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가족사
서른 중반을 넘어 우연히 사주 책을 뒤적이던 날, 내 생일이 달력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매년 당연하게 먹어온 미역국의 날짜가 가짜였다니, 마치 오랫동안 믿어온 친구가 사실은 그림자였음을 알아차린 것 같은 황당한 기분이었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그저 그 달의 마지막 날이라 임의로 정했다는, 다소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2월 28일에 태어났지만, 윤년의 29일에 맞춰진 나의 생일. 진짜 생일이 28일이었음을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 날의 미역국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농담 삼아, 때맞춰 먹지 못한 미역국 때문에 그때까지 재수가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출생신고와 관련된 이야기는 더욱 기막히다. 모든 것이 수기로 이루어지던 시절, 어린아이의 요절이 잦아 출생신고를 미루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의 출생신고를 계속 미루셨고, 내가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해의 겨울에야 비로소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리는 신고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아예 흔적도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나의 삶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지 않은 채, 마치 꿈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황당하고 씁쓸한지.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나. 생각해 보면 아찔한 기분이 든다.
숨겨왔던 또 다른 이야기는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솔직히 말해, 나의 친어머니는 첩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나의 호적상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닌 큰어머니, 즉 아버지의 본처라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그 이유를 여쭈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아들이라서, 나중에 문제가 될까 봐." 그 한마디는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가족 간의 미묘한 거리감을 설명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불거졌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망신고는 뜻밖에도 거부당했다. 법적으로 나는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수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주민등록에 올라 있었고, 심지어 의료보험까지 같이 묶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여러 과정을 거쳐 사망신고를 마칠 수는 있었지만, 그 과정은 내게 깊은 상처와 함께 씁쓸한 깨달음을 남겼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와 관련된 어떤 공식적인 서류도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법적으로 친어머니와 나는 영원히 혈연이 아닌 타인으로 남았다는 현실은 가슴 한편에 깊은 슬픔으로 새겨졌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결정과 큰어머니의 묵인,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감내해야 했던 친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대가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은 때로는 이토록 복잡하고 아픈 매듭으로 얽히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수도, 무엇을 되돌릴 수도 없지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씁쓸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지금이야 법적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한 달 안에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심지어 병원에서 바로 신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만약 이 기간을 넘기면 과태료까지 부과된다니, 세상은 참 많이 달라졌다.
나의 출생과 관련된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어머니의 순박했을 무지, 그리고 아버지의 바람기와 무관심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만들어진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저 담담하게, 조금은 특별한 나의 탄생 이야기를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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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생성 출처 : 캐럿