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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월 Jan 17. 2023

다은,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다은은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다은의 일이에요. 국어선생님이 아니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거듭 설명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한국에서 3년 반, 코스타리카에서 2년, 그리고 다시 한국을 거쳐 지금은 스페인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K-콘텐츠와 BTS 덕분에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지만, 다은이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로 다짐한 십여 년 전에는 아무래도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지금보다 더 낯설었던 것 같아요. 저도 다은에게 그럼 한국어 선생님은 어디에 취직해서 돈을 벌 수 있냐고 묻기도 했었거든요.


친구로서 그동안 다은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길게 이야기해 본 건 처음이었어요.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호주와 중남미를 거쳐서 스페인으로 다은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12년 차 한국어선생님, 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해줘!

이제 12년 차 한국어 선생님이고, 지금은 스페인에 살고 있는 다은입니다.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하면, 낯설어하는 사람 많지?  

예전에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많지 않고 예능 나오는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으니까 좀 신기해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 사람들에게 내 직업을 소개할 일이 많이 없었던 거 같네. 외국인들은 K-콘텐츠 좋아하는 사람이면 우와! 이런 반응이고, 관심 없는 사람이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신기해하긴 해.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운명의 계시를 받은 이야기를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시작은 첫 유럽 여행을 떠나던 파리행 비행기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이야기를 했던 건데, 그 사람이 정말 한국어를 너무 잘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잘했어. ‘외국인도 한국어를 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생겼지.

*이 이야기는 다은의 책 <느려도 괜찮아, 여기는 코스타리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여행 중 한인 민박에서 만났던 사람이 한국어 공부를 하는 걸 보고, 그때 ‘외국 사람들도 한국어를 공부하는구나’라는 걸 알았어. 그리고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갔을 때 언어 교환을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가 공부하던 책을 가지고 와서 질문을 하는데 모르겠는 거야.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 ‘난 한국어를 그냥 하는 것도 아니고 국문과인데? 완전 내 전문 분야인데?’라고 생각했었거든(웃음) 그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언어 교환을 끝내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어? 근데? 한국어를 가르치는 직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거야. 그래서 그 길로 집에 돌아와서 바로 인터넷으로 찾아봤지. 실제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그런 직업도 있고, 교육 기관도 있대. 이 직업을 하려면 보통은 대학원에 가야 하고 자격증 같은 것도 있다고 하고. 그때가 3학년까지 하고 휴학을 했었던 때라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한참 많았을 때였고. 난 이제 무슨 일을 해야 되지 생각하는 찰나에 이 직업이 (한국어 선생님) 딱 떠오른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걸로 진로를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때 낯선 직업을 해보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너무 신기했었어.  

주변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잘 모르니까 인터넷 찾아가지고 한국어 교육자들을 위한 모임 같은 것 같으면 막 가고 그랬어. 근데 그때 이미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던 선생님이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내가 친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이거 하지 말고 딴 거 해요. 이거 돈도 안되고 힘들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이미 이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근데 되게 불안하고 대학원에 합격은 할 수 있을까 걱정인데, 그런 말을 하니까 맥이 빠지잖아! 황당했지만 그래도 내가 결정했으니까 준비하고 석사 진학 한 거지. 그래도 학교 다니면서는 비슷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으니까 그때부터는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긴 했고.


확신을 가지고 "유레카!" 이런 느낌으로 진로를 바꾼 줄 알았는데.  

유레카가 작게 오기는 했었지만, 어쨌든 '이거를 내가 해야지!' 하고 결정을 한 다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여러 단계들을 거쳐가면서 조금씩 확신의 게이지를 올려가는 그런 느낌이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온 게 아닌 거 같아. 비행기에서 만났던 프랑스 사람,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 언어 교환했던 것 이런 것들이 다 쌓여가지고 이제 나중에 크게 온 거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이걸 해야지- 했던 건 아니었던 거 같아.



