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네가 주황빛으로 물들면

by 주홍빛옥상

세상 만물은 고유의 빛깔과 색채를 지닌다.

수많은 빛깔 중,
저마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색이 있다.
우리는 그런 색을 통해 때때로 위안을 얻으며,
각자의 시간을 나름의 속도로 지나고 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고운 빛깔 중에 위안을 느끼는 단 하나의 색을 꼽으라면 내게는 단연 주황빛이 그러하다.

'주황빛'에 대해 생각하다 언 20년을 거슬러 그 시절에 이르렀다.
20대 초반의 나는 무턱대고 뉴질랜드로 떠난 적이 있다.

준비도 겁도 없이 떠난 그 시절의 선택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또한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낯선 땅에서 플랫 하나를 구해 살았던 그 시절,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었지만
저녁이 되어 천장 한가운데 달린 등불 하나가 방 안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면
부유하던 마음은 이내 가라앉아 고요해지곤 했다.
그 불빛 아래 마트에서 사 온 간식을 먹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황빛을 사랑하게 된 건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지금도 조명빛을 고를 때, 전구색과 노란빛이 감도는 주백색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






해질 무렵이면 파란 하늘의 흰구름이 차차 주황빛으로 물드는,
그 찰나의 시간에 달라지는 하늘빛에 나는 늘 감동한다.

십여 년 전부터 옥상이 있는 주택에서 살게 된 이후,
해 질 녘 옥상에 올라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는 일은 내게 소소하지만 분명한 기쁨이다.

일곱 해 전, 유기견으로 만나 가족이 된 반려견 나무와 함께 오르는 옥상은
이제 개와 나, 모두에게 치유의 공간이자 시간이 되었다.

저녁빛 아래에서 나무의 갈색 털이 노을빛에 물들어 갈 때면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는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잔잔한 행복이 마음에 내려앉는다.





서쪽으로 난 부엌창은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구지만,
해지는 노을빛이 그 창으로 스며들어 집안 깊숙이 주황빛으로 물들이면
나는 그 빛에 하루의 고단함을 잊곤 한다.

집 안에서, 옥상 위에서, 거리와 공원에서,
아이의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도,
낯선 여행지와 그곳을 떠나 돌아오는 이동수단의 창밖에서도
해 질 녘의 하늘빛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벅참과 함께 고요가 찾아온다.

그것은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안도감이기도 하고,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빛 아래에서
친밀한 공간과 사람은 물론
낯선 장소와 거리, 낯선 이들까지
모두가 저무는 노을빛처럼 아름다운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유대감이기도 하다.



하늘과 네가 주황빛으로 물들면
나는 더 고운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게 된다.

그 빛처럼 따듯한 시선이
너와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가 모두 같은 하늘, 같은 빛 아래에서
하루가 무탈히 지나기만 해도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마주하는 빛과 색으로 위안을 얻으며
우리는 각자의 걸음으로, 각자의 속도로
오늘을 건너갈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빛이 깃들어 있을까.

그 빛으로 다시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도

옥상에 올랐습니다.

하늘이 붉어져 가고

그 노을빛에 반려견 이나무와,

길 위의 모든 것이 주황빛을 받아 더욱 고운 시간입니다.


이 순간은 매일 찾아옵니다.

이렇게 변치않는 위로를 안겨주는 순간이 모두에게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