿨을 다니니 가장 급한 건 영어가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나는 영어 레슨을 시키지도 내가 붙들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무성의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아이가 필요함과 절실함을 느낀다면 스스로 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든, 더치어를 배울 것이고 (우리 애들은 더치 인터내셔널을 다니기 때문에 일주일에 3번 더치어도 배운다) 공부는 결국 자기 몫이라고 생각된다.
큰 딸아이는 워낙 책에 관심이 많아 한글도 스스로 익히더니 친구랑 재미있게 놀 요량으로 영어에 흥미를 느껴 알파벳만 겨우 알고 오자마자 바로 1학년으로 입학했어도 큰 문제없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한데 도착 후 6개월 뒤 만 4세로 유치부 reception에 들어간 아들은 1년이 지나도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했고 영어 자체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서 말썽이 일어날 때마다 전혀 말을 못 하는 덕에 툭하면 모든 누명을 쓰기가 일쑤였고 또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를 당하는 일이 생기다 보니 난폭한 행동으로 한두 번 주의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학부모 면담이 수차례 생겼고 하교 때마다 오늘은 무슨 말썽을 피웠을까 하는 염려로 아주 골머리스러웠다.
그러니 대부분의 과제나 발표 등에서 늘 제외 됐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드디어 영어 과외를 받아 볼까 하는 갈등이 생겼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잘해나가는 딸아이를 보며 또 주저하다 1학년으로 올라갔는데 다행히 이해심 많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 예전처럼 친구들 간의 싸움이 적어졌고 아들 혼자 잘못했다는 누명은 더 이상 없어졌다.
나중 학부모 면담 때 선생님이 “개도 아무 일 당하지 않았는데 남을 물어뜯지는 않는다.”라며 아들의 편에 서 주어 무척 고마웠다.
그러나 두세 달이 지나자 선생님이 아이가 전혀 레벨과 맞질 않아 수업을 할 수 없다며 개인 교습을 시켜 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한데 학교에서 받는 그 개인 교습이 방과 후가 아니라 수업 중에 혼자 받는 것이라 돈은 돈대로 따로 지불하고 학교 수업은 받질 못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우리는 그저 방과 후의 개인 교습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애를 붙잡고 영어 공부라는 것을 시켜 보려니 세상에 알파벳도 제대로 못 외우고 있었다.
지난 1년간 reception을 알파벳조차 못 배우고 그냥 놀러 다닌 셈인 것이다.
그렇지만 서두르지 않고 학교에서 1주일마다 바꿔 주는 얇은 영어책을 위주로 읽기를 시키다 보니 처음에는 울며 공부하던 아이가 2달 만에 웃으며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영어에 자신감이 붙어 이제는 제법 질문도 잘하고 말도 제법 한다.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 볼 때 오자마자 아이들을 영어 공부로 닦달하지 않고 그저 놀리고 놔두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아이들 나름대로 처음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컸겠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시간이 해결하도록 스스로가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옳았다고 본다.
물론 우리가 대부분의 주재 자녀들이 다니는 브리티쉬나 아메리칸 스쿨이 아닌 헤이그의 인터내셔널 스쿨에 유일하게 다니는 한국인이라 다른 한국 아이들과의 비교나 경쟁이 없다는 이점도 조금은 인정해야겠다.
학교마다 특색이 있어 브리티쉬는 한국엄마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공부를 시키는 강도가 가장 센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들은 엄마와 더불어 스트레스가 굉장하며 영어 과외는 필수로 들었다.
그래서 브리티쉬 선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은 한국 엄마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 따로 영어 과외를 브리티쉬 선생에게 1시간에 50유로(6만 원)나 주며 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들에게 봉투는 아니더라도 가장 센 선물을 자주 안기는 것도 한국엄마들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학비가 가장 엄청난 아메리칸 스쿨은 3학년정도까지는 제법 놀려두는 편이지만 이곳 바세나르(헤이그 바로 옆동네)의 아메리칸 스쿨은 유럽 전체 중 가장 인정받은 스쿨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곳의 학생들도 대부분 한국 엄마들의 소개소개로 브리티쉬 스쿨선생에게 과외를 받는다.
이렇게 아이들 공부에 열정적인 엄마들 틈에 끼이지 못한 나.
어쩌면 나도 한국의 일반적인 부모들 교육열에 휩쓸려 욕심스러운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적어도 이곳에 와서 나 역시 스트레스 없이 그저 아이들 놀리기에 방관했던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물론 아이들만이 아닌 나 역시 타향에서 생활이 그저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물품(주로 따로 주어진 외국어로는 벨기에어나 불어가 대부분이다) 속에서 손해 보는 것도 많고 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당황스러운 일도 적지 않으며 억울한 경우도 종종 당했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들어 난처했던 일도 자주 있는 상황.
하지만 바디랭귀지나 강렬한 눈빛으로 사정을 구하는 법도 다 대처가 되니 뭐 타향살이 설움이라고 따로 못 박아 둘 건 따로 없지 않을까.
이렇게 아이가 어렸을 때 안이하게 편히 살아보는 것도 내 사는 방식이거니 하며 유유자적을 떨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저 건강하고 무사한 하루를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임은 분명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