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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내는 편지(18)

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by 자칼 황욱익 Mar 30. 2025

혼자보다는 마음 잘 맞는 둘이 확실히 좋긴 하다. 

샌디에이고 출라비스타를 떠나 오늘 도착한 곳은 애리조나의 투싼. 

420마일(675km)이 넘는 거리였다.  

애리조나는 사방이 사막에 기온이 매우 높다.

애리조나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대기온은 38도를 넘었고 유마에 도착했을 때는 40도가 넘고 있었다. 

습도가 매우 낮아(15% 이하) 그늘에 들어가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이건 그냥 덥다는 것 외에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멤피스의 햇볕이나 더위보다는 괜찮았지만 사방에서 태양풍과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샌디에이고에서 산을 넘어 펼쳐진 광경을 장관 그 자체였다.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황량하고 몇 시간 단위로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 때는 바위와 기암괴석이 가득하고 어느 때는 풀 한 포기 없는 모래사막이 나타나고 투싼에 가까워지니 책에서나 보던 선인장이 가득하기도 했다. 

애리조나 사막 횡단을 계획했을 때 후배인 사무엘은 나에게 '형님 거기 가면 아마 지구 자전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거예요'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지만 사막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잠시 쉬어갈 때 이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대낮의 기온은 섭씨 40도가 넘고 습도는 극단적으로 낮은 황량한 지역에 사는 식물들을 보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지 느껴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는 예전 자동차 회사에 근무할 때 가끔 드나들었던 흡음실과는(소음이 완전 차단된 랩) 전혀 다른 고요함이 있었다. 

진짜로 지구 자전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고속도로에서는 위험한 순간이 두 번 정도 있었다. 

미국 화물차가 워낙 커서 옆에 지나가면 와류가 장난 아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작은 회오리바람이다. 

앞쪽에서 주행하던 8 기통 픽업이 도로를 횡단하는 작은 회오리바람을 피해 가는 것을 봤는데 회오리바람은 1차선에서 주행 중이던 내 차 옆을 살짝 스쳤다. 

그런데 빨려 들어가는 힘이 화물차와는 그 묵직함부터가 달랐다. 

이런 작은 회오리바람이 모여서 토네이도가 되는데 작은 넘도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투싼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는 도로에 떨어져 있는 내 몸뚱이 만한 타이어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정확한 스티어링 입력값과 카운터 스티어가 몸에 익어서 그런지 동승자는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장애물을 피할 수 있었다. 

몸이 반응한다는 말이 있는데 꾸준하게 배우면서 몸으로 습득한 드라이빙 테크닉이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코롤라도 사고를 피하는데 한몫했다. 

급격한 핸들링에도 뒤쪽이 날아가거나 다음 액션에서 굼뜨지 않고 자세를 아주 잘 유지했다. 

조금만 더 스티어링 입력값이 많거나 카운터가 늦었으면 피쉬테일 현상이 일어나면서 큰 사고가 났을 것이다. 

나이 먹으면서 반응속도와 내구력이 떨어짐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아직 쓸만하다. 


이번에 동행한 클래식 베이 박변계 대표와는 아주 잘 돌아다니고 있다.

 관심사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해서 그런지 몰라도 여행 메이트를 아주 잘 만났다. 

특히 괜찮을 곳을 가면 사진을 남겨 주기도 하고 주유소나 식당을 찾을 때 많이 도와주신다. 

운전도 도와주고 무엇보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간식거리와 음료, 심지어 간단한 식사까지 준비할 때도 있다. 

박변계 대표가 챙겨 온 아이스박스는 진짜.....신의 한 수.

만약 지금까지 온 여정을 혼자 했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원래 계획(에어컨 없는 알파 로메오를 타고 시애틀에서 멤피스 왕복을 한다던지 시애틀에서 애리조나까지 왕복을 한다던지 하는 진짜 무모한 계획) 대로였으면 아마도 몇 달이 더 걸리거나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샌디에이고에서 기름을 만땅 넣고 유마에서 다시 반 정도를 채웠다. 

지난번 쿠야마에서 식겁했던 일이 있어서 그랬는데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큰 배움이다. 

코롤라의 연비가 정말 죽여줄 정도(거의 갤런 당 40마일)로 좋아 렌터카 직원 놈의 '작은 차라 에어컨도 약하고 힘도 없을 텐데' 했던 얘기가 구라였음을 알 수 있다. 

에어컨 빵빵하고 언덕에서 힘이 살짝 딸리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수준은 절대 아니다.

   

투싼은 조용하고 안전한 도시다. 

물가도 저렴하고 지금 있는 호텔은 다른 대도시 호텔 가격보다 싸고 방도 넓고 깨끗하고 수영장도 딸려 있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여기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내일까지 일정을 마치고 아침 일찍 피닉스로 떠난다.

호텔 직원들도 엄청 친절하고 수영장에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있다. 

수영하는 사람은 아이들 뿐이고 대부분은 풀장 주변에 발을 담그고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다. 

같은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저들이 가진 여유가 부러울 때가 많다.

 

내일이면 아랫동네 대장정이 끝난다. 

앞으로 내 인생에 이렇게 돌아다닐 일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몰겠지만 이번 맘모스 프로젝트 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한 가지 더 느낀 게 있다면 욕심을 살짝 버리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하나에 꽂혀 빡쎄게 돌아다니던 것에 비하면 이번은 좀 더 여유가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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