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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의 탄생 바로 직전.

-본업모먼트

by noodle

2023년 겨울,

책방의 오픈을 눈앞에 둔 그때에, 나는 18년차 직장인이었습니다.

2006년 겨울에 지금의 직장에 입사한 이레로, 다른 어떤 일도 해본 적이 없었지요.


사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꿈. 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9살 무렵 내 인생 처음으로 가지게 된 꿈은, 글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책이 좋았고, 원고지가 좋았고, 외부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 교장 선생님 앞에서 상을 받을 수 있어 으쓱했습니다.

열살 즈음, 나는 우연히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알게되었습니다. 카피라이터라는 단어가 어린 마음에 굉장히 근사해보였고,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부터 나의 꿈은 한결같이 광고쟁이였고, 그 중에서도 광고의 꽃이라는 광고기획자, AE가 되고싶어졌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내 생각을 전달하고 표현하고, 내 손으로 형체가 없던 그것들을 눈에 보이는 실체로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사람.


대학교 3학년, 현실적인 고민을 하며 휴학을 했던 그 시기에, 나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광고를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다시 복직을 하고 싶은 나에게 광고업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다는 다분히 낭만적이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그렇다고 나인투식스의 직장 생활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철없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재미있는 일이 하고싶었습니다. 내 하루가 매일매일 새로웠으면 했습니다.

이제 20년을 함께 한 나의 소중한 본업입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지게 된 나의 직장은 항공사였습니다.

나는 제법 이 일이 좋았어요. 사람을 대하는 것도 적성에 잘 맞았고,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고 난 후의 짜릿한 보상이 격하게 행복했습니다. 이 일은, 나에게 돈을 주면서, 동시에 나를 전세계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주었으니까요.

나는 매일매일 낯선 땅에서, 벅차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8년 동안 내내 아무것도 창조하지 못한다는 좌절과 절망이 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에 열병을 앓았던 내 사랑의 상대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남자였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그를 둘러싼 환경을 사랑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늘 상상 이상으로 바빠 나를 줄곧 외롭게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창작물에 애정을 담고 그것을 함께한 동료들과 진하게 공유하는 모습에 나는 몹시도 질투가 났습니다. 그건, 내가 상상했던 꿈 같아 보였어요. 광고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울고, 웃고 또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비행에는 그런 재미가, 그 한조각이 정말이지 치명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나는 조직 안에서 나의 색깔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회사가 원하는 모습 안에 나를 몰래 숨겨두어야 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사실 숨긴다고 숨겨지는게 아닌지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며 비행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 시절 그 거대한 규칙과 틀은 나를 몹시 숨막히게 했던 것 같습니다.


2023년 11월, 그해의 겨울에

18년간 비행만 해왔던 나에게 낯설고도 뿌듯한 새로운 이름이 생겼습니다.

책방지기라는.

이제 내 손으로 만들어 내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도 진짜로 생긴겁니다. 마음껏 내 스타일로 꾸미고, 내 손님을 반기고, 반짝반짝한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손님들과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게다가 이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까지 생긴 거지요. 이제 내 꿈을 마음껏 펼쳐도 될까요?

직장 생활 18년차, 그리고 초보 책방지기, 그 겨울 나는 하고싶은게 너무나 많아 가슴이 부풀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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