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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라리와 밀레 밀리아

밀레 밀리아

by 자칼 황욱익 Feb 24. 2025



클래식 랠리의 대표 주자이자 럭셔리 GT의 기원으로 불리는 밀레 밀리아는 1927년 시작됐습니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를 출발해 로마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브레시아로 돌아오는 1,600km에 이르는 대장정 입니다.

밀레 밀리아 뜻 자체가 1000 마일 이라는 뜻이기도 하구요.


현재 밀레 밀리아는 이탈리아 오리지날을 비롯해 미국의 밀레 밀리아 익스피언스 플로리다, 일본의 밀레 밀리아 라 페스타, 아랍에미리트의 밀레 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가 공식적인 프렌차이즈고 2024년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밀레 밀리아 익스피리언스 차이나가 추가되었습니다.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만 저는 밀레 밀리아 익스피리언스 UAE 2023에 내비게이터로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완주를 했습니다.

나름 한국인 최초의 기록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제 기록은 밀레 밀리아를 비롯해 모터스포츠, 각종 스포츠 기록을 관리는 하는 이탈리아 기록 관리소에 국적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밀레 밀리아는 현대 클래식카 기준을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첫 경기가 열린 후 1957년 사고 이후 한 동안 중단 되었다가 경기 룰이 바뀌면서 1977년 다시 열리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 페라리의 배경인 1957년으로 돌아가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레이스는 정신줄을 놔야 출전할 수 있었죠.

사실 레이스에서 안전이 부각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즈음 입니다.

그전까지는 주먹구구식도 많았고, 극한의 경기 중에 당연히 사망사고도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 레이스는 목숨 걸고 하는 도박 같은 의미가 컸습니다.


안타깝게도 영화의 이미지는 저작권 때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점 양해해 주시고 중간중간에 제가 다녀온 밀레 밀리아와 페라리 사진으로 대체 할께요.


암튼 당시 페라리는 엄청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외에도 페라리에는 많은 악재가 겹친 시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페라리가 엄청난 마니아 층을 거느리고 럭셔리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당시 페라리는 마세라티에 치이고, 피아트에 치이고, 알파 로메오에 치이고, 란치아에 치이던 회사였죠.

영화에선ㄴ 마세라티와 페라리의 상황이 아주 극명하게 갈립니다.

오르시 패밀리가(당시 마세라티의 최대 투자자) 장 베라를 픽업하러 갈 때와 트랙에서는 란치아를 이용하는데 란치아는 그야말로 귀족의 차 입니다.

반면 엔초는 푸조 403을 타고 다니고 최고의 드라이버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는 마세라티와 달리 무언가 쫒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스털링 모스가 마세라티 팀으로 출전하고 나중에 리타이어하고, 마세라티의 에이스인 장 베라가 리타이어하면서  페라리 경주차를 얻어 타고 오는 모습을 보고 광분하는 오르시(마세라티는 당시 오르시 패밀리가 소유)의 모습은 약간의 개그 포인트.


워낙에 이탈리아가 역사나 헤리티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라 그래서 이제 설립한지 20년 남짓한 페라리는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와 겸상 조차도 힘들었죠.

더군다나 설립 초창기에 엔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와 계약에 묶여 있는 상태라 알파 로메오 2중대 쯤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엔초 페라리가 선택한 길은 로드카가 아닌 레이스였죠.

선택이라기 보다 엔초 페라리 자체가 알파 로메오 레이싱 팀의 드라이버이자 디렉터였기 때문에 애초에 로드카는 그닥 생각이 없었습니다.

로드카 시장은 이미 위에 있는 이탈리아 메이커들이 다 잡고 있으니 끼어들 자리가 없었죠.

그래서 레이스에 몰빵합니다.

평생 레이스만 하고 살겠다는 로망을 지닌 남자 그 자체였죠.


영화에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재규어가 우승 했다는 얘기를 듣고 엔초 페라리는

'재규어야 차를 팔려고 레이스를 하지만 우리는 레이스를 하기 위해 차를 파는 회사다'

정말 폼나는 얘기죠.

영화의 흐름 상 페라리의 첫 아들인 알프레도 페라리(디노)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엔초가 정말 아꼈고, 페라리의 레이싱 혈통을 이을 후계자였던 디노는 1956년 사망합니다.

디노는 초기 페라리의 레이싱카 개발에도 참여하면서 페라리의 초석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엔지니어였습니다.

원래부터 허약했던 디노는 근육이완종을 앓다 영화의 1년 전인 1956년 사망하는데 엔초는 디노가 태어난 후 레이스 드라이버를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디노는 포뮬러2용 1.5리터 V6 엔진을 개발했으며, V12가 아닌 소형 엔진에 대한 판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후 디노라는 브랜드는  당시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페라리의 브랜드로 정립이 되고, 피아트에 엔진을 공급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도 레이스 호몰로게이션을 맞추기 위해서였죠.

당시 페라리는 호몰로게이션을 맞출 수 있는 생산 시설이 없어 피아트가 그 부분을 대신하고 피아트는 페라리 엔진을 생산하면서 별도의 디노라는 차도 생산합니다.  


엔초 페라리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고집이 세고 괴팍하고 늘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페라리의 신차가 발표될 때 마다 실망한 마니아들은 '엔초가 무덤에서 뛰쳐 나오겠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엔초 페라리는 원래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끔찍히도 가족을 사랑했고, 괴팍하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정하고 젠틀한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엔초가 왜 두집 살림을 했는지 본처인 라우라와 왜 이혼을 하지 않았는지는 이런 면을 단편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엔초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남자답고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었죠.  


