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칼투어
일주일을 시작하는 분주한 월요일.
자칼투어 일행들은 새로운 곳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오늘 일정은 주행거리도 길고 볼거리가 많은 곳입니다.
복잡한 신주쿠를 떠나 남쪽으로 향한 우리의 오늘 첫 목적지는 시즈오카현에 있는 후지스피드웨이로 토요타가 운영하는 자동차 전용 서킷입니다.
이번 자칼투어는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그야말로 럭키인 상황이 많았습니다.
일본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모처럼 맑은 날의 후지산을 위에서 볼 수 있었고 오늘은 좀 더 가까이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후지스피드웨이 안에는 후지모터스포츠뮤지엄이 있는데 5개의 자동차 회사와 13개의 부품업체의 공동출자로 설립된 곳입니다.
주제가 모터스포츠인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주차를 볼 수 있으며,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로 구역이 나눠집니다.
이번 주제는 더 골든 에이지 오브 랠리였는데 역대 WRC를 주름잡던 랠리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전시에서 가장 귀한 차인 란치아 델타 S4입니다.
비운의 랠리카이자 실험적이었으나 비극으로 막을 내린 짧지만 강렬했던 란치아 델타 S4에 대한 내용은 '광기의 시대, 그룹 B를 아십니까?'(https://brunch.co.kr/@carpisode/16) 편을 참고해 주세요.
레이스 버전의 란치아 델타 S4는 앞으로도 볼 기회가 없을 만큼 희귀한 차입니다.
1972년 시작된 WRC는 피아트와 르노, 란치아가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란치아는 회사가 망해가는 줄도 모르고 랠리에 몰두했는데 저는 이탈리아 자동차 메이커의 이런 스피릿을 정말 좋아합니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레이스에서는 우승을 해야 한다는 거칠긴 하지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끝없이 도전하는 그들의 열정은 지금 자동차 메이커들에게는 보기 힘든 부분이죠.
반면 아우디는 제가 정말 안 좋아하는 자동차회사입니다.
아우디의 역사는 기술이 딸리다 보니 온갖 야로와 돈지랄에 연속이었으며, 로비를 통해 WRC에 사륜구동을 처음 도입한 사건에 르망까지 생각하면, 너무 거품이 많습니다.
기술개발보다 로비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룰을 도입하는 것에는 아우디를 따라올 회사가 없습니다.
물론 아우디 덕에 WRC에 사륜구동이 도입됐지만 사륜구동을 비교적 늦게 도입한 다른 회사들은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아우디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참고로 아우디 하면 상징처럼 따라다니는 스포츠 사륜구동(콰트로 시트템)은 아우디가 아닌 영국의 젠슨에서 1960대에 먼저 선보인 기술입니다.
대량생산은 아우디보다 일본의 스바루가 훨씬 먼저였습니다.
일본 메이커들이 르망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1990년대입니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자동차회사 중에 처음 르망에서 우승한 메이커가 마쓰다고, 최고 클래스는 아니지만 혼다와 토요타도 1990년대 클래스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르망이 포함된 WEC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 토요타입니다.
후지스피드웨이 메인 게이트 옆에는 후지모터스포츠포레스트가 있습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처음 레이스에 출전했던 경주차와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브랜드인 GR(가주 레이싱)이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운영하는 레이싱팀인 루키 레이싱의 캠프도 겸하고 있는데 운이 좋으면 경주차를 보관하는 피트를 볼 수 있습니다.
후지스피드웨이를 출발해 도쿄로 돌아오는 길에도 자칼투어의 일정은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국도를 이용했는데요 슬램덩크의 배경지인 에노시마와 가마쿠라를 거치는 해안도로를 타고 도쿄로 향했습니다.
슬램덩크의 성지라 불리는 가마쿠라 고등학교 앞의 건널목은 늘 사람이 많습니다.
가끔 에노덴이라 불리는 전철이 다니는데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위험까지 감수한다고 합니다.
에노시마에서 가마쿠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풍경이 정말 죽여준다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서퍼들의 천국이자 바닷가 반대편은 하와이, 남부 캘리포니아의 느낌이 가득합니다.
관광객도 많고 차도 많이 밀리지만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자동차에 미친 세 남자는 자동차를 구경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바닷가 식당에서 주문한 마구로 정식은 가격이 2,200엔입니다.
맛도 좋고, 참치도 매우 신선합니다.
자칼투어를 진행하다 보면 늘 밥집이 문제인데(일본은 4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생각보다 드물어요) 이런 기회를 통해 그 리스트를 하나 둘 늘려가고 있습니다.
가마쿠라에서 도쿄로 올라오는 길에는 미우라에 있는 리바이벌 미우라에 들렀습니다.
100년이 넘은 농가 창고를 카페로 꾸민 이곳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곳입니다.
음료 시켜 놓고 여기 않아서 하루 종일 책만 보고 싶습니다.
리바이벌 미우라의 사장인 유미 씨는 도쿄에서 미용사로 일하다 몇 년 전 고향인 이곳 미우라로 내려와 이곳을 열었습니다.
유미 씨 역시 클래식카 마니아로 현재는 트라이엄프의 스핏파이어를 타고 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창고를 매입해 직접 꾸몄는데 역시 센스가 대단합니다.
공간활용부터 소품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집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제대로 꾸몄구나'였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물건 몇 개 갖다 놓고 어울리지도 않는 빈티지를 운운하는 국내 자동차 카페와는 차원이 다르죠.
2층에 자리 잡고 놀다 보니 어두워졌습니다.
하루 종일 이동거리가 길었지만 마지막까지 바쁘고 버린 시간 없이 보냈습니다.
미우라에서 도쿄까지는 약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입니다.
도쿄 근교의 드라이브 코스도로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6박 7일간의 일정 중 6일이 끝났습니다.
매번 자칼투어를 진행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도 배우는 게 많고 여러 번 방문한 곳이지만 늘 새롭습니다.
거기다 함께 가는 분들도 매 번 다르니 서로가 느끼고 보는 관점이 다 다를 수밖에 없죠.
짧지 않을 것 같은 자칼투어의 일정도 이제는 하루가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