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그림이나 예술품 거래는 이미 오래되었고 일반인들이 생각지도 못 한 물건의 거래도 상당히 빈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테크하면 부동산이나 증권 정도가 대중적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서는 자동차도 재테크 대상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이용한 재테크는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물론 고가의 클래식카나 희귀 모델 거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래 자체가 공론화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558억, 450억, 432억. 일반인들은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운 액수이다. 이 액수들은 최근 국제적인 클래식카 경매에 출품했던 자동차들의 낙찰 가격이다. 자동차를 몇 십억 혹은 몇 백억 씩 주고 구입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지나친 낭비’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재산으로 본다면 상당히 괜찮은 투자이다. 영국의 한 리서치 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클래식카의 투자 가치는 위스키, 주화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위스키나 주화, 귀금속에 비해 관리가 까다롭고 유지 보수에 전문 인력이 필요한 만큼 배후가치에 대한 부분까지 생각하면 그 금액은 그야말로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투자 가치가 높은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몇 백억짜리 수집품을 가지고 있을 정도면 소유자의 자산 규모는 물품 가격의 최소 50배에서 100배에 이른다.
유명 패션 브랜드인 폴로의 창업자인 랄프 로렌,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 닉 메이슨, 유명 토크쇼의 사회자 제이 레노 등의 공통점은 지독한 클래식카 애호가라는 점이다. 각 분야에서 성공을 인정받은 이들은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이들뿐이 아니다.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영국의 코미디언 로완 애킨스, 삼성전자 회장인 이건희,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등도 클래식카 시장에서 큰 손으로 통한다. 물론 이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클래식카를 이용해 재테크를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소유한 클래식카를 노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고 그 목적에 ‘투자’ 혹은 ‘재테크’ 부분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계적으로 고가의 클래식카 경매로 유명한 곳은 유럽과 캐나다의 RM 소더비와 영국의 본햄스, 아트큐리얼, 일본의 BH 옥션이 대표적이다. 이중 BH 옥션을 제외한 나머지 경매 회사에 자동차가 추가된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다. 그동안 미술품과 보석 등 고가의 물품을 다루던 경매 회사들이 자동차에 주목하면서 클래식카 시장의 규모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부호들을 위한 경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배럿 잭슨이나 지역 별로 열리는 클래식카 옥션은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가치 있는 차를 찾는 것이 우선
재테크로 클래식카를 선택하면 무엇보다 준비할 사항이 많다. 앞에서 설명했듯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가 유지 보수와 보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움직이고 겉모습만 갖춰졌다고 재테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출고된 당시의 모습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느냐가 값어치를 책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랄프 로렌의 부가티나 닉 메이슨의 페라리 250 GTO가 몇 백억의 가치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모터스포츠에서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모델도 그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다. 차를 소유했던 사람들의 스토리도(주로 유명인) 중요하고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같은 모델이라도 값어치는 천차만별이 된다. 비교적 대중적인 모델이라고 해도 유명인물이 소유했던 차도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다.
해외에는 클래식카 전문 감정사가 자동차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근거를 제시한다. 이들은 차체 시리얼 번호부터 오리지널 부품의 부품 번호, 제조사, 출고 당시 사양, 소유 이력, 복원과 사고 이력 등을 꼼꼼하게 조사해 값어치를 책정한다. 대규모 경매의 경우 차 한 대당 몇 십억 혹은 몇 백억을 호가하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이들의 지식수준도 상당히 높다. 아직 국내에는 생소하지만(중고차 딜러와는 다른 영역이다) 클래식카 시장이 커지면 각광받을 수 있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아직 국내에서 재테크를 포함한 전문적인 클래식카 경매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돈 되는 차’에 대한 시세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가장 좋은 예가 마지막 공랭식 엔진을 탑재한 포르쉐 911(993)인데 일부 모델은 1990년대 출시했던 가격 이상으로(1억 이상) 거래된다. 비교적 개체수가 많은 올드 BMW 모델들도 국내에서는 인기가 높은 편이다. 1980년대 출시된 3시리즈(E30)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포르쉐 911(993)과 BMW 3시리즈(E30)의 공통점은 중고 거래가가 바닥을 친 후 몇 년 동안 계속 상승해 시세가 안정되었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차들에 비해 대우가 후한 이유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 이런 현상은 별로 좋은 방향은 아니다.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중고차가 가치 있는 가치 있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이다. 개체수가 적다는 이유로, 법률적인 이유로 원래의 가치는 무시된 채 국내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 된 사례가 많다. 실제로 E30 보디의 BMW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마니아들 사이의 시세) 가격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내 클래식카뿐 아니라 자동차 재테크 시장은 제대로 된 체계가 없어 여러 가지 문제점도 많다. 단순히 오래되고 상태를 알 수 없는 차들이 클래식카라는 이름으로 중고차 사이트에 올라오거나 개조차, 정체불명의 부품으로 점철된 차들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카가 아니더라도 오래된 차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은 한국의 실정 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타고 있는 차가 몇 년 후에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클래식카로써의 가치를 인정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겉모습만 같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생산량이 적다고 희소가치가 높은 것도 아니다. 차에 대한 가치와 의미는 차를 소유한 사람에게 중요할지 몰라도 객관화되기 힘들기 때문인데, 해외에서는 클래식카 전문 경매나 트레이드를 통해 이런 부분을 해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