석사 졸업하자마자 바로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한 거지? 난 그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돼서 직업 만족도가 엄청 높은 거 같다고 느꼈었어. 그때 일하는 건 어땠어?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일을 하면 굉장히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잖아. 한국에서 일을 하지만 매일 한국 사람보다 여러 나라의 외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거야. 여행 가는 것처럼 이 나라 저 나라 이야기 듣고 여러 문화에 대해서 배우고 이런 게 참 재미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지금보다 내가 어렸잖아. 어학당 학생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니까, 나랑 나이 비슷한 학생들도 많아서 그 학생들과는 수업이 끝나면 친구 되고 그랬어. 나중에는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라 이름 부르는 사이가 된 친구도 많아. 이번에 여행 갔을 때 만난 친구도 내가 한국에서 가르쳤던 학생이고.  


네가 그러다 갑자기 코스타리카로 간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어.

처음에 한국어교육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한국에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한국어 교육도 생각이 있었어. 3년 반을 일하면서 ’ 이제는 조금 환경을 바꿀 때가 됐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때 마침 (해외 대학에 한국어와 한국학 교육자를 해외에 파견하는) 재단의 공고가 떴는데 그전에 봤을 때 보다 공고가 그 해에 조금 더 확 와닿았어. 그리고 그때 가장 마음에 들어온 나라가 코스타리카여서 지원을 했고, 코스타리카에 간 거지. 때가 된 거야.


다은은 코스타리카 대학교에서 2년 간 한국어를 가르치고 돌아왔다. 당시의 이야기는 독립 출판 <느러도 괜찮아, 여기는 코스타리카!>을 통해 기록했다. 



외국에서 한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친다니, 나는 아직도 가끔 네 직업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근데 나는 가끔 직업 소개할 때 불편할 때가 있어. 내가 받아본 최악의 최악의 최악 질문은 어떤 사람이 ‘그게 어떻게 잡 JOB이 돼요?’라고 하더라고. 한국 사람이면 한국말은 누구나 하는데 어떻게 그게 직업이 되냐는 거지. 이 직업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그런 직업이 있냐면서 '나도 한 번 해볼까', 자기도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 보기에는 내가 외국에 나가서 일하니까 그냥 아무 나라나 가서 일할 수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나도 좀 해보게' 하는 식으로 물어보면 너무 불편하지.



학교에서만 한국어를 가르친 게 아니지? 프로그램 같은 것도 운영하고 그랬던 거 같아.  

응, 코스타리카 갔다가 한국 다시 들어왔을 때 그땐 여러 기관에서 한꺼번에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에어비엔비 체험으로 '생존 한국어 프로그램'을 했었어. 한국에 온 여행객들 대상으로 최소한의 아주 기본적인 한국어를 배워가지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 어느 날 카페에서 그걸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의 다른 외국인이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걸 본거야. 그 수업이 끝나고 그분이 나한테 와서 '혹시 한국어 가르치냐, 한국어 선생님이냐'라고 물어봐서 그분 과외도 하게 되고 그랬어. 아주 나아중에 그분이 중국에 가셨는데, 중국어 선생님을 찾고 있는 중인데 전에 나랑 한국어를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메시지가 오기도 했었고.



학생들이 떠올리면서 연락을 주다니, 너는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구나?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는데!! 어떻게 보면은 일주일에 한두 번 수업한 사람이고, 한 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수 있는데 나중에 떠올리면서 연락을 해준다는 게 되게 감사한 일이지.



어느새 선생님으로서 12년 차가 됐잖아.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일단은 계속할 것 같아. 자신의 여러 가지의 모습 중에서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있고, 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이 있잖아. 나는 내가 선생님일 때 모습이 마음에 들어. 가르칠 때의 나, 수업에서 학생들 앞에 있을 때의 나는 되게 맘에 든단 말이야. 그래서 이 일은 좋아. 좋아서 계속하고는 싶은데 내가 계속 교실에 있을지는 모르겠어.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고. 그리고 아직까지는 가르치는 게 좋으니까.


그 말이 되게 부럽다. '가르치는 내 모습이 맘에 든다'는 말.