엔초를 완전히 바꿔 놓은 건 1956년 디노의 사망 이후 입니다.

이때부터 그는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항상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으며, 인터뷰나 외부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사무실에 틀어 박혀 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졌죠.

참고로 엔초는 평생 이탈리아(어떤 기록에서는 유럽)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이 어떻게 그려지냐 하면 두집 살림을 하지만 엔초는 아침 식사 전에는 본처가 있는 모데나로 돌아왔고, 후처와 살림을 차린 곳에서는 후처와 그의 아들(엔초의 아들인 피에로는 이후 페라리 성을 물려 받고 페라리의 경영에 참여 합니다)이 깰까봐 차를 밀어서 이동 시키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 엔초가 타고 다니는 차는 푸조 403입니다.

의외이긴 하지만 엔초는 생전에 페라리가 아닌 차들도 많이 탔습니다.

피닌파리나를 비롯해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담당한 차를 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피아트가 페라리를 인수한 후에는 피아트를 타기도 했구요.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밀레 밀리아를 앞두고 스칼리에티를 비롯한 전설적인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 레이서들이 함께 모여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엔초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드라이버인 알폰소 포르타고에게 스탭들을 소개합니다.

이건 진짜 페라리의 역사와 그들이 걸어온 길을 알고 있다면 눈물이 찔끔 흐를 만큼 감동적이고 임팩트가 강한 부분입니다.   

물론 이후에는 비극으로 이어지지만 전설들의 현역 시절 모습을 굉장히 잘 표현했고 이탈리아 특유(식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파산 위기에 피아트와 통화 하는 모습에서 '그때는 왜 도와주지 않았냐?'하는 반문은 깨알 같은 디테일 입니다.

엔초는 원래 피아트에 입사하고 싶어 지원서를 냈지만 입사를 못 했죠.

그래서 한동안은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1957년 밀레 밀리아에는 391대가 25개 클래스에 출전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일반도로를 달리는 밀레 밀리아는 차 한 대 당 드라이버와 내비게이터로 구성되는 게 기본이지만 드라이버의 역량에 따라 혼자 출전하기도 합니다.

경기 방식은 말 그대로 냅다 달려 가장 빨리 들어오는 팀이 우승하는 방식인데.....

일반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했고 1957년의 사고도 그런 이유로 발생합니다.

이후 1977년부터 밀레 밀리아는 TSD 방식으로 경기 룰이 바뀌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TSD 방식은 가장 빨리 들어오는 게 아닌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들오는 방식입니다.

자칼투어 큐슈GT와 같은 방식이죠.

제가 갔던 밀레 밀리아 UAE에도 내비게이터 없이 혼자 출전하는 팀이 몇몇 있었습니다.

밀레 밀리아는 전통적으로 알파 로메오가 최강자였습니다.

역대 밀레 밀리아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회사가 알파 로메오 입니다.

그래서 알파 로메오는 밀레 밀리아 출전에 프리패스라는 얘기도 했죠.

현대의 밀레 밀리아는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3개의 클래스로 운영됩니다.

1927년부터 1957년에 생산된 차 중에 밀레 밀리아 출전 기록이 있는 밀레 밀리아 클래스, 1958년부터 1975년까지 생산된 차 중에 밀레 밀리아 클래스와 혈통이 이어지는 차들이 출전하는 클래식 아이콘, 그리고 그 이후에 생산된 차 중에 특별 한정판이나 앞에 두 개 클래스와 혈통이 이어지는 차들이 출전하는 컴템포러리 아이콘 입니다.

저는 이중 알파 로메오 8C 컴페티치오네의 내비게이터로 컴템포러리 아이콘에 출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 페라리는 페라리 마케팅에 매우 중요하고 꺼리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라리를 사는 사람은 단순히 비싼 차를 사는 게 아니라 페라리가 가진 역사와 철학을 함께 사는 거니까요.

안타깝게도 국내 수입사는 이런 부분은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단순히 리스로 밀어내는 상품에 불과 하니까요.

만약 제가 FMK의 마케팅 담당이었다면 영화 페라리 하나 가지고 여러가지 마케팅 활동을 계획했을 것 같습니다.

일본만 해도 페라리의 개봉은 엄청난 화재였고 특별 해설집까지 만들 정도 였으니까요.

이건 제가 아끼는 후배한테 선물 받은 일본판 해설집인데 내용이 아주 끝내 줍니다.

이거만 봐도 영화를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죠.


영화에서 살짝 아쉬운 점은 엔초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의 분위기인데요 아마도 이탈리아계 배우가 했다면 더 맛깔스럽지 않았을까 합니다.

반면 엔초의 본처인 페넬로페 크루즈는 등장 자체가 포스 그 자체 입니다.

영어 발음이 어색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배경이 이탈리아인만큼 오히려 더 잘 어울립니다

마이클 만 감독이야 워낙에 연출이나 디테일에 꼼꼼한 사람이라 영상미나 주변 상황 묘사가 매우 뛰어 납니다.


만약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헐리우드 액션 제작자들이 만들었으면 눈요기는 충분하겠지만 몸으로 전해 오는 감정은 덜 하지 않았까 합니다.

막판에 레이싱 장면은 사운드가 압권입니다.

자세히 들으면 마세라티의 V8 엔진과 페라리의 V12 엔진의 사운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끝자락에 레이스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는데 이들의 평균 속력을 잘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나머지 자세한 오프라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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