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1994년 BMW 그룹에 인수된 미니는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로버와 오스틴 시절의 미니는 시티카(소형차보다 작은) 세그먼트였지만 BMW가 인수한 후에는 B 세그먼트와 슈퍼미니 클래스에 해당된다.
해외에서는 BMW 인수 이전 미니를(2000년 단종된 Mk.7까지) 클래식 미니, 이후에 나온 미니를 BMW 미니라고 구분하는데 사실 이 두 차종의 연결고리는 전혀 없다. 덩치도 커지고 서민들의 발이자 친구였던 미니가 독일 자동차 회사의 손을 타면서 프리미엄 소형차가 되었다는 의미다.
BMW는 미니의 마케팅을 진행할 때는 항상 클래식 미니의 역사, 전통성, 운동성 등을 내세우지만 자동차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이런 내용이 진실과는 전혀 다른 것을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BMW는 자신들이 만든 미니를 홍보할 때 ‘작고 귀여운’ ‘고 카트(Go Kart) 필링’ ‘몬테카를로 랠리 우승의 DNA’ 같은 것들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런 홍보 문구가 과연 사실일까? 다른 건 취향 차이에서 오는 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한때 다양한 카트를 경험하면서 카트 레이서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미니가 왜 ‘고 카트(Go Kart) 필링’이 아닌 것에 대해 고찰해 보려고 한다.
후륜구동 VS 전륜 혹은 사륜구동
가장 큰 차이는 구동 방식이다. 카트는 어린아이들이 타는 주니어 사이즈부터 변속기가 달려있는 슈퍼 클래스까지 엔진이 운전자 뒤에 있고 뒷바퀴를 굴리는 후륜구동을 사용한다. 당연히 운동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며, 운전하는 감각 역시 다르다. 카트는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이고 미니는 앞에서 끌고 가는 느낌이다.
전혀 다른 섀시구조
미니는 현대적인 자동차 생산 방식인 모노코크 방식으로 제작된다. 철판을 이어 붙인 뼈대를(모노코크) 만들고 그 안에 엔진, 캐빈 등을 집어넣는다. 쉽게 설명해 일반적인 자동차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카트는 파이프로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운전석, 엔진, 조향 장치 등이 자리 잡는다. 모노코크와 파이프 프레임 구조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운동성은 파이프 프레임이 좋지만 생산 단가로 따지면 모노코크 구조가 훨씬 더 이익이다. 그래서 대량생산에는 모노코크 구조를 사용하고 파이프 프레임 구조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레이스) 차에 사용한다.
서스펜션의 유무
카트에는 일반 자동차와 달리 서스펜션이 없다. 자동차에서 서스펜션은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고 운동성을 결정하는 부품인데, 일반적으로 쇼크업쇼버(댐퍼), 스프링을 뜻하지만 넓게는 스테빌라이저와 각종 부시 종류까지 포함된다. 카트는 서스펜션 역할을 프레임과 타이어, 심지어는 운전자가 한다. 구조가 간단하고 노면의 반응이 매우 즉각적이다. 반면 미니의 노면 반응은 타이어와 휠을 거쳐, 암, 스프링, 쇼크업쇼버, 스프링, 자체 등등을 거쳐 운전자에게 전달된다. 과정도 복잡하고 그 과정에서 상쇄되고 걸러지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아무리 즉각적이라고 해도 카트에 비해 전달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더군다나 서스펜션 유무에 따른 운동성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앞 뒤 타이어 사이즈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즈도 차이가 있다. 카트는 구동을 담당하는 뒤 타이어가 조향을 담당하는 앞 타이어에 비해 접지면이 넓다. 보통 이런 세팅은 후륜구동 스포츠카나 F1 머신 같은 특수 목적을 위한 경주차에 쓰이는 방식이다.
반면 전륜구동 혹은 사륜구동을 사용하는 미니는 네 바퀴의 사이즈가 같다. 여기에 조향과 구동을 전륜이 모두 담당하는 만큼 무게 배분에서 오는 차체의 움직임이 절대 카트와 같거나 비슷한 느낌이 들 수 없는 구조다. 왜냐하면 그 태생과 목적,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카트는 오히려 포뮬러 머신에 가깝다.
조향비
조향비는 스티어링 휠(운전대)을 조작했을 때 타이어가 꺾이는 각도를 뜻한다. 미니는 일반적인 승용차의 조향비인 8:1 정도의 비율이다. 카트는 포뮬러 경주차와 같은 1:1이다. 쉽게 설명해 카트는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1cm 움직이면 조향축도 1cm가 움직이는 구조이며, 미니는 같은 1cm를 움직이려면 더 많이 스티어링 휠을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안전 때문에 승용차에서는 이런 구조를 채택하는데 달리는 것만 목적인 카트는 반대로 일반주행용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조향비가 달라지면 회전반경도 달라진다. 아무리 날카롭고 짧은 조향비를 가졌다고 해도 핸들링 자체가 1:1의 느낌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무게 중심 차이에서 오는 드라이브 필링
카트의 최저 지상고는 10cm가 채 되지 않는다. BMW 미니는 약 15cm 정도인데 운전석의 위치를 비교해 보면 카트는 거의 바닥에 붙어 있고 BMW 미니는 언더 패널, 플로어 패널 위에 시트가 있는 구조다. 당연히 무게 중심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고 노면에서 전달되는 정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무게 당 출력비를 고려해도 BMW 미니는 카트와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무게 중심은 낮을 수록 운동성이 좋아질 수 있는 요소가 많지만 무작정 낮출 수는 없다. 카트는 목적 자체가 일반 승용차와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무게 중심을 낮출 수 있다. 무게 중심이 높다는 얘기는 그만큼 코너링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다는 뜻이며 횡G로 인한 롤링이 더 많이 발생한다.
개인적인 BMW 미니에 대한 의견
알려진 것과 달리 BMW 미니는 그다지 운동성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차는 아니다. 엔진이 있는 앞부분도 민첩한 핸들링을 하기에는 무거운 편이고 숏스트로크 서스펜션은 승차감이 좋다고 할 수 없다. BMW 미니와 카트의 공통점은 둘 다 운전의 피로도가 높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이나 BMW 미니의 홍보용 미사여구인 고 카트 필링과는 전혀 연개성이 없다. 장담하던데 BMW 미니의 시승기나 리뷰를 만드는 사람 중에 제대로 카트를 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카트를 제대로 타 본 사람이라면 애초에 양산차인 BMW 미니에 고 카트 드립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를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글을 BMW 관계자들이 싫어합니다. 특히 마케팅쟁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