일이라는 것 안에 굉장히 여러 가지 요소가 있잖아. 내 직업을 예로 들면 일단 내 직업은 가르치는 사람인데, 하는 일을 보면 가르치는 것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 수업도 있고 시험 문제 출제도 있고 성적처리도 있고 행정적인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잖아. 이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게 있고 싫어하는 게 있고. 예를 들면 나는 수업에 들어가는 건 좋은데 가끔 수업 준비하는 건 귀찮고 그리고 성적 처리하는 건 너무 싫고 이런 거. 근데 그냥 일의 본질만 생각해 보면은 조금 더 말하기가 쉬운 것 같아. 난 이 직업의 본질, 가르치는 게 좋아.


이 직업의 어떤 점이 또 너에게 잘 맞는 것 같아?

나는 남의 성장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 장점들이 눈에 잘 들어오고 그 사람이 그런 것들을 키워나갈 수 있게 내가 조력하고 발전시키는 거에 대해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 그게 내 연인이었든 친구든 학생이든 내 가족이든. 근데 타인의 성장 이렇게 말하면 나 너무 이타적으로 보이는 거 아니니 (웃음)


근데 그냥 내가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었다면 크게 좋아하지 않았을 거 같아. ‘가르친다, 끝.' 이면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고. 근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학생들하고 관계를 맺는 것에서 오는 기쁨, 학생들의 성장을 보는 기쁨이 있어. 우리가 갖는 유대에서 학생들도 나에게 배우고 또 어떤 좋은 점을 발견해 준다면 좋겠고. 나도 학생들 덕분에 뭔가 배우고 알게 되고 그러는 것들이 좋아. 그러니까 서로 성장하는 그런 분위기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


아, 그리고 남들의 성장을 보는 것도 재밌는데, 더 중요한 원동력이 있어. 방학과 여행! 이게 진짜 중요한 원동력이지. 일하고 나면 방학이 생기고 나는 방학 때 여행을 갈 수 있잖아. 그게 내가 일을 선택했던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해. 방학.



맞아 너에게는 여행이 엄청 중요하지. 방학만 되면 계속 짧게 여행 갔다 오잖아!

나는 여행할 때의 나도 되게 마음에 들거든. 여행할 때 내가 실수를 해도 마음에 들고 어떤 난관을 헤쳤을 때도 되게 마음에 들어. 그래서 여행을 자주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 중에 하나인 것 같아. 중요해.


다은의 블로그 이름은 내추럴 본 백패커. 방학이 되면 틈틈이 세계 여행을 떠난다.


일을 해오면서 하면서 위기 같은 건 없었어?

코스타리카에서 2년 일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때 나는 내가 코스타리카에서 성장을 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성장이 인정받지 못할 때 힘들었지. 나의 더 나아진 모습은 싹 다 무시당하고 다시 제로에서 시작되는 느낌이 들어서 그때 되게 의욕이 많이 떨어졌었어.


그러니까 예를 들면, 큰 교육 기관에서 일을 하면 교실마다 진도를 맞춰야 된다거나 같은 교육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있거든. 그런데 내가 코스타리카에서 대학 수업을 하면서는 자유롭게 수업을 꾸린 거지.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경험을 쌓아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교실마다 진도를 맞추고 똑같은 자료만 사용하려니 갑갑한 거야. 그때 일하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내가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해야 내가 더 잠재력을 끄집어내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



맞아, 그때 너는 뭔가 계속 분주하게 알아보고 했던 거 같아. 갑자기 자원활동도 한다고 그러고.  

여기서 이렇게 더 일하면 나는 이 일을 싫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때가 좀 위기였어. 그래서 그때 부수적인 활동들, 부캐의 활동들로 그 시간을 조금 더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 그때 독립출판으로 책도 썼고 주말엔 자원활동도 하고.  



일에서 만족을 못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거네. 그러고 보니 스페인 가는 거 결정 됐을 때 엄청 좋아했던 거 같다.    

막 불안하니까 가만히 못 있겠는 거야. 일이 안 즐겁고 불안하고 이러니까 뭐라도 안 하면 미치겠는 거지. 그렇게 한국에서 2년을 보냈으니, 스페인으로 다시 나와서 이제 안심이 좀 된 거지. '이제 됐다!' 이런 마음. 그래서 그때 나 스페인 오고 6개월 지났을 때 번아웃이 엄청 크게 왔었어. 생활이 안정이 돼서 그렇게 온 건가 싶은데, 아무튼 그제야 마음이 놓였던 것 같아. 



그러면 당분간은 외국에 계속 있을 거야?

그렇지. 일단은 계속 외국에 있을 것 같아. 근데 한국이 싫고 그런 건 아니거든. 나는 한국이 싫어서 뛰쳐나온 건 아니야. 외국에 대한 환상 이런 걸 갖고 있지도 않아. 그냥 나는 내게 맞는 어딘가를 찾는 거 같아. 


내가 태어난 나라가 내가 살고 일하기에 가장 적합하면 그건 축복인거지. 또 외국에서도 나에게 맞는 나라가 있을 거 아니야. 나는 고기를 안 먹는데 채식하기 어려운 나라에 가서 살면 힘들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데 맨날 비만 오고 하는 환경에 살면 우울해질 거고. 그리고 또 그 나라 사람들의 기질이 나랑 맞지 않아도 힘들 거란 말이야.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여러 나라 중에서 나랑 기질이 맞고 환경이 편리하고 나의 기량을 펼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은 거지. 한국에 그런 곳이 있으면 한국에서도 일할 수 있는데 지금은 여기서 일하는 것도 좋아. 그래서 당분간은 한국에 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아.



10년 전, 일을 시작할 때 즈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10년 전쯤에 나는 이제 막 일을 시작했을 때였잖아. 나는 그때 계획에 없던 대학원에 갔고 취업을 조금 늦게 했는데 그때는 그게 너무 늦었다고 생각을 했어. 내가 일을 시작할 때 내 친구들은 직장에서 대리 달고 그러면서 한창 일할 때였으니까. 내가 제로인 상태에서 2~4년 차와의 차이는 되게 크게 느껴지잖아. 근데 이제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은 나도 이제 12년 차가 됐고 친구들은 뭐 14~15년 차, 이게 큰 차이가 아니란 말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별거 아닌데 그때는 그게 뭐라고 뭐가 그렇게 불안했을까 이 생각이 들었어. 



나도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됐어. 그때 어렸다는 걸! 그땐 왜 나이가 많다고 불안했을까?

그러니까! 일단은 이뤄놓은 게 없고 보이는 게 없으니까 당연히 불안은 했겠다 싶기는 해. 정말 보이는 게 없었잖아. 그래도 그게 뭐라고 불안했을까. 근데 인생은 정말로 알 수가 없잖아. 우리가 살면서 아예 다른 직업을 앞으로 몇 개 더 가질 수도 있는 건데.



이제 다음에 하고 싶은 목표 같은 게 있어?  

그냥 언젠가 어느 시점이 되면, 이제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거 말고 확장을 해보고 싶기는 해. 외국인 학생들이 단계별로 공부할 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책, 교재 말고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어. 그리고 또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일하고 관련해서 공부를 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공부를 할지는 아직까지 정하지 못했고. 일에서의 어떤 목표 이런 거는 크게 생각해 본 적 없는 거 같아. 그런 걸 점점 생각 안 하게 되는 거 같네.


근데 만약에 갑자기 새롭게 하고 싶은 게 생긴다고 해도 갑자기 이 일을 딱, 그만두고 짠! 하고 시작하진 않을 것 같아. 하고 싶은 게 생겨도 아마 지금 하는 일과 접점이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같이 이렇게 쭉 가다가 어느 순간 새로 한 일이 조금 더 파이가 커지고 그렇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지금 일을 그만두고 그쪽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나도 엄청 계획 많이 짜는 스타일이었는데, 살면서 계획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일이 많이 터지잖아. 코로나 같은 이런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계획한 대로 안 되는 게 나쁜 게 아닌데. 이제는 목표나 계획에 대해서는 점점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냥 이제는 방향성만 생각해. 

 


당장 내년에 어느 나라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은은 미리 그 시간을 걱정하고 있는 않았어요.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불안을 밀어내던 시간을 지나, 이제 12년 차 한국어 선생님이 된 다은은 그 어느 곳에서든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든, 구글맵에 의지 하지 않으면서 주저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나아갈 다은의 모험을, 저는 지금처럼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 <끝> 




다